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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AM 명 동 "삐릿. 스타벅스 다음 사거리. 라떼 큰잔 200원 할인쿠폰"

11:55 AM 을지로 "삐릿. 명동 돈까스 전방 100M. 13시 이후 손님 10% 할인"

15:24 PM 서초동 "삐릿. 친구 김도일 씨 압구정동 등장. 호출할까요? 호출!!"

"도일이? 이 시간에 압구정에서 뭐하니. 별일 없으면 술이나 한잔 하지. 뭐? 지금 서초동에 있는지 안다고? 나도 네 휴대폰 추적리스트에 등록이 돼 있어? 음 이심전심이군. 그래 7시에 보자."

18:05 PM 삼성역 "삐릿. 레벤호프 다음 4거리. 19시부터 해피타임. 마른안주 무료."

18:45 PM 레벤호프 "도일아, 나. 레벤호프에서 마른안주 공짜란다. 거기로 약속장소 옮기자. 그래 좀 있다 보자고."

23:03 PM 삼성역 "삐릿. 분당방면 합승손님. 삼성역 현대백화점 정문 2044호 택시. 만원에 모심."


이 메시지는 머지 않은 장래에 회사원 김주호 씨의 휴대폰 스크린에 하룻동안 나타날 판촉정보들이다.

유럽과 일본의 이동통신업체들을 중심으로 휴대폰 사용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추적할 수 있는 첨단 위치파악시스템이 완성되어 상용화 단계에 들어갔으며 미국과 아시아 주요 통신업체들 역시 곧 뒤따를 예정이라고 한다.

휴대폰마다 부여된 고유 호출부호를 휴대폰 회사의 중계 네트워크에서 모니터해 사용자의 현재위치를 찾아내는 이 첨단기술은 이미 일부 서비스에 한해 제한적으로 실용화 단계에 들어서 있다. 9.11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속에서 휴대폰 신호를 포착해 생존자를 찾아내려는 시도 역시 이동통신회사가 위치파악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특히 유럽의 이동통신회사들은 사용자 위치파악시스템을 도심 곳곳의 매장 정보와 조합할 경우 완벽한 이동마케팅체제를 구축할 수 있음을 간파하고 이미 관련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김주호 씨의 경우 이동경로가 사거리단위로 완벽하게 추적되기 때문에 장소와 시간에 따라 김주호 씨의 동선에 인접해 있는 매장의 판촉정보를 휴대폰에 시의적절하게 전송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주호 씨가 사무실에 있을 때와 명동의 스타벅스 옆을 걷고 있을 때의 커피 판매 가능성은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기에 휴대폰의 200원짜리 전자쿠폰이 사용될 확률은 무작위로 메시지를 보낼 때에 비해 대폭 올라갈 수 밖에 없는 것.

위치파악시스템은 단순히 판촉 뿐 아니라 친구나 선후배 등 지인의 위치를 찾아내는데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미리 등록된 사용자가 인근에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사용자의 휴대폰에 알람을 울려주기 때문. 김주호 씨가 이날 저녁 친구와 술자리를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휴대폰이 마침 김도일 씨가 인근 압구정동에 와 있다는 것을 일러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스웨덴의 한 온라인게임 개발업체는 이 기능을 응용해 <쥬라기공원>과 흡사한 <봇파이터>라는 롤플레잉 게임을 개발했다고 한다. 다만 <쥬라기공원>이 사이버 세계에서만 게임이 벌어지는데 반해 <봇파이터>는 실제 도심에서 게임을 즐긴다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장검, 레이저건 등 서비스업체에서 구입한 각종 사이버무기로 무장한 채 도심을 거닐다가 게임에 참여한 상대편이 길거리 인근에 출현하면 휴대폰에 경고메시지가 울린다. 게이머가 휴대폰의 지시에 따라 적수의 위치를 파악하면 몰래 접근해 상대편의 무기를 노획하거나 아니면 격퇴하는 오프라인 세상의 휴대폰 게임인 것이다.

심지어 한 열성파 게이머는 한 밤중에 집 근처를 급습한 적수가 자신의 사이버 무기를 뺏어 달아나자 공항까지 차를 몰고 쫓아가 새벽 2시에 다시 무기를 되찾아 오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스웨덴의 휴양지에서는 휴대폰을 들고 <봇파이터> 게임에 몰입해 숨바꼭질을 벌이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는 소식이다.

휴대폰의 위치파악시스템을 응용한 마케팅은 기존의 방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경제적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 수백만 가입자의 시간대별 이동경로와 쿠폰사용빈도가 메인컴퓨터에 데이터베이스로 축적되면 10대가 자주가는 옷가게는 어디인지, 요새 30대에게 인기있는 레스토랑은 어디인지 등 고부가가치 마케팅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만 활용할 경우 적시적소에서 소비자에게 유용한 혜택을 줄 수 있을 것임이 분명하지만 다른 첨단기술과 마찬가지로 이 기술 역시 심각한 사생활 침해 위험을 안고 있다. 통신회사가 고객의 위치정보를 함부로 불특정 업체에게 허락도 없이 유출시키거나 해커가 시스템에 침입할 경우 휴대폰 사용자의 일거수 일투족이 마치 거울을 보듯 상세하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

머지 않아 실용화될 휴대폰 위치파악 시스템의 활용한도에 대해 늦기 전에 미리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지혜가 필요할 듯 하다.

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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