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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있으면서 가까이 하지 못한 산!

세월을 안고 질곡의 역사를 안고 변함 없는 넉넉함으로 우뚝 자리하고 있는 지리산을 향해 구례행 버스에 올랐다.(06:30) 평소 도시락만 지참하여 당일 또는 무박 산행 경험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2박을 하면서 종주하는 산행은 처음이라 배낭이 무겁게 느껴지고 다소 부담이 되었다. 기대감과 약간의 두려움이 교차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버스는 하동에서 15분 가량을 지체하다가 구례에 도착했다.(09:35)

구례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한(10:00) 노고단행 버스는 화엄사를 들렀다가 곧장 노고단을 향했다. 굽이 굽이 돌아가는 차창 밖으로 푸른 솔과 단풍잎들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운무가 그 위로 스치며 지나간다. 관광객들의 탄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버스는 매표소 앞에 정차한다. 공원관리공단 직원이 승차하여 입장료 2600원씩을 바삐 걷어간다. 요금 걷는 공단 직원에게 "관리공단에서 받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영수증을 확인하니 천은사 입장료 1300원, 지리산 문화재 관람료 1300원 합하여 2600원이다. 천은사를 들리지도 않는데 천은사 입장료까지 물어야 하는가? 이곳을 통과했던 관광객 대부분 입장료 문제로 한마디씩 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영수증에 명세 표기를 다르게 하든지 아니면 천은사 입구를 지난 지점으로 매표소를 옮겨 등산객과 사찰 방문객을 구분하여 입장료를 받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성삼재가 가까워져 오자 긴 차량행렬이 거북이 걸음을 하고 주차장에는 등산객과 관광객들이 타고 온 승용차와 관광버스로 빈틈이 없다. 배낭을 메고 노고단(도상거리 2.5km)을 향한다.(10:45) 코재까지는 차량이 통행할 수 있을 정도로 도로가 넓게 잘 정비되어 있다. 등산로가 아니라 관광객을 위한 산책로이다. 석재로 된 바닥을 터벅터벅 한참을 올라 봉우리를 휘감아 돌아가는 코재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노고단 산장을 거쳐 노고단까지 급한 경사길이 이어진다.

산장에서 안내 지도를 구입하여 10여분 된비알을 올라가니 우뚝한 돌탑이 노고단임을 알린다.(11:25) 운무가 천년 고찰 천은사를 덮으며 만복대 허리를 감싸 돌고 저 멀리 반야봉은 여성의 둔부처럼 빼어난 곡선미를 자랑하고 솟아 있다. 설악이 남성적이라면 지리산은 여성적이라고 한다. 주능 종주능선의 서쪽 기점인 이곳 노고단의 명칭도 지리산 신령인 선도성모(仙桃聖母)를 마고(麻姑)할미로 존칭하여 부르게 된데서 연유한다고 한다.

돌탑과 동쪽 능선을 카메라에 담고 이정표에 따라 임걸령 방면으로 내려섰다.(11:45) 능선길 활엽수들은 옷을 벗은 지 오래고 구상나무잎만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산새들은 무언가 열심히 쪼아대며 인기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끔씩 다람쥐 놈이 불쑥 나타나 걸음을 멈추게 한다. 노고단에서 돼지 평전을 지나 임걸령까지 4km 구간은 완만한 내리막과 평탄한 길로 이어져 있다. 멧돼지가 자주 나타나 놀다 간다는 돼지령에서 남쪽 왕시리봉과 피아골로 내려갈 수 있고 30여분을 더 걸으면 임걸령이 나타나는데 여기서도 피아골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뚜렷하다.

임걸령에 도착(12:32)하니 소슬한 바람 마져 잠이든 듯 포근하고 아늑하다. 노고단이 해발 1506미터이고 임걸령이 해발 1320미터인걸 보면 완만하게 내려온 셈이다. 터를 잡아 식사를 하는 등산객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오르막이 눈앞에 다가와 휴식을 포기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단독 산행의 장점이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코스 이동과 속도 조절 등을 자신의 체력과 취향에 맞게 곧 바로 바꿀 수 있는 점이다.

가파른 오르막과 평지 능선 길을 지나 다시 숨가쁘게 오르니 앞이 탁 트인 전망 좋은 바위가 나타난다. 피아골 단풍을 구경하고 능선까지 올라왔다는 연세 지긋한 분이 밀감 한 쪽을 건네며 여기가 노루목이라고 안내해 준다. 노루목이라는 표지 대신에 반야봉과 삼도봉의 길 안내표지판만 세워져 있다. 바위에 걸터앉아 젖은 땀을 식히며 피아골 굽어보니 계곡이 온통 울긋불긋 타오르고 있다. 찹쌀떡과 빵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반야봉으로 향했다.(13:30)

10여분 비탈을 오르니 이정표가 나오고 커다란 주목 밑에 커다란 배낭하나가 놓여 있다. 그 옆을 자세히 보니 흰 종이에 "무거운 배낭을 벗어 놓고 갔다 오세요"라는 안내 말을 친절히 써서 주먹만한 돌로 눌러 놓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배낭을 벗어 놓고 지팡이와 카메라만 휴대했다. 걸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으나 그것도 잠시 계속된 오르막으로 다리가 무거워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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