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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에 길들여진 다람쥐가 돌탑을 타고 돌더니 멈칫멈칫 다가온다.
구상나무 군을 지나 반야봉(般若峰)에 올랐다.(14:10) 멀리 노고단에서 바라본 반야봉은 우아한 자태로 곡선미를 자랑하고 있었는데 지금 이곳에는 돌탑과 바위 위에 반야봉이 새겨진 표지석이 전부다.
등산객들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진 다람쥐가 돌탑을 타고 돌더니 멈칫멈칫 다가온다. 반야봉 그 무엇이 산꾼들을 그토록 유혹하는가? 동편으로 저 멀리 천왕봉이 솟구쳐 있고 노고단에서 시작된 준령(峻嶺)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다.
반야는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나오는 지혜라는 뜻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천신의 딸인 마고(麻姑)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도사 반야(般若)를 만나 천왕봉에서 살았다고 전한다. 그들은 딸만 8명을 낳았는데 반야는 더 많은 깨우침을 얻기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반야봉으로 떠난다. 마고할미는 딸들은 한 명씩 팔도에 내려보내고 남편 반야를 그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옷을 만든다.
홀로 남편을 기다리다 끝내 돌아오지 않자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 숨지고 만다. 찢겨진 옷이 바람에 날려 반야봉으로 날아가 풍란이 되었고 그의 딸들은 8도 무당의 시조가 되었다는 반야와 마고할미에 얽힌 애틋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맑은 날 서쪽 하늘에 펼쳐질 낙조의 장관을 상상하며 하산하다가 노루목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뱀사골산장 길로 내려섰다. 한참을 내려가니 노루목에서 오는 길과 다시 만나 합쳐지고 능선길을 완만하게 올라 삼도봉에 도착했다.(15:00)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 3개도의 경계 지점을 표시하는 삼각뿔이 손길에 닳아 반짝이고 섬진강으로 떨어지는 불무장등을 굽어보니 몇 년 전 겨울 오후 늦게 이곳 삼도봉에 올랐다가 길을 잘 못 들어 달빛에 눈밭을 헤맨 기억이 새롭다.
화개재로 내려서는 급경사에는 나무로 만든 계단 구조물이 길게 늘어져 있다. 철을 사용하지 않고 바닥에는 고무판을 깔아 미끄럼과 나무계단의 훼손을 방지하려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계단 하나를 만들어도 이렇게 자연과 환경을 살리는 정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긴 계단을 내려오니 개활지가 나타났다.(15:30)
옛날 마을 사람들이 화개장터로 넘나들던 고개로 지금도 화개재라는 지명이 붙여져 있다. 뱀사골 방면 200미터 아래에 뱀사골 산장이 있고 반대편을 넘어가면 연동골을 지나 쌍계사와 화개장터에 닿는다.
곧장 30여분을 올라가니 토끼봉이 나타나는데 특별히 인상에 남는 것이 없어 잠시 휴식을 한 뒤 연하천산장으로 향했다. 총각샘이 있다는 지도의 표기에 따라 목마름을 견디며 주변을 살폈지만 샘터를 찾지 못하고 산행 중 만난 일행이 물을 주려 하였으나 사양했다. 장거리 산행에 있어 음식, 물, 체력 안배 모두가 내 자신의 책임인데 체력을 소진하며 무겁게 지고 온 물을 준다고 하여 벌컥 벌컥 마셔대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밀감 하나로 갈증을 풀고 샘터 표지판이 있나 두리번거리며 쉼 없이 걷다 보니 날은 이미 저물고 연하천산장으로 향하는 나무계단을 내려서고 있었다.(17: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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