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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Gnosticism)이라는 말은 '지식'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이다.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지식'은 단순한 앎이나 인식이 아닌 우주의 기원과 인간의 구원을 위해 꼭 필요한 비밀열쇠와 같은 지식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들 영지주의자들은 하나의 종파를 형성하여 그들만의 일정한 교리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영지주의는 역사적으로 초대교회 당시부터 속사도 교부 시대에 이르러 만개한 하나의 신비주의 운동이며 복잡 다양한 밀의 종교들의 현상이라 말할 수 있다.

교부들 가운데는 이들 영지주의자들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인식하고 그들에 대해 경고하고 반대하는 글들을 많이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언급하고 있는 영지주의는 주로 기독교적 영지주의에 국한된 것이었고, 그러다 보니 영지주의를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고 폄하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즉 흔히 영지주의는 서기 1~3세기에 여러 종교가 통합되는 과정에서 갈라져 나온 기이한 분파들로 예수의 성육신을 부정하고 가현설(docetism)을 주장하며 창조론, 부활론, 동정녀 탄생을 부정하는 등 기독교 복음을 신비사상과 혼합시켜 왜곡 변질시키려던 가공할만한 이단 세력쯤으로 이해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신지학과 비교(秘敎) 연구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사람답게 매우 광범위하게 근대 이후까지 존재해온 영지주의의 대략적 윤곽을 조목조목 알기 쉽게 소개해 주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 영지주의에 대해 본격적으로 소개한 책이 전무하기에 앞으로 이 책은 영지주의 입문서로 매우 중요한 책이 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영지주의가 단순히 기독교와 관련하여 서기 1~3세기에 잠시 존재했다가 소멸한 기독교 이단으로만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걸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영지주의는 전수되지 않고서도 오히려 자생적으로 다시 생겨나곤 한다. 뿐만 아니라 영지주의는 기독교가 생겨나기 이전에도 존재해왔으며, 기독교와 상관 없이도 존재하였다고 말한다.

요컨대 저자는 그것이 기독교적 영지일지라도 기독교 내부에 존재하는 이단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 이전에 존재했던, 또는 기독교와 원초적으로 이질적인 것이며 그 본질에 있어 계속 이질적인 것으로 머물 사유와 정서의 흐름과 기독교의 만남, 합류의 결과로 보고있다.

물론 일부 영지주의자들 가운데는 교부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극단적인 이원론으로 인하여 결혼과 출산을 죄악시하고, 이에 더 나아가 죄악된 육체는 별 수 없다며 가증스러운 의식을 행하고 성적 방종까지 일삼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인 듯하다.

하지만 저자는 극단적 이론을 신봉하던 대다수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상상의 범주 내에서 하나의 꿈으로 가꾸면서, 현실에서는 상식에 걸맞는 이성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또한 그에 따르면 영지주의적 태도는 매우 근대적인 색채마저 띠고 있는데, 그들은 '세계에 던져진' 그들의 실존에 불안해하며 이러한 불안감을 극복하고 죄악된 세계에서 해방될 수 있는 나름의 획기적 방법을 찾았다고 믿었다는 사실에서 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어쨌든 영지주의적 태도가 최근까지도 여러 가지 종교 현상들과 사상적 조류를 통해서 확인된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저자는 영지주의의 현대적 재출현으로 낭만주의, 상징주의, 초현실주의를 꼽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최근의 '뉴에이지 운동'이나 'UFO를 숭배하는 종교집단'들까지도 광의의 영지주의적 행태를 띠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만일 그렇다면 영지주의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과거의 교회사적 유물로 여겨질 게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재로 영지주의적 요소가 오늘의 교회 내에서 심심지 않게 발견되고 있으며, 심지어 신약성서까지도 영지주의에 일정한 영향을 받았음을 말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내가 영지주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45년 이집트 나그 하마디(Nag-Hamma야) 도서관에서 발견된 신약외경전과 영지주의 문서들 가운데 몇 개를 읽은 다음부터이다. 그것은 '도마 복음서'와 '진리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 '헤르마스의 목자'와 같은 책들인데, 이런 문서들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영지주의자들 가운데는 나름의 기독교적 정체성을 가지고서 영지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인 자들이 존재했으며, 그들을 덮어놓고 이단시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즉 그들의 문서들이 영지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다해서 무조건 경원시할 게 아니라, 초창기 기독교인들의 다양한 신앙적인 유산으로 보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되 평신도들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소개하여 읽혔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야 일부 관심있는 신학자나 신학도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의 풍성한 문화적 소산을 섭취하고 경험할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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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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