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 해목이는 '파란 조끼의 공주'입니다. 거의 매일 파란 조끼를 입고 있어 붙은 별명입니다. 해목이의 파란 조끼는 저의 외할머니께서 만들어주셨습니다. 벌써 5년이 넘은 그 조끼는 이제 개구쟁이로 자라버린 조카들이 입었던 것이고, 깨끗하게 간수해 놓으셨던 형수님께서 해목이에게 물려주셨습니다.

외할머니께선 하동땅에서 알아주시는 한복쟁이셨습니다. 요즘은 한복 디자이너라고 하나요. 지금은 눈이 침침해 아무 것도 안 보이신다며 바느질을 거의 못하시지만, 외증손녀를 위해서 정말 예쁜 배내옷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해목이가 태어나고 아내가 몸조리를 위해 부모님 댁으로 갔을 때, 외할머니께선 바로 이웃에 살고 계시면서도 삼칠일이 지나야만 아기를 보는 것이라며 일절 아기가 있는 방에는 출입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증손녀 보고픈 마음을 꾹 눌러 담고 계신 동안에 만드신 그 배내옷은 외할머니의 정성이 한땀한땀 들어 있는 이쁜 것이었습니다. 지퍼와 단추는 아이에게 불편하다며 배내옷의 앞섶을 여밀 수 있도록 할머니께서 타래실로 꼬아 만든 실띠를 보는 순간 가슴이 찡하고 울렸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가치로도 매김할 수 없는 그 옷의 첫 주인공이 해목이라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제 해목이도 백일이 지나 그 배내옷은 다음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선 시집갈 때 선물로 주고 싶지만 외할머니께서 증손주들에게 지어주신 옷들은 물림으로 입히고 있어 그 배내옷은 곱게 개어 다음 아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기들의 자람은 정말 금방이라 오늘 다르고 내일이 다릅니다. 해목이도 이제 엎드려서 외할머니께서 지어주신 파란 조끼를 입고, 엉덩이를 치켜들고 기어다닐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고 용을 쓰는 모습을 보면 아직 멀었구나 싶기도 하지만, 다시 만날 보름 후쯤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지요.

그렇게 기어다닐 정도면 이제 이모께 얻어온 보따리를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카들이 입던 옷들이 들어 있는 보따리 속엔 이제 해목이의 몫뿐입니다. 하나하나 풀어보며 조카들이 기어다닐 때 모습을 생각하며 웃기도 할 것이오, 그리고 외할머니께서 지어주신 옷을 보며 그 바느질 솜씨에 아내와 함께 감탄사를 연발하겠지요.

그러고 보면 돌림옷이 들어 있는 그 보따리는 추억을 되새김해주는 보따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해목이가 크고, 해목이가 입던 옷들을 싸주며 해목이의 어렸을 적 모습을 이야기하며 추억에 잠길 날도 있을 겁니다.

해목이의 파란 조끼 이야기는 이것으로 맺고 아기옷과 관련된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때가 10월 31일이군요, 스포츠 조선 홈페이지(http://sports.chosun.com/)에는 얼마 전에 출산을 한 여자 연예인이 백화점 의류코너에서 고가 브랜드 아기옷 400만 원치를 구입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제가 마음이 상했던 건 단지 고가 브랜드 아기옷 400만 원치를 구입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많이 샀는데 협찬 좀 해주세요"라고 매장에다 부탁하는 그 연예인을 보고 처녀 때보다 더 짜진 '정말 영원한 또순이'라고 표현한 부분이었습니다.

아무리 스포츠 신문이라지만, 알뜰살뜰 절약해 가며 아기를 키우는 우리네 엄마들의 가슴을 후벼파는 그런 내용은 삼가야 마땅하다 생각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