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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는 지난 해 140만 부의 판매를 기록한 '가시고기'의 작가 조창인이 쓴 장편소설이다.

서른 두 살 난 주인공 유재우가 남쪽의 외딴 섬 구명도에서 등대지기로 일하며 등대를 지켜나가는 삶을 한 축으로 하고, 8년 동안 절연(絶緣)하고 살았던 어머니와 어머니의 치매를 통해 화해하는 과정을 한 축으로 하고 있다.

큰 아들인 형만 편애하는 어머니와의 갈등, 형제간의 깊은 골, 이루지 못한 사랑 …. 재우는 구명도로 간다. 그리고는 등대를 지킨다. 구명도를, 등대를, 등대지기의 삶 자체를 사랑하게 된 재우에게도 구조 조정의 모진 바람과 무인 등대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차가운 현실이다.

가족과의 완전한 단절의 시기였던 8년. 그 사이에 어머니에게 치매가 발병하고 형은 이민으로, 결혼한 누나는 출가외인이라는 이유로 등을 돌린다. 결코 사랑하지 않으며,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만 지금 여기 내 앞에 남겨져 있다.

자녀를 알아보지 못함, 최근 기억 상실, 시간에 대한 지남력 상실, 길 잃어버림, 판단력 장애, 우울증, 공격적인 행동, 대소변 못가림, 상황에 대한 이해 능력 상실 등 어머니는 치매 환자에게 나타나는 모든 증상들을 고루 보이며 재우의 등을 휘청이게 하고 일상을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식이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한 순간, 치매마저 넘어서는 본능으로 아들의 목숨이 끊어지지 않게 지켜주고 자신은 숨을 거둔다.

노인대학에 강의를 하러 가면 시작할 때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질문하곤 한다. '노년에 가장 두려운 게 무엇인가'라고. 돌아오는 대답은 100% '치매 안 걸리는 것'이다. 치매는 현재까지는 불치병이며 결국 그 끝은 자식들에게는 고통이고 본인에게는 아름답지 못한 죽음일 뿐이라는 공포감이 노인 세대는 물론 우리 모두를 지배하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가정의 달이나 어버이날 특집 드라마로 치매 노인을 다루는 경우도 그 공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부양 부담은 전적으로 가족에게 맡긴 상태이다. 치매 부모를 모신 자녀와 그렇지 않은 자녀 사이의 갈등, 요양원에 모시자는 자녀와 반대하는 자녀 사이의 깊어지는 골….

치매는 개인이나 가족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우리나라 전체 노인의 5%인 15만 명이 그리고 그 15만 명에 딸린 가족이 함께 고통 받고 있는데, 이 일을 사회적 차원에서 다루고 개선해나가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

치매 노인 문제에는 노인 문제의 핵심이 들어 있다. 어떤 경우에라도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인식과 그렇지 못한 현실이 갈등을 일으키는 한가운데에 치매 노인은 고통을 주는 짐으로, 치매 자체는 공포로 존재하는 것이다.

어머니를 모실 만한 적당한 요양원을 알아보는 재우에게, "저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자녀분들이 직접 돌보는 것만 하겠습니까"하며 입소를 만류하는 '이레요양원' 원장은 그만큼 믿음직한 존재로 느껴지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재우가 어머니를 모시고 요양원 입소를 위해 가던 중 대합실에서 어머니를 잃어버린다. 어머니를 찾느라 가슴이 타들어가는 재우. 어머니를 찾고는 요양원 입소를 포기하고 구명도로 돌아온다.

물론 어머니와의 화해라는 결말을 위한 선택이기는 했겠지만, <등대지기>의 작가 조창인 역시 치매를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결론 짓고 있다.

연작 장편소설 '슬픈 시간의 기억'에서 유료양로원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네 노인들의 이야기로 지금 이 땅에 사는 노인들의 삶의 일단을 보여준, 노년기에 접어든 작가 김원일보다 훨씬 젊은 작가 조창인은 노인 문제의 인식에 있어서 아직 그 나이 차이만큼의 현실을 덮어두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언제쯤 치매가 가족이 져야 할 짐에서 사회 전체가 나누어져야 할 짐으로 이해되고 수용될 수 있을까. 그 때 비로소 치매는 공포가 아닌 현실로 우리 앞에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것이다.

(등대지기, 조창인 장편소설, 도서출판 밝은세상,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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