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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안했다, 다 그 놈이 그 놈이지, 지네들이야 별 거 있겠어."
- 구로역 주변 과일 가게를 운영 중인 상인 김호동(54세) 씨

"4번 찍었어요, 여성 권익 옹호가 중요하잖아요."
- 구로 지역에 살고 있다는 대학생 이민아(22세) 씨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처음 알았어, 글쎄 다음에 찍어주지 뭐."
- 구로 역사 안 악세서리 코너를 운영 중인 상인 안숙자(34세) 씨

"그 친구들은 안돼, 표를 찍더라도, 되는 놈보고 찍어야 아깝지 않지."
-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서점을 운영 중인 김수철(43세) 씨


1. 참패다.

이 땅의 정치를 개혁하고, 진보정치의 씨앗을 지역사회에 뿌리려고 했던 이들 진보정당 정치입문생들은 처절한 패배의 쓰라림을 맛보아야 했다.

서울 구로와 동대문에 각 각 후보를 출마시킨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은 이번 재보선 결과를 두고 패배 요인에 대한 내부적 평가와 향후 진로에 대한 다층적이고 심층적인 분석 작업을 펼치고 있다.

이번 재보선 결과는, 이번 선거가 여야의 권력 쟁취를 위한 난잡하고 불온한 각축장이었을 뿐,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 같은 신생진보 정당이 추구하는 정치세력화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

두 당 후보들의 득표율이 각 각 2%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참담한 '사실'. 이런 사실에 대해 단순히 기성 보수 정당의 블록에 갇혀, 유권자들에게 진보정당의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주장은 궁색한 변론일 뿐이다.

또, 일각에서는 2%에도 못미치는 득표에 대해, 그나마 그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 진보정당의 선거전략과 능력에 대해 깊은 회의를 품고 있는 게 사실이다.

기자와의 인터뷰 도중 "자꾸 의미 같은 거 묻지 마세요, 이 땅의 정치가 얼마나 더럽고, 내가 겪어야 했던 현실 장벽이 얼마나 높았는지 압니까?"라는 말과 함께 자조석인 한숨을 내쉬었던 한 후보는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보여준 이중성과 기성 정당이 자행한 '돈' 정치의 '이중주 장단'에 완전히 당했다고 항변한다.

야심찬 각오를 가지고 원내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뛰어든 진보정당이 금권, 타락 선거의 태풍에 휘말려, 진보정당의 이름과 구호조차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인식시키지 못한 현실은 지역주의와 이념 문제로 대립해 있는 한국 사회의 병폐를 그대로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2. 재-보궐 선거 4주 후

늦가을, 오후 구로 역 근처에 위치한 두 진보정당 지구당 사무실, 한 달 전의 선거로 들뜬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유권자의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 지역에서 우리 당이 구민들의 손과 발이 되도록 정당으로써 문제해결 능력과 대표성을 키워내야죠, 이제 시작입니다."

구로 지역 출마자 정 모 후보의 결의다. 지금 이 시점에서 패자에게 필요한 것은, 으레 얘기하듯 실패로 인한 좌절과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왜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자기 성찰과 반성이다. 지역 구민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는 적극적인 행동 마인드, 지지율과 인지도를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지구당 운영 전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3. 구로 동대문 구 지역 서민들의 표정

"글쎄 이름은 들어봤지만, 우리 같은 서민이 생활비 없다거나, 분쟁이 생겼다고 해서 딱히 그들이 들어나 줄까?"
- 구로역 주변에서 붕어빵을 5년째 팔고 있는 김경자(가명. 49세)씨.

"우리 여기에 새벽 4시면 나오지, 구청에서 요구하는 게 우리같이 기력 빠진 늙은이에게 매우 힘들어."
- 구로구 지역에서 10년째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박진수(가명. 57세)씨.

"이 지역 일대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나서, 장사하기가 더 힘들어졌어요. 그렇다고 마땅히 구청에서 나와, 알아봐 주는 것도 아니고, 큰 딸애가 있지만, 먹고 살일 생각하면 걱정이네요",
- 20세 때 전남 여수에서 서울로 올라와 충청도 보령 출신 아내와 1녀 3남을 두고 있다는 가장 이윤수(가명. 47세) 씨.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생활환경과 세상살이에 대한 고달픔을 털어놓는다.

"이번 선거 때 누구 찍으셨어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들은 한결같이 대답을 회피하거나,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 특히, 진보정당이라고 하는 두 정당에 대해서는 오히려 기대 이하의 반응을 표시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무엇이 이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을까? 이 땅의 진보정당은 위와 같은 물음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진보정치가가 그리는 진보정치의 이상과 대중들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에서 오는 차이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봐야 할 것이다.

홍세화 씨는 얼마 전 마포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진보정당의 분열은 결국 그들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며 "진보정당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2%에도 미치지 못하는 득표율은 진보정당의 존재이유를 다시금 되물어 보아야 할 것"이라며 진보정당의 무기력함과 운동성향이 몸에 박힌 관념적 경직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그렇지만 그가 "내년에 귀국하면 진보정당에 가입하여 당비도 내고 열심히 참여할 것"이라며 모순된(?) 반응을 보인 점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되짚어야 한다.

진보정당은 이제 진보와 이상에 대한 관념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 밑바닥 생활을 하는 평범한 서민들이 과연 우리나라 정치에 무엇을 원하고 기대하는지, 그들의 표심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세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 선거에서의 득표전략과 선거운동 방식을 두고, 대중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주도면밀한 선거 전략과 분석이 필요하다.


4. 이제 입동(立冬)이다.

선거는 또 있다. 진보 정당은 앞으로도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한다.

"패배는 인정한다, 그렇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앞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는 각 후보들의 다짐이다. 그들은 차기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표심을 흔들기 위해선 이번 선거에서 진보정당이 겪을 수 밖에 없었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세밀하고 치열한 전략과 준비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공사장 건설현장, 일용직 근로자들, 할아버지, 할머니, 생활보호대상자, 노점상, 환경미화원 등 우리 주변엔 진보정당 정치운동가들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물론 한국 정치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선, 현재 보수 정당이 지배구조를 공고히 유지할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비례대표제나 1인 1표제의 소선구제, 정당명부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뛰어넘어야 하는 숱한 과제들이 남아 있다.

이에 못지않게 진보정당이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변의 서민들에게 쏟아야 할 관심이다. 서민들에겐 일상적으로 느껴지는 따스한 손길과 관심, 그리고 자신들이 당면한 어려움을 바로 자기 자신의 문제처럼 느낄 줄 아는 그런 가식 없는 평범한 이웃이 필요한 것이다.

(이어서 이번 선거에 출마했던 후보들과의 인터뷰 기사가 뒤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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