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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살면 나중에 이 집 반은 우리집 되겠지. 그러니까 그냥 같이 살자.”
“부모님이 이 집 우리 준대? 난 기대도 안 하고, 그냥 우리가 벌어서 저축하고 집 사고 싶어.”
원희 씨가 분가 얘기를 꺼냈을 때 남편은 전세 구할 돈도 없지만, 우선적으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어했다. 직장생활 5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50만 원씩 매달 부모님께 드리느라고 저축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원희 씨는 그 돈을 따로 저축했으면 전세 구하는 일이 뭐가 그리 어려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원희 씨네 시집은 주택가에 위치한 4층짜리 상가 건물이다. 4층에 시부모님이 살고, 3층에 원희 씨 부부가 산다. 2층은 전세를 주고 있고, 1층의 한쪽 상가는 시어머니께서 이불 가게를 하고 한쪽은 세를 주고 있다. 하지만 이 4층짜리 건물의 두 개의 층만 온전히 시부모님 재산이고, 나머지 두 개의 층은 무리한 증축으로 빚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시아버지는 경비일을 하셨는데 원희 씨 부부의 결혼을 앞두고 정년퇴직을 하셨다가, 결혼 후 다른 회사에 다시 취직하셨다. 시어머니는 이불 가게를 하고 계시긴 하지만 수입이 거의 없다. 주택가라 장사도 안 되고 가게를 여는 날보다 닫는 날이 더 많기 때문이다. 한 달에 보름 가까이 친구들과 놀러다니시는데, 시아버지께서 하시는 경비일이 격일제 근무라 쉬는 날마다 가게 문을 닫고 서울 근교로 나들이를 가신다.
남편의 형은 늦은 나이(34살)에 다시 학생이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신의 학비와 용돈을 충당하기도 힘들어 집에 생활비를 줄 수가 없는 형편이다. 형은 부모님이 자신의 결혼 준비 적금을 동생 부부에게 들라고 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고, 무리하게 건물을 증축해 생긴 빚 때문에 자식들을 힘들게 한다고 아버지와 티격태격하는 편이다.
맞벌이를 해도 한 달 수입이 250만 원 정도인 원희 씨는 우여곡절 끝에 한 달에 60만 원의 생활비를 드리고 있다. 처음엔 원희 씨네 세금까지 내줄 테니, 생활비로 100만 원을 달라고 했다. 원희 씨는 시아버지도 수입도 있는데 굳이 생활비를 달라고 하는 게 이해가 안 되었다. 시아버지가 버는 돈은 저축과 빚 갚는 일에 쓴다고 한다.
하루 한 끼 저녁은 시집에서 먹는다. 그런데 가끔 시아버지께서 밥을 따로 해먹는 게 어떠냐고 물으신다. 아내 사랑이 끔찍하신 시아버지께서 결혼한 아들 부부의 밥까지 해주는 게 보기 싫으신 모양이었다. 원희 씨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나설 수가 없다고 한다. 몸이 힘들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는 지금 생활도 빠듯한데 생활비가 이중으로 들 걸 생각하면 엄두가 안 난다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아들 부부에게 생활비를 타 쓸 정도이면 가게 일을 열심히 하실 법도 한데 왜 손을 놓고 계실까.(세를 놓아도 될텐데)’ ‘한 달에 보름씩이나 놀러다니려면 돈이 꽤 들텐데 자식들 힘들게 하면서 꼭 그래야 할까.’
‘시아버지의 수입으로 생활할 수는 없을까.’
‘결혼한 아들 부부가 스스로의 힘으로 저축도 하고, 집도 장만하고 열심히 살 수 있도록 배려해줄 수는 없을까.’
원희 씨의 얘기를 들으며 내가 가진 이런 저런 의문들과 함께 그녀의 남편은 정말 원희 씨를 사랑해서 결혼했을까, 자꾸 그런 생각까지 든다. 시부모님의 요구가 아무리 심하더라도 남편이 중간에서 조정자 역할을 잘 해야 하는데, 그녀의 남편은 결혼 후에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님을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잘못됐는지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님께서 나중에 집을 준다는 아무런 얘기도 없었는데 당연히 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는 거며, 자신의 돈이 곧 부모님의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 부모의 삶과 내 삶을 결혼 후에도 떼놓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이 참 답답하게 느껴졌다.
원희 씨의 시부모님이 겉으로 말은 안 해도 나중에 원희 씨 부부에게 집을 물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원희 씨 남편처럼 ‘적어도 반은 물려주겠지’ 그런 기대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나중의 일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부모는 갓 결혼한 자식이 열심히 벌어 독립된 한 가정을 이루고, 자립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경제적 능력이 없다면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간섭하고 통제하며 어린아이 취급을 한다면 제대로 된 자식 사랑이 아닐 것이다.
처음 이 기사를 쓰기 시작한 건 원희 씨 시집의 요구가 너무 무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고, 어떤 독자들은 원희 씨와 그녀의 남편, 시부모님까지 싸잡아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매도하기도 했지만 원희 씨의 경우가 특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결혼한 많은 여성들이 무리한 시집의 요구에 힘들어하는 경우를 끊임없이 보고 듣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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