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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담 같은 기사 쓰려거든 다른 사람 찾아가야 할 겁니다."
귀농인 서준열(41세 봉황면) 씨가 던진 첫마디에 내심 당황스러웠지만 서씨 이야기를 들어보자 수긍이 갔다.

"물론 그동안 고생한 덕에 지금은 먹고 살만 하지만 얘기가 성공담 쪽으로 흘러 활자화되면 농촌 생활 할만하구나 하고 오해하는 사람들 생길까봐 그럽니다. 농촌에서 성공이란 없습니다. 다만 열심히 일 한만큼 세끼 밥 먹는 걱정 없을 뿐이죠."

서 씨가 부인 이경화 씨와 15년 동안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봉황으로 내려온 것은 97년 2월이다. 무일푼이었던 서 씨 부부는 다행히 추수해서 갚는다는 조건으로 휴경농지를 빌릴 수 있었고 그 때부터 그들의 고된 농촌 생활은 시작됐다.

서 씨는 농촌 생활이 처음인 부인 이 씨와 함께 뻘논과 자갈밭에 나가 개간을 시작했다. 그러기를 5개월 여. 드디어 논다운 논 4천 평과 밭다운 밭 2천 평에 농사를 지을 수가 있었다.

그 해 가을, 농사만 지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타던 승용차를 처분해 꿩 200마리를 샀다. 지금 그가 운영하는 녹색농장이 탄생한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농사 짓고 꿩 기르며, 틈틈이 시간을 내 식당을 돌며 꿩 판매영업을 했다.

열심히 뛴 댓가로 판로확보에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보다 안정적인 공급처 확보를 위해 지난해 10월에는 어렵사리 구한 돈으로 봉황면 소재지에 조그마한 꿩요리 식당을 열었다. 곧바로 나주 시민의 날 축제 때 부스 하나를 얻어 꿩요리는 불티나게 팔렸고, 그 후 그 맛을 잊지 못해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변수는 생기기 마련. 짧은 농사 지식으로 시작한 서 씨 부부의 귀농 생활이 그렇게 순조롭기만 한것은 아니었다. 지난 겨울, 기르던 꿩이 이유없이 몽땅 폐사해 버린 것이다. 경제적 손실은 차치하더라도 그들이 겪은 정신적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일로 인해 지금도 꿩 사육장은 텅 비어있다.

비닐하우스에서 잘 자라던 고추가 하루 아침에 말라 죽어버린 일도 있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사용하면 안되는 요소비료를 넉넉하게 뿌려준 탓. 까맣게 말라 비틀어진 고추를 뽑아 내는 심정이 오죽했으랴.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내려오기 4년 전부터는 농사관련 TV프로는 빼놓지 않고 볼 정도로 준비를 많이 했는데 막상 농사일 하다보니 쉽지가 않더라구요. 그 때마다 마을 사람들의 격려가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얼마나 버티기 보자는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부담스러운 적도 있었단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는 서 씨 부부의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차츰 그들은 농군으로 인정하게 됐고 적극적인 후원자로 나서게 된 것이다. 아직도 서울 말투가 역력한 부인 이 씨가 웃기는 얘기를 해 준다며 입을 열었다.

"난생 처음 시골 내려와서 첫 수확은 호박이었습니다. 흥분된 마음으로 호박 한상자를 들고 공판장에 내다 팔았는데 호박값을 봉투에 담아 주더라구요. 얼마였는 줄 아세요? 달랑 560원 들어더라구요."

우스운 얘기라면서 꺼낸 말에 두 부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560원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초보 농사꾼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화제를 바꿔 그들의 서울생활에 대해 물었다. 한사코 언급을 회피하던 서 씨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서울에 있을 때요? 신촌에서 동생들 백 명 정도 데리고 있었습니다. 거칠고 어두운 생활이었죠. 형님 소리 듣고 살았지만 결국 남는 건 하나도 없더라구요. 미련도 아쉬움도 없습니다. 지금은 고향에 뿌리내리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는 게 행복하기만 합니다" 라고 말하는 서 씨에게서 어깨에 힘주고 살던 시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평범한 농사꾼의 모습만 보일 뿐.

꿩 사육 실패로 쓴 맛을 본 서 씨 부부는 요즘 60여 마리의 경견용 그레이하운드를 키우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만간 강원도 태백시에 경견장이 생기면 그레이하운드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 것이라는 생각에 주위 사람들에게도 사육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개 밥 먹일 시간이라며 일어서는 서 씨가 마지막 말을 남긴다.
"성공이요?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것은 성공이지요.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 돈도 벌겠죠" 시골 농부의 당당한 뒤모습에 환한 희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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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매일신문에서 역사문화전문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관심분야는 사회, 정치, 스포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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