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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는 최근 북미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역사적 예수연구의 "예수 세미나"를 크로싼, 펑크 등과 함께 주도하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책 가운데 국내에 이미 번역 출간된 바 있는 <미팅지저스 Meeting Jesus Again for the First Time, 홍성사, 1995>와 <예수 새로 보기 Jesus: A New Vision, 한국신학연구소, 1987> 등은 한국의 신학계에도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안다.
보그의 책을 크로산이나 펑크 등과 단순 비교해서 말한다면, 그는 다소 온건한 편에 속한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이 책의 내용에서도 자신의 신앙적인 성찰과 그 결과들을 담아 전통 교회와의 대화성을 유지하려 무던 애쓴 흔적이 엿 보인다.
처음에 보그의 이 책을 받아들고 <새로 만난 하느님>이란 제목에 약간 생뚱한 느낌이 들었다. 왜냐면 그동안 내가 그를 예수연구 전문 성서학자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서학자가 조직신학 분야인 <신론 神論>이라니…" 아마 이런 편견이 작용했을 것이다. 한데, 저자 소개란을 쭉 읽어보니, 그는 '오레곤 주립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거의 30년 동안 신론을 가르쳐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는 '그가 비전공 분야로 잠시 외도했다'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간학문적 대화가 갈수록 더욱 중요해지는 마당에 설사 외도를 했다한들 어떻단 말인가?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용을 말해보자.
이 책은 저자가 한 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 변해온 자신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바탕으로, 왜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시각이 변화하게 되었는지, 전통적 신관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오늘날 요청되는 바람직한 신관은 어떤 것인지를 알기 쉽게 신학적으로 정리해 주고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평범한 주일학생에 불과했던 보그와 현재 신학자인 보그 사이에 하나님의 이미지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변해왔는지를 보게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만의 유일한 경험이 아니라 형태는 다를지라도 우리 자신의 경험이고, 경험이 되어야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예컨대 저자는 유년 시절에 하나님을 떠올릴 때면 출석 교회 목사님이셨던 톨슨 목사의 '손가락을 흔드는 모습'이 떠오르곤 했노라고 말한다. 형태는 다르지만 나의 경우에도 유년 시절에 하나님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하늘 구름 위에서 하얀 옷을 입고 긴 수염을 흩날리는 어떤 할아버지쯤으로 생각했다.
아마 이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마찬가지 일 것이다. 왜냐면 대다수 교회의 학교에서는 하늘에 계시는 '초월적 하나님'을 강조해서 가르치기 일수였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보기엔 이런 상황은 아직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저자는 '초월적이며 저 밖에 계시는 하나님'(바르트의 표현으로 '전적 타자'이신 하나님), '가부장적인 하나님', '군주적인 하나님' 등의 낡은 하나님 이미지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며 성차별적인 신앙관을 심어 놓았음을 꼬집고 있으며, 그 대안으로 '범재신론'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범재신론'은 흔히 알고 있는 '범신론"과는 차원이 다르다. 즉 저자에 따르면 범신론은 하나님의 내재성만을 긍정하고,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초월성은 부정하는데 반해, 범재신론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동시에 긍정하기 때문에 정통적인 기독교의 하나님 개념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이 주장은 존 로빈슨이 그의 책 <신에게 솔직히, HONEST TO GOD, 대한기독교서회>에서 하나님을 철저히 인격적인 존재에 대한 은유로 묘사한 듯한 "하나님은 인격적 경험의 깊이 속에서 알려진다"는 주장이나, 틸리히의 매우 비인적적으로 보이는 "우리 존재의 기반" "궁극적 실재" 등의 하나님 표상 개념의 문제점을 극복한 한층 세련된 개념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그의 범재신론은 초월과 내재를 동시에 포괄하는 오늘날의 '변증법적 유신론' 혹은 '관계성 안의 하나님', '과정 범재신론' 등의 신 개념과 더 잘 어울린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보그는 과거의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들을 폐기하자고 말하지 않고 그것을 새롭게 이해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더욱 풍부하고 다양한 하나님의 이미지들을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먼저 개방하는 일을 병행하자는 것이다.
또한 대가답게 예수 연구 결과의 핵심을 요약하여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으며, 삼위일체 교리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단초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예수의 비전이기도 했던 하나님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이기적 개인주의 정치(A Politics of Individualism)를 넘어 타인의 고통과 함께 아파하는 세상을 위한 정치(A Poligics of Compassion)을 제안한다.
따라서 저자가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개인의 내밀한 신앙 경험에 자폐적으로 그냥 머무르지 않고 고통 당하는 세상을 향해 책임있는 응답을 하는데까지 나아가는 것이었다. 실로 그리스도인들의 신관의 변화는 그동안의 신앙에 대한 전방위적 쇄신을 이루는 매우 혁신적인 계기가 될게 틀림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신관의 변화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생활과 신앙양식까지도 변화시키게 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보그가 앞으로 쓰려는 소설에서 인용한 짧은 대사는 그것을 실감나게 징후적으로 잘 보여준다.
"하느님에 대한 당신의 이미지를 내게 말해주시오. 그러면 당신의 신학을 내가 당신에게 말해 줄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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