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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 종사자 수는 정확한 통계를 알 수는 없으나, 우리나라 인구중 30%는 재래시장 그늘아래서 종사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추정할 뿐이다.

그래서 재래시장은 서민경제의 핵심이며, 요체(要諦)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재래시장이 이제는 극소수 대자본에 의해 설 땅을 잃고 있다.

국민의 정부라 자처하며 서민정책을 표방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조화로운 병행발전을 국정방향으로 제시한 김대중 정권은 이제 임기말에 와 있다.

IMF라는 국가환란 속에서 출발한 김대중 정부는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했으나, 국정방향에 대한 임기말 정책혼선은 한마디로 모순(矛盾)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기술개발과 수출만이 살길이라며 이른바 정부주도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의해 소수의 기업들은 정부의 저리 융자 등 각종 특혜를 누리며 고속 성장해 대기업으로 군림했다.

국가의 각종 특혜 속에 성장해온 대부분의 재벌들은 기술개발 등 생산성 있는 재투자보다는 부동산 투기나 정부 특혜정책에 힘입는, 소위 '정경유착'에 의해 성장해 왔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할 것이다.

그 뿐인가? 국가의 비호 속에 방만하고도 부실한 경영으로 인해 IMF 환란을 몰고 온 경제주체들인 대기업과 금융은,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로 국가는 그들의 부도를 막고자 국민 혈세로 15조원이라는 기하학적 금액을 또 쏟아 부었다.

재벌들과 김영삼 정권 및 정부의 무능력으로 IMF가 닥쳤으나 그 책임은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으로 전가된 것이다.

서민들은 삶의 터전를 잃고, 직장을 잃어가면서도 서랍장에 숨겨 놓은 금반지를 내다 파는 등 그 책임을 기꺼이 짊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최근 정책은 기득권과 재벌의 이익만을 보호하고 대변해 주는 반개혁적 정책으로 역질주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인 '900평 이상 대형매장에 대한 등록제'를 '신고제'로 완화하기로 결정하고, 자연녹지지역내에 설립이 불가능했던 매장면적 3천㎡ 이상 대형할인점을 질 수 있도록 특혜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재래시장 구제를 위한 실낱같은 희망인 "인구수에 따른 대형마트규제법안"의 입법화마저 무산시켰다. 정부는 또 수도권 과밀화를 규제하는 제도의 하나인 '공업배치법시행령'을 전면 개정해 완화한다는 방침으로 지역균형발전의 근간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과연 이런 정책이, 독과점을 규제하고 다수 국민의 행복을 추구해야 할 국민의 정부가 펼치는 서민정책이란 말인가?

정부는 대형할인점의 상품 공급원이 결국 재래시장이란 점을 간과하고 있는 듯 하다 . 우리나라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재래상인 및 그 관련 종사자들이 삶의 터전을 박탈당한다면 국가위기와 함께 그 실업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국가적 비용이 소요되어야 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았는가?

매년 우리나라 농업에 투자되는 예산 6조원의 10%인 6000억만 우리나라 재래시장에 투자된다면 시장은 활성화될 수 있다고 한 학자는 진단한다.

구호뿐인 개혁, 거꾸로 달리는 개혁정책이 이 정권의 임기말 정권누수에 의한 '레임덕현상'은 아닌지 안타깝다.

정부관료 및 정치권은 재래시장을 마치 포장마차에서 막걸리 한 잔하고 광대의 볼거리나 연출하는 감상적 공간으로만 보는 듯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

재래시장이 오히려 가격경쟁력이 높고,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에게 외면 당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 및 투자 부재 때문이다.

유통시장 개방과 국제경쟁력 제고라는 이유로 시장경제원리 운운하며 대형할인점을 육성시키겠다는 것은 마치 정부가 대기업에는 전투기와 탱크 등 최신예 무기로 무장시키고, 상인들에게는 재래식 총만 한 자루씩 나눠주고 똑같이 싸우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시장원리에 의한 사회경쟁체제를 부정하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 적어도 다수 상인들의 삶의 터전인 재래시장에, 이제부터라도 조금만이라도 투자를 한 뒤에 그 다음 공평한 경쟁을 하게 해야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 아니던가?

참으로 작금의 정부 정책이 과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동시에 발전시키자는 것인지, 정부의 기능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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