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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중국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한마디는 무엇일까. 중국 CCTV의 모 프로그램에서 사용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가장 인기있었던 한 해”이다. 이제 막 새해가 밝은 지금, 중국인들에게 지난 2001년은 이와 같이 그 어느 해보다도 “가장 인기있었던 한해”로 기억되고 있다.

지난 한해가 중국인들에게 이렇게 많은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소위 역사적인 쾌거라고 불림직한 ‘3대경사’가 한꺼번에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7월 13일, 모스크바로부터 전해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확정’과 9월 17일, 중국의 ‘WTO가입 확정’ 그리고 이어 10월 7일, 44년만에 처음으로 실현된 중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2002년 월드컵 본선진출 확정’등이 바로 그 ‘3대경사’이다.

이외에도 8월말에 베이징에서 열린 역대 최대 규모의 제 21회 유니버시아드 대회와 10월중순에 열린 ‘2001년 상하이 APEC’등 크고 작은 행사까지 포함한다면 지난 일년은 중국 내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중국의 해’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만일 미국에서 ‘9.11’ 테러참사 사건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하반기 내내 중국은 세계의 모든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거인의 비상’을 유감없이 과시했을 것이 틀림없다.

세계경제 ‘침몰’ 중에도 ‘나홀로 성장’

지난 1년간 전세계 경제가 30년만에 처음으로 최악의 저성장률을 기록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미국에서 ‘9.11’ 테러사건까지 일어나면서 미국경제의 유례없는 성장 쇠퇴와 일본의 장기불황 등 주요 선진국 경제가 ‘죽을 쑤고’ 있는 와중에서도 중국은 유일하게 7.3%라는 안정적인 고성장을 유지했다. 비록 외부환경의 악재로 인해 2000년의 8% 성장률보다는 다소 떨어지는 수치이기는 하지만 다른 국가의 저성장률과 비교하면 확실히 중국은 지난 한해 동안 ‘나홀로 경제성장’을 일군 셈이다.

78년 개혁개방 정책 이후부터 본격적인 발전의 궤도에 올라선 중국의 경제성장은 특히 지난 98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중앙정부의 내수확대를 중심으로 한 적극적인 재정정책에 힘입어 연평균 7-8%대라는 고성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의 경우, 세계경제의 침체와 중일무역분쟁 등과 같은 악재로 인해 일부 업종은 이러한 고성장의 혜택을 받지 못했는데, 그 대표적인 업종이 바로 IT분야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중국의 IT 산업은 연초부터 불어닥친 미국 나스닥증시 폭락의 영향으로 인해 쏘후와 왕이 등 나스닥에 상장된 대표적인 포털업체들로 그 파장의 불똥이 튀었고 급기야 중국 IT업계의 영웅이었던 왕쯔동(王志東)이 자신이 창립한 신랑왕(新郞网)에서 퇴출당하는 비운을 시발로 과거 IT영웅들이 줄줄이 쫓겨나는 ‘황혼의 시대’를 맞았다. 현재까지도 계속 감원정책을 펴고 있는 중국 IT업계의 ‘황혼’은 올해에도 그 회복정도가 여전히 ‘불확정적’인 상황이다.

이밖에도 지난해 4월 일본에서 먼저 ‘시비’를 걸어 불거진 중일간의 농산물 무역분쟁은 급기야 중국이 일본산 자동차와 에어콘 등에 대한 보복관세를 선포하는 ‘맞불작전’으로 번지면서 중국의 농산물 수출이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비단 무역마찰로 인한 농산물 수출의 타격 외에도 지난 한 해 동안 중국의 수출산업은 미국경제의 악화로 인해 2000년에 비해 20% 가까이 떨어지는 부진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이들 예외적인 일부 산업 외에, 그 동안 외국인에게만 개방되었던 B증시의 전면개방과 대규모 국채발행, 공무원의 임금인상 그리고 휴일경제의 장려 등으로 내수가 확대되는 효과를 가져와 외부의 영향에 아랑곳없이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고성장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하반기에 터져나온 ‘3대경사’와 미국의 ‘9.11’사건은 해외투자의 흐름을 ‘중국으로, 중국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한 방’이 되어줌으로써 세계는 이제 이 거인의 행보에 온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2001년 중국사회, ‘인민내부의 모순’ 격화

▲빈부격차 문제는 중국 '인민들 내부의 모순'을 격화시키고 있다. ⓒ 박현숙
2001년 중국은 연초에 열린 전인대와 정치협상회의라는 '양회'(兩會)를 기점으로 정치, 경제, 사회 등 제분야에 대한 ‘청사진’ 마련으로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양회’ 기간 중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던 문제들은 ‘신혼인법’과 ‘삼농문제’(농업, 농촌, 농민) 등 그 동안 사회 내부에 침잠해 있던 ‘꺼내기 힘들었던’ 사회적 문제들이 공론화되면서 논쟁은 인민대회당을 떠나 일반인민들에게로까지 확대되는 파급력을 보였다.

‘신혼인법’ 개정논란은 개혁개방 이후 일부 발전된 동부연해도시들에서 만연되고 있는 ‘빠오얼나이’(본부인 외의 정부를 지칭. 혼외정사와 같은 개념)현상을 중심으로 중혼금지 및 이혼에 관한 새로운 규정들을 마련하는 문제였는데, 이것은 비단 법개정의 문제를 떠나 현 중국사회에 드리워진 ‘내부의 모순’을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보여준 사건이었다.

‘신혼인법’ 개정논란 이후, ‘讓愛做主’, ‘一聲歎息’ 등 혼외정사문제를 다룬 TV드라마와 영화 등이 대히트를 기록한 것에서 보여지듯이 이제 먹고 살 만한 부의 수준을 이룬 중국인들은 제도의 구속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에 대한 적극적인 입장표명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국가의 새로운 ‘간섭’과 도덕의 목소리 앞에서 21세기 벽두의 중국인들은 ‘법으로 될 일이 아니다’라는 냉소적인 반응과 함께 법개정 이후 기이하게도 ‘이혼바람’의 유행이라는 반사효과를 가져왔다.

둘 사이의 은밀한 애정에 금이 가기 시작한 ‘혼인’문제와 달리 소위 ‘삼농문제’로 불리는 당대 중국 농촌의 위기와 여기서 확대파생되고 있는 도시·농촌간 소득격차 그리고 더 나아가 이미 위험 수위에 달한 지니계수(소득불평등지수)의 증가로 나타난 빈부격차의 심화는 가장 심각한 ‘인민 내부의 모순’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인민 내부의 모순'을 가장 응집적이면서도 함축적으로 보여준 사건은 2000년도에 처음 공연된 이후 지난해 다시 전국순회공연을 한 연극 '체게바라' 사건이다. 이 한 편의 연극이 중국 문화계와 사회각계에 미친 영향은 그야말로 소리없는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연극은 체게바라의 삶을 모티브로 하여 현재 중국 내에 존재하는 빈부격차와 계층분화, 관료 및 권력의 부패 등 사회적으로 가장 민감한 이슈들을 과감하게 다룸으로써 기층 인민들로부터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은 반면, 소문을 듣고 몰래 이 연극을 보러온 고위관료들은 연극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착잡한 심정으로 자리를 뜨는 상반된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연극 ‘체게바라’ 사건이 은유한 것은 바로, 지금 중국에는 ‘혁명정신’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사라진 혁명의 자리에는 빈부격차의 골과 과거 중국사회의 주력군으로 영웅시되었던 노동자·농민의 지위하락 그리고 하반기에 이들의 ‘몰락’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10대사회계층분화’에서 ‘부자’들과 ‘관료’들이 새로운 사회의 주력군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제 21세기 중국에서의 ‘혁명’은 이들 부자들과 지식관료들의 손으로 넘어간 셈이다.

이러한 중국사회의 쟁점을 압축이라도 하듯이 중국 칭화(靑華)대학교의 인문대 부원장인 리치앙(李强) 교수는 주간잡지 ‘신문주간’(新聞週刊)에서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사회가 정치적 불평등사회였다면 개혁개방 이후의 사회는 경제적 불평등의 사회”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2001년, 중국사회는 이렇듯이 장미빛 경제성장과는 달리 안에서부터 곪기 시작한 ‘인민들 내부의 모순’이 차츰 외부로 전면화된 과도기 사회의 혼란을 노출시킨 한해였다.

2002년 새해, 중국이 ‘꿈꾸는 것’

▲새해, 중국은 21세기판 중국식 '자본론'과 '국부론'을 쓰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있다. ⓒ 박현숙
지난해가 중국에게는 ‘세계속의 중국’으로 비상한 한해였다면 2002년은 한차원 더 높은 ‘세계화’의 발판을 마련하는 해이자 내부적으로는 새로운 지도체제의 정비를 계기로 본격적인 21세기 중국의 밑그림을 그리는 해가 될 것이다.

올해 중국이 준비하는 가장 큰 행사는 하반기에 열릴 예정인 제 16차 당대회이다. 새천년들어 처음으로 소집되는 이 당대회에서 중국은 현 국가부주석 후진타오를 새로운 지도체제의 중심으로 하여 각 성 및 자치구 등의 세대교체와 중앙지도체제의 새판짜기를 통해 ‘중심권력’의 대이동을 실행할 방침이다.

이미 지난해 초 ‘양회’가 열리기 전부터 지방정부의 수뇌급 지도자들에 대한 소폭의 ‘물갈이’와 10월에서 12월까지 지린성(길림성)과 상하이시, 푸젠성(복건성), 광동성 등 주요 성급정부의 핵심간부들에 대한 조용한 세대교체를 한 바 있다. 이러한 간부들의 세대교체 바람은 향후 당대회를 전후로 하여 대폭 확대될 전망이지만, 지난해에 감행된 사전 소폭 ‘물갈이’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가장 큰 특징이 ‘젊은피’들로 수혈되었다는 것과 또 그 ‘젊은피’들의 과거 경력이 ‘청렴’하다는 데 있다.

즉 지난 한 해 동안 중국관료사회를 뒤흔들었던 대형 부패사건들을 염두에 둔 탓인지 제 4세대 지도체제를 구성할 수뇌부들은 자신들의 ‘조력자’들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 비교적 부패의 흔적이 없는 젊고 깨끗한 인사들을 기용했다.

역대 중국의 국가주석 가운데 그 연령이 가장 어린 후진타오의 등장이 상징하듯이 21세기의 두 번째 해인 올해, 중국은 이렇듯이 자신의 얼굴을 ‘젊고 깨끗한’ 모습으로 화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중국이 ‘넘어야 할 산’은 지난해의 ‘인기’소리 뒤에 남은 산적한 난제들이다. 얼마 전 중국사회과학원이 발표한 ‘2002년 사회발전의 난점’들에서도 제시되었듯이 WTO가입 첫해를 맞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국유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과 반독점문제 그리고 갈수록 해결이 어려워지고 있는 실업문제 등 핵심적으로 나서고 있는 현안만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재 ‘10.5 계획’의 주력사업인 서부대개발까지 이루자면 중국의 새로운 4세대 지도자들은 취임 이후 ‘축포’를 터뜨릴 시간도 없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안정적인 고도경제성장 추세는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올해에도 변함없이 7-8%대의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지만, 조심스로운 전제가 붙는 것은 외부환경의 ‘불확정성’이 어떻게 작용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즉 올해에도 미국과 일본 등의 경제가 계속 ‘죽을 쑤는’ 상황이 지속되고 세계정치경제 정세가 계속 구름속을 헤매는 ‘불확정성’이 존재하는 한 중국경제의 성장률도 ‘불확정적’ 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냉혹한 현실정세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중국의 언론매체와 지난해에 이룬 ‘꿈’을 잊지 못하는 일반인민들의 정서 속에는 ‘대중화’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미빛 환상이 가득하다. 그 단적인 증거가 바로 주요 언론매체들에서 선동하고 있는 ‘중국의 세계화는 필연’이라는 논리와 감히 세계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지식인들을 향해 ‘철없고 재수없는 소리는 집어치우라’고 역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중국은 맑스의 자본론과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이 미처 이루지 못했던 것을 21세기에 중국이 바로 그 미완성의 역사를 완성하겠다는 아주 야무진 ‘포부’까지 품고 있다. 즉 21세기판 중국식 자본론과 국부론을 쓰겠다는 것이다.

올해 중국이 이러한 ‘꿈’을 얼마나 이룰 수 있을지는 누구도 함부로 장담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21세기판 중국식 자본론과 국부론의 역사가 어떤 식으로든 시도는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꿈’은 이미 지난 92년 덩샤오핑이 남순강화 당시 한 말에서도 그 단초를 엿볼 수 있다.

즉 “발전이야말로 가장 견고한 도리”(發展才是硬道理)라는 것이다. 무엇이 견고한 도리란 말인가? 이에 대한 해석은 지난해 주룽지 총리가 해주었다. “시장이 있는 곳에 효과와 이익이 있다”(有市場, 有效益)라고. 이것이 바로 현재 중국이 추구하는 ‘견고한 도리’이다.

중국의 ‘꿈’이 이 ‘견고한 도리’안에서 과연 몇 퍼센트나 확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거인의 올 한해가 주목되는 새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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