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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모두 제 잘났다고 떠들기만 한다. 행여 못났다는 책이라도 잡힐까봐 발을 동동 구르면서 눈을 부릅뜬다. 티끌만한 자랑은 황소만큼 크게 하고 황소만한 잘못한 티끌인냥 무시하고 덮어두기 일쑤다.

누군들 제 입으로 자신을 못났다고 고백하고 싶을 것인가.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수상하고 요란스럽게 돌아가다보니 못난 것이 오히려 자랑이요 힘이 되는 경우도 있는가 보다.

네 글, 꾸미면 안된다

교상 이상석은 못나서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그런 사람이다. 그에게는 근사한 훈장이 하나 따라다닌다. 바로 해직교사였다는 것. 교직원노조 결성의 뜨거운 바람이 몰아치던 시절 그는 부산지부의 부지부장으로 활동하다가 교단에서 쫓겨나고 만다. 그 전에도 YMCA 교육자협의회에서 활동한 것이 빌미가 되어 징계를 받는 전과가 있기도 하다.

이쯤되면 교사로서 얼마나 양심적인 삶을 살기 위해 애썼는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꿈 깨시라. 그에게는 뭐 근사한 교육자적 양심과 목표, 신념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학창 시절 너무나 못나게 살아왔던 탓에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밖으로만 떠도는 아이들의 고민과 상처가 얼마나 큰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오지랖이 넓었던 것 뿐이니까 말이다.

학창시절의 이상석에 대한 고백을 한번 들어보자. 그는 철저한 문제아였다. 인생이 뭔지 산다는게 뭔지 너무 일찍 알아버린 탓에, 초라하게만 비치는 자신이 끝내 못마땅해 방황과 반항을 밥먹듯이 일삼고 다녔다.

차라리 아주 그 길로 나설 수 있을만큼 대단한 말썽이라도 피우고 다녔더라면 억울하지나 않았을 것을. 미적미적 골방에서 제 몸 썩어가는 지 모르는 엉터리 철학자처럼 가출과 음주, 싸움을 일삼으며 허랑방탕한 세월을 보냈던 것 뿐이다.

아무리 못나고 보잘 것 없는 지난 시절도 이런저런 해명과 의미를 같다 붙이면 그럴싸하게 보이기 마련. 이상석이 과거의 못난 자신을 고백하면서 가장 경계했던 것도 바로 그런 부분이었단다. 혹 그런 탕자의 시절을 훌륭하게 이겨내고 오늘날의 존경받는 스승으로 거듭난 성공 스토리로 비칠까 두려웠다는 것이다.

"이렇게 솔직하기도 쉽지 않아"

책의 첫 장을 넘기면 추천사를 쓴 윤구병 선생의 글이 눈길을 붙든다. 선생은 지은이가 떠맡기다시피 안겨놓고 달아난 글 뭉치를 보면서 내심 미운 눈으로 흘겨봤노라고 고자질 한다.

고된 농사일 틈틈이 글을 읽어주지 않는다면 또 얼마나 자신을 괴롭힐까 걱정스러워 어쩔 수 없이 읽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오히려 술술 읽히며 잠을 싹 앗아가는 그의 솔직한 이야기에 적잖이 감동하고 놀랐다고 말하기도 한다.

40년 전 우리 삶의 꼼꼼한 복원도인 '삘기 뽑아 먹던 언덕'부터 시작해, 반항을 시작하던 중학생 시절, 지금까지 소중한 우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박재동 화백과의 만남과 사귐, 첫사랑의 가슴앓이 사연, 3류 고등학교에 가까스로 입학하고도 어설픈 철학자 흉내를 내며 겉돌기만 했던 방황의 시절, 생애에 있어 가장 행복했던 4월을 경험토록 해준 재수 시절,

천하의 고문관으로 이름을 날렸던 군대시절과, 침묵할 자유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박정희 군사독재에 대한 기억까지 흥미진진하고 솔직한 고백이 가득 담겨 있다.

이 책의 중심을 가르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 상처를 주는 것도 인간이고, 그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도 인간이다. 못났다고 타박하는 것도 인간이며, 그 타박에 기를 펴지 못하고 누죽 드는 것도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다양하고 유별난 경험이 있었기에 지은이의 못난것도 힘이 된다는 고백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셈이다. 거친 세상, 점점 더 없는 사람들이 살 맛을 잃어가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나보다 못나게 살았으면서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희망이 있다고 믿고 그것을 불사르는 지은이 이상석과 그의 친구들이 있기에 살아야 한다고 못난 덕에 더욱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어 본다.

덧붙이는 글 | 자인 / 210쪽 / 7,000


못난 것도 힘이 된다

이상석 지음, 박재동 그림, 양철북(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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