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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통령은 핵실험을 다시 실시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핵실험 계획은 없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애리 플레이셔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1월 9일 밝힌 핵실험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이다. 플레이셔는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계속 고수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특히 핵무기가 감축될 경우 핵무기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입증하기 위해 지하 핵실험을 재개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부시 대통령의 공식 입장 발표는 '핵태세 보고서(NPR)' 작성이후 벌어진 논란을 일단락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1월 첫째주에 미 의회에 전달돼 비밀리에 검토에 들어간 것을 알려진 NPR에서는 핵실험의 재개 여부, 지하시설 파괴용 소형핵탄두의 장착 여부, 그리고 핵무기 감축 수준 및 그 성격 등을 놓고 논란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월 9일 '일부'가 공개된 NPR 보고서에서는 기존의 핵억지력에 의존해온 방식에서 탈피해 전략핵무기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대신, 정밀 유도 재래식 무기 및 정보전에 대한 의존 강화, 새로운 방어체제로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등을 추진할 것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냉전시대와는 달리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갈 것인가? 그리고 2000년 5월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검토 회의에서 국제사회에 '모호하게' 약속한 핵무기의 완전 폐기로 점차 이행하고 있는 것일까?

핵패권의 유지·강화

부시 행정부의 핵정책의 본질을 들어다보면 이에 대한 대답은 극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우선 부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약속한 핵무기의 획기적인 감축은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NPR 보고서에서도 현재 약 7000기 정도의 핵탄두 가운데 1700-2200기를 "실전 배치(operationally deployed)"하겠다고 밝혀, 나머지 핵탄두가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네바다 핵시설에 '저장'될 것임을 강하게 암시했다.

미국의 핵감축 정책이 '폐기'가 아닌 실전배치 핵무기를 줄이면서 나머지 핵무기는 '저장'하는 방향으로 확인됨으로써, 러시아의 반발 역시 강해지고 있다.

NPR 보고서의 내용이 일부 공개된 직후 러시아 외무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는 미국과 함께, 첫 번째로 핵무기의 대폭적인 감축, 두 번째로 이러한 감축에 대한 검증, 세 번째로 감축된 핵무기를 되돌릴 수 없는 방안 등을 놓고 협상을 맺어 왔다"며 이번 미국의 핵정책은 수천 기의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을 목표로 한 새로운 군비통제 협약에 대한 양국간의 신뢰를 해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부시 행정부의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의 일방적인 탈퇴 및 MD 구축 강행에 이어, 핵감축 계획 역시 '기만적인' 것임이 드러남에 따라 러시아의 대미 의구심은 더욱 증폭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핵억지력을 최소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것이 결코 핵억지력의 포기나 비중의 '절대적인'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냉전시대에 대소 억지력으로 주로 활용해온 핵억지력을 21세기에도 기본적으로 계속 유지하되, MD와 같은 다른 방어 수단 및 비핵 억지력의 강화와 같은 다른 수단을 통해 보충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핵공격을 비롯한 공격체제, MD와 같은 적극적인 방어체제, 새로운 정밀 유도 무기 및 지하시설 파괴무기와 같은 신무기체계 등을 '새로운 삼각 전략(New Triad)'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핵전략은 4주년 국방정책 재검토(QDR)에서 새로운 국방 지침으로 내세운 '능력에 바탕한 접근법'을 핵정책에도 채택한 것을 의미한다. 즉, 기존의 '위협에 바탕한 접근'으로는 북한, 이라크 등 이른바 '깡패국가들'의 점증하는 위협 및 테러와 같은 비대칭 위협에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이러한 위협을 막강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통해 파괴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는 것을 21세기의 핵정책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핵정책은 핵실험 재개 선택권 보유, 지하시설 파괴용 소형 핵탄두 개발 추진, 미사일에서 분리된 핵탄두의 '폐기'가 아닌 '저장'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의 반핵단체들은 "부시가 핵무기 감축 시대를 열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를 내버리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미래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분리된 핵탄두를 '저장'하는 것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스스로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반핵단체들이 강력하게 요구한 핵선제공격 옵션의 명시적인 포기와 오작동으로 우발적인 핵전쟁을 야기할 수 있는 '경보 즉시 발사' 시스템의 해제 등에 대해서도 부시 행정부가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아, 미국이 21세기의 새로운 핵위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이처럼 한편으로는 "냉전시대가 끝났다"며 새로운 전략으로 MD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구시대적인 핵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테러와의 전쟁의 초점을 핵위협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위협 제거에 맞추겠다고 공언하면서도, 스스로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국제법 차원에서 다룰 수 있는 각종 군비통제 조약을 위기에 몰아넣고 허울뿐인 '핵감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9.11 테러이후 무늬만 띤 '다자주의'조차 포기하고 다시금 일방주의로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다음에 이어질 글 : MD 참여의 비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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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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