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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하기를 사람의 가슴에 한 번 찍히면 결코 없어지지 않는 화인(火印, 불도장)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전쟁과 사랑이라고 했다. '호타루'는 바로 그 전쟁과 사랑을 담은 영화이다.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45년, 일본 가미가제 특공대의 가네야마 소위는 한국인이다. 그는 일본인 약혼녀 도모코를 두고 출격해 목숨을 잃고, 약혼자의 죽음에 애통해하는 도모코 곁에는 살아남은 부대원 야마오카가 있다.

전쟁이 남긴 상처와 사랑의 상실에 서로 아픈 두 사람은 부부의 인연을 맺긴 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고 주어진 수명만 다하자고 약속한다.

신장병으로 정기적인 투석을 해야 하는 약한 아내, 그 아내를 위해 남편은 먼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아내의 이름을 딴 '도모마루호'를 가지고 양식업으로 생계를 이어나간다.

천황의 서거와 그에 이은 특공대 동료의 죽음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전쟁 때 어머니처럼 보살펴주던 도미코 할머니가 간절한 부탁을 해온다. 가네야마, 즉 김선재 소위의 유품을 한국의 안동 근처에 살고 있는 유족에게 전해달라는 부탁이다.

많은 갈등과 고민 끝에 야마오카는 아내 도모코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고, 유족을 만나 가네야마 소위의 유품과 자신이 직접 들었던 유언을 그대로 전한다. 그리고 돌아서는 그들 앞에 반딧불이(호타루) 한 마리가 보인다.

일본인에게 전쟁은 무엇일까. 패전 세대인 노인들이 안고 있는 전쟁의 상처는 너무 깊어 그 무엇으로도 치유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특공대원들의 어머니로 그들을 품어주었던 도미코 할머니의 절규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젊음이들의 꿈을 빼앗았다고, 진정한 어머니라면 자식에게 죽으라고 할 수 없다고, 오히려 어머니 자신이 죽음으로써 자식을 지키는 법이라고…"
어머니의 땅, 조국에 대해 이보다 더 깊은 회한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 사랑은 또 무엇일까. 가네야마 소위는 '당신이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는 유언을 약혼녀에게 남긴다. 그 때의 약혼녀 도모코는, 평생 사랑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자신을 옆에서 지켜주며 함께 해준 남편 야마오카에게 '당신과 함께 살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루지 못할 꿈과 약속을 남기고 세상에서 사라진 채 마음 속에 남은 사랑. 그리 애틋하지도 뜨겁지도 않지만 늘 함께 있으며 일상을 나누는 사랑. 그 누가 있어 어느 것이 더 무거운 사랑이며, 어느 것이 더 깊은 사랑이라고 판가름할 수 있을까. 노년기에 돌아보는 사랑은 그래서 그 어느 것이나 다 안타깝고 그리우며 가슴 저릿한가 보다.

'당신이 있어 정말 행복하다'는 말과 함께 '내가 있어 당신 정말 행복한가요?'를 묻고 싶은 것은 아마도 내가 아직 노년기가 아닌 중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호타루 / 감독 후루하타 야스오 / 출연 다카쿠라 켄, 다나카 유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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