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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 존재 이유와 가치에 대한 원초적인 문제 의식과 그 문제 의식에 정직하고도 당당하게 마주서서 살고 있느냐는 것이다" (도법스님)
'내가 본 부처'
벌써 세 번째, 스님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 도법스님께서 보내주신, 스님의 책 속지 위에 붉은 나뭇잎 한 장, 곱게 물들어 있습니다.
살풋 웃음이 나옵니다.
그 바쁘신 와중에도 단풍든 낙엽을 주어다 지인들에게 보낼 책 갈피갈피 붙이고 계셨을 스님을 생각하면 왜 웃음이 아니 나오겠습니까.
실상사, 따뜻한 겨울 오후 햇살이 이 먼 섬까지 전해져 옵니다.
벌써 두달이 훌쩍 지나갔군요.
작년 11월, 실상사에 다녀왔습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 여덟시쯤이나 됐을까.
게으른 탓에 아침 공양을 놓치고, 실상사 경내를 배회했습니다.
집 떠나 여러 날을 떠돌다 실상사까지 갔었지요.
산 첩첩 물 첩첩, 그때는 마음도 첩첩이었습니다.
꼭 일년만에 다시 찾은 실상사.
도법 스님을 뵙고 가야지 싶어 스님의 처소로 향했습니다.
화엄학림 곁을 지나는데 행자 한 분이 수레를 끌고 있었습니다.
나이 들고, 깊게 주름이 패인 행자.
그는 또 어느 먼 곳에서 온 것일까.
나는 스님 방문 앞까지 굴러갔습니다.
신발을 보니 안에 계신 듯 했습니다.
스님, 계십니까, 하는 말이 혀끝까지 튀어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습니다.
아주 잠깐의 망설임 끝에 나는 조용히 돌아섰습니다.
절 집 살림은 물론, 지리산 살리기와 귀농 학교 운영, 실상사 농장의 농사 등, 늘 크고 작은 많은 일에 시달리고,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시느라 스님께서는 얼마나 고단하실까.
모처럼 한가한 아침 시간을 보내고 계신데 내가 방해한다면 도리가 아니겠지.
그날 나는 남해 먼 섬에서 지리산까지 건너가 스님을 뵙지 않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내가 스님을 아주 만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몸으로 만나는 것만이 만남이겠습니까.
실상사를 나와 비로소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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