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희식

새벽에 귀가하여 늦게 잠든 탓에 눈이 잘 뜨이지 않는 이른 아침에 떼르륵 떼르륵 전화가 왔다. 여산 가는 길에 위치한 가톨릭 천호성지에서 온 전화였다.

장성으로 해서 담양, 그리고 지리산으로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그곳의 신부님과 함께 서울과 광주에서 온 4명의 일행이 기다린다고 했지만 나는 점잖게 사양했다.

내 몸과 마음에 짙게 배인 설 명절을 음미하고 풀어내는데도 남은 설 휴가는 넉넉하지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집에 도착한 안도감을 더 즐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맞다. 아직 방심할 때가 아니다. 서울 가는 고속버스표를 예매하면서부터 시작된 설 쇠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게 분명하다. 오늘은 온전히 쉬어야지. 동요하지 말고 얌전히 구들장 짊어지고 집을 지켜야겠다.

메마른 들판과 울창한 숲. 햇살 가득한 앞마당에서 하루를 보내야겠다. 어제 밤 큰스님께 세배 드리려 방문했던 김제 귀신사를, 이번 설 마지막 일정으로 삼아야겠다. 꼭.


설치레 대신 세뱃돈
ⓒ전희식
옛날에는 내복 한 벌이나 운동화 한 켤레가 설치레 최고의 기대치였지만, 옷이나 신발은 필요하면 언제나 살 수 있는 요즘이고 보니 세뱃돈이 아이들 최대의 관심사가 됐다. 십만 원이네 이십만 원이네 수금장부 챙기듯 하는 세태에 대한 반발감도 있고 하여 나는 항상 선물로 설 세뱃값을 준비했었다. 올해는 그마저도 귀찮아서 돈으로 때웠다.

조카들 하나하나 떠올리며 액수로 보나 가치로 보나 결코 밑돌지 않을 선물을 준비해도 요녀석들이 노골적으로 현금을 더 바라는 기색이다. 작년에는 이를 감안하여 사전에 봉투를 하나씩 나눠주고는 원하는 액수와 용도를 적어서 내라고 하였다. 물론 적어낸 전액을 세뱃돈으로 줬다.

이 게임은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염치 차리느라고, 또는 무슨 함정이 있지는 않나 잔머리 굴리느라고 적게 적어낸 녀석은 쪽박을 찼고 우리 아들 새들이 같이 눈치코치 안 보고 때로는 과도하게 진지한 녀석은 대박(?)을 터뜨린 경우였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조카와 얼마 전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은 또 다른 대학생 조카에게는 만 원짜리를 한 장씩 더 얹어줬다. 나는 우리 집안 막내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항상 남는 장사를 한다. 큰 형님들이 먼저 우리 새날이 새들이에게 주는 세뱃돈 액수를 빠르게 합산하여 내가 세배 받을 차례가 되기 전에 조카들에게 줄 세뱃돈 정산을 끝낸다.

새해 소망을 설명하게 한다든가 어른들께 창조적이고 개성적인 인사말을 올려보라든가 하면서 조카들과 세뱃돈을 가지고 흥정을 벌이는 재미도 막내라는 나의 입지조건이 주는 혜택이기도 하다.

막내인 나에게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는 나만 주시는 거라면서 애들 내복 사 입히라며 꼬깃꼬깃 4만 원을 쥐어주셨다. '막내인데 뭘'하면서 나는 염치 불구하고 덥석 받아 챙겼다.


정보화사회의 새해 인사법

설 전날 형님들과 조금 과하게 마신 곡주 탓에 나의 설날 아침은 아주 늦게 시작되었다. 휴대폰에 두 개의 문자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각각 남자 후배와 여자 후배가 보낸 메시지였다. 휴대폰 액정에 박힌 후배의 마음을 들여다 보았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부자 되세요'

부자가 되라. 언젠가는 선배님이야 말로 최고의 부자라고 찬사를 퍼 붓더니 다시 보니 아무래도 가난해 보인단 말인가? 아니겠지 올해도 여전히 부자로 살란 말이겠지.

'햇살이 눈부십니다. 세배 드립니다'

세배라니. 갑자기 내 옷 매무새와 마음 품새가 살펴졌다. 그래. 나도 세배 드립니다. 작년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마음공부 큰 정진 있으시고 정갈한 한 해 되기를 빈다.

아뿔사. 이런 인사법이 있었구나. 나도 수첩을 뒤져가며 문자 메시지를 날렸다. 세뱃돈 장사에서도 그랬지만 문자메시지 장사에서도 나는 확실히 남는 장사를 했다. 문자를 열 네 군데 보내고 다섯 군데서 받았기 때문이다. 정초부터 인사와 덕담에서 베풀기보다 받기를 더 많이 하면 일년 내내 그 빚진 마음을 어떻게 짊어지고 살아간단 말인가.

14:5의 이문을 남겼다고 흥겨워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자 두 개가 왔다. 고속버스에 지그시 몸을 누이고 잠이 들었는데 휴게소에서 깨어보니 문자가 두 개 와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뜻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건강과 사업번창을 빌어주는 덕담이었다. 이번에 전주시장 선거에 입후보한다고 지방지에 여러 차례 오르내리는 분이었다. 좀 우직하다는 느낌을 주곤 하던 분인데 이런 감각을 다 발휘하다니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생각에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설 인사를 하시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의원님.


전용차선의 원활한 소통
ⓒ전희식
사전에 예약을 했지만 고속버스가 없었다. 아예 터미널이 텅텅 비어 있었다. 상행선이 막히다 보니 하행선에 투입될 버스가 동이 났단다. 그래도 예정시간보다 20분 뒤에는 고속버스가 출발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신이 났던 것은 전용차선으로 버스가 내달리는 것이었다. 승용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우리 식구가 탄 버스는 정상 속도로 달렸다.

휴게소에서 아이들이 뭘 사먹겠다고 나서지 않아서 의외였다. 두둑한 세뱃돈이 있음에도 군것질을 하려고 하질 않는다. 그러고보니 설 음식도 떡국이나 야채 전 이외에는 고기를 한 입도 먹지 않던 것이 떠올랐다.

'생명사랑 채식연합'에서 나온 '채식은 사랑입니다'와 아난다마르타 명상센타에서 출판된 '채식인을 위한 명상법'이라는 책을 함께 읽으면서 그네들 나름대로 음식에 대한 관점이 형성된 듯하다. 언젠가 '한겨레21'에 나온 햄버거 특집 기사를 읽고 나서 그 후로는 새날이가 다시는 햄버거를 입도 대지 않았다.


스님께 3배를 드리고

살아감에 있어 큰 스승을 모신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은총이다. 설날 꼬박 꼬박 세배 드리러 갈 정도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고속버스가 전주에 도착할 즈음 전날부터 일정을 맞추어 보던 송형네가 거의 전주에 도착하고 있었다. 집이 전남 보성인 송형네와 우리는 귀가길에 함께 만나 귀신사 용타 큰스님께 세배 가기로 했다. 작년에도 그랬다.

전주 외곽에서 만난 우리는 어른들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서로 껴안고 새해 인사를 푸짐하고 따뜻하게 나누었다. 언제 봐도 초롱초롱하고 생기 넘치는 송형네 부부가 참 보기 좋다.

밤 9시면 절 시간으로는 한밤중인데도 용타 큰스님은 반가이 우리를 맞아주셨다. 주무시던 주지스님이 얼결에 부스스 일어나시게 되어서 너무 죄송스러웠다.

'스님 새해 인사 드리겠습니다'했더니 우리보다도 먼저 예를 갖추신다. 우리 일행은 공손히 3배를 올렸다. 마지막 3배째는 무한배를 올렸다. 애들은 스님이 주시는 지폐가 깔깔한 새돈이라고 손바닥에 올려놓고 까불댄다. 스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지극한 덕담을 나누어주셨다.

다들 MBC 드라마 '상도'를 보기 시작할 때 나와 스님은 스님 거처로 올라갔다. 메일클라이언트를 다시 셋팅하는 작업을 하나하나 안내해 드렸다. 특히 POP3 서버 설정을 끝내고서 내가 한마디했다.

스님 제가 인터넷 강의를 나가기도 하는데 스님은 제가 접했던 다른 수강생들과 비교하면 몇 점이나 되는지 궁금하지 않으시냐고 장난스레 물었다. "그래. 몇 점이야?"하시는 품이 호기심 많은 학동 같다. 95점이라고 했더니 대경실색을 하시면서 좋아하신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시고 교직에 몸담았던 분이시다.

송형네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향해 가고 우리는 이곳 시골집으로 향했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동네 한바퀴 돌다가 몸은 흠뻑 술에 젖고

객지에서 온 아들딸들이 하나둘 시골 동네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들딸들의 아들딸들까지 왁자지껄 산골 동네를 다 빠져나간 뒤 나는 어슬렁어슬렁 세배를 돌기 시작했다.

보또랑 끌어다 논에 물대듯이 간단히 돌아오겠다는 다짐도 무색하게 가는 곳마다 술상이 나왔다. 노인네가 직접 담갔다는 매실주나 오미자술에서부터 자식들이 가져왔다는 고급 양주까지 나왔다.

딱 한잔만 딱 한잔만 하다가 급기야 얼굴에 홍조가 넘실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왜 세뱃돈은 안주고 술만 주냐'고 떼를 부리는 척하면서 끈질긴 자리를 겨우겨우 일어서 나오곤 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