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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레고 마니아라는 훈이(10)가 레고 동호인들의 오프라인 모임에 가고 싶어 했다. 몇 달 전부터 아이가 인터넷 까페 '레사모'(레고를 사랑하는 모임, cafe.daum.net/lesamo)에 가입하여 열심히 드나드는 건 알고 있었다. 이제 직접 모임에 참석하겠다며 엄마가 동행해 달라는 거였다. 말릴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해 '취재차'라는 꼬리를 달고 동행하기로 약속했다.
평소 아이들이 가장 잘 가지고 노는 장난감인 레고블록은 제국을 이루며 훈이 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부수고 만들고 이야기를 꾸미고 다시 바꾸어 만들며 아이들은 몇 시간이고 열중해서 잘 놀았다. 카페에다 자기가 창작한 작품을 설명하는가 하면 새로운 이야기를 꾸며 올렸다. 금방 싫증내는 다른 장난감에 비해 레고는 이런 감탄을 자아냈다.
"역시 본전 찾는 장난감이라니까!"
학교나 교회 말고 아이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는 모임에 간다니 나도 공연히 설레었다. 엄청난 취재를 앞둔 기분으로 남편과 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작전도 짰다. 훈이가 혼자 서울에 가는 것처럼 하고 나는 그야말로 동행취재를 한다는 것이다.
지난 달 마지막 토요일, 2시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훈이는 12시에 집을 나섰다. 훈이는 회비 8000원과 차비, 비상금으로 4000원을 지갑에 넣고 수첩을 챙겨 들었다. 나는 카메라를 챙겨 들고 아이를 따라 나섰다. 녀석은 꼼꼼하게 노선도를 보고 또 보며 시내버스와 전철을 타고 목적지를 잘 찾아갔다.
전철역에서 손에 레고를 든 사람들을 보자 훈이는 회원이라고 생각하고 나더러 뭐라고 말했다.
"네가 다가가서 인사해 봐. 레사모 회원이라고 자기 소개도 하고."
녀석은 쭈빗거리며 그들 주위를 맴돌았다. 다행히 그들이 아이를 알아보고 인사를 해 함께 목적지로 향했다. 모임장소인 식당에 도착했을 때 나는 훈이와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엄마가 곁에 앉지 않아 녀석은 섭섭한 얼굴을 했지만 금방 그 의미를 깨닫는 듯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처음에 18명, 나중에 한두 명씩 오면서 서른 가까이 되었다. 오는 대로 고기 뷔페로 점심을 먹으며 서로 대화하고 사귀는 모임이었다. 대부분 20대 직장인과 대학생들이었고, 초등생 2명, 중학생 6명이었는데 훈이가 제일 어렸다. 회원수는 현재 1000명이 넘는다는데 초등학생부터 30대 아저씨까지 다양하단다. 레고 동호인 카페는 레사모 말고도 몇 개 더 있다. 아이들 장난감으로만 알고 있는 레고를 어른들이 마니아가 돼 좋아한다는 게 내겐 신기하기만 했다.
1월 정기모임은 2월에 있을 전시회를 준비하는 모임이기도 했다. 전시회는 다른 레고 카페들도 함께 준비하는 거란다. 성인 회원들이 필요한 돈을 지원하고, 전시할 제품을 사서 지원해서 준비중이었다. 식사가 끝난 회원들이 한 쪽에 모여 전시할 모델을 놓고 토론을 하는가 하면 국내에 없는 모델을 구입한 고생담도 나누었다. 주로 고난도의 시스템과 테크닉 모델을 전시할 예정이라 훈이 같은 아이들에겐 버거운 거였다. 전시회 수익금은 레고의 즐거움을 못누리는 불우 어린이들에게 레고를 선물할 계획이란다.
까페 운영자인 조태상(27) 씨의 경우 일곱 살 때부터 레고를 시작했다는데 레고 전문가라는 말이 어울리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가 지난 20년 간 수집한 레고블록으로 그의 집은 그야말로 레고성이었다.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되는지 물었더니, "10년 전에 4천만 원 정도였다는 것만 기억한다"고 했다. 직업이 수영강사인 그의 변함없는 꿈은 완구점 주인이었다.
대학을 다니다 병력특례로 회사를 다니고 있는 회원 배상호(23) 씨의 말을 들어보면 레고하는 즐거움을 알 것 같다. "레고를 만들고 있을 땐 동심으로 돌아가요. 사회생활의 스트레스를 잊게 되고 마음이 편안해요. 만들고 사진찍고 카페에 올리고 집안에 장식하고..."
대학생인 이모 씨는 최근 레고 사는데 12만 원을 썼단다. "돈이 많이 들어 구입은 주로 방학 때 하죠. 물건들이 레고 블록으로 보여 직접 창작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쿨보더라는 회원은 레고를 사는데 한 달에 많으면 60만 원 정도를 썼다고 하고, 작년 한 해 160만 원 정도를 썼다는 중학생도 있었다. "시험을 잘보았을 때나 선물 받을 기회있을 때마다 부모님이 레고를 사주셨죠. 그러나 고등학교 가면 그만 하길 바라시는 아빠 때문에 고민이예요."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도 하지만 작고 값이 싼 모델들을 주로 사는 내게 있어 그 액수는 엄청나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 최근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게 지금까지 산 것 중에서 가장 값이 비싼 2만 원대였는데, 그것도 곱하기 3을 하면 적은 게 아니었다(남편이 아이들 선물을 위해 용돈을 따로 모은 눈물겨운 사연까지 있다). 마니아라는 말의 뜻을 새롭게 느꼈다고나 할까.
"아이가 커도 계속 레고 갖고 놀게 할 거예요?"
한 회원이 내 마음을 읽은 듯 던진 질문이었다. 전에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에 궁한 대답을 해야 했다.
"자기들이 좋다고 계속하면 억지로 말릴 수야 있겠어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노는 장난감들이 달라지듯, 레고도 그런 것중의 하나로 생각했다. 큰 애 둘이서 막내를 데리고 레고에 열중해서 함께 놀 땐 고맙기까지 한 장난감. 손을 많이 쓰고 창의적으로 만들고 부수고 이야기 꾸미고... 교육적으로 좋고 오래 놀 수 있으니 본전을 톡톡이 뽑아 좋은 장난감이었다.
"아이가 커도 계속 레고 놀게 할 거예요?"
마니아의 세계를 기웃거린 그날의 동행취재 끝에 귓전을 맴도는 질문이었다.
"중학생쯤 되면 재미가 별로 없을 거야."
편하게 생각하는 아빠와 단호한 아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절대 안 그럴 걸요. 내기 걸어요, 아빠."
"그래 좋아. 무슨 내기?"
"제가 중학생이 되어서도 레고 좋아하면 30만 원 짜리 레고 사주시는 거예요."
"좋아. 내기 걸었다."
녀석이 이런 내기를 잊을 리도 없고, 승부는 이미 난 거 아닐까. 그러나 두 사람 다 승리는 자기 거란다.
훈이만이 아니라 동생들까지 기다려 온 레고전시회가 오늘(18일)부터 열린다. 나는 '취재차' 세 아이들과 레고 전시회를 보러 간다. 현대백화점(미아점) 10층 전시실, 2월 18일-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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