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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이를 낳기 전만 해도 내가 '아줌마'임을 인식해 본 적도 없고, 사람들 역시 나를 아줌마로 보지 않았다. 법적으로 한 남자와 혼인관계에 있고, 저녁 무렵에 그 남자의 밥에 신경을 써야 하는 약간의 불편을 제외하곤 난 결혼 전과 다름없이 일상을 보냈다.

먹고 싶으면 먹고, 먹기 싫거나 밥이 하기 싫으면 남편에게 서슴없이 외식하자고 했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주저 없이 나서기만 하면 됐다. 일상이 따분하다고 생각되면 남편과 PC방에도 가고, 만화가게도 가고, 때론 늦은 막차를 타고 산사에도 가보기도 했다. 홀몸의 단조로운 기간이 길다는 생각에 적잖이 괴로웠던 적도 있었지만, 컴퓨터가 없어도, 자동차가 없어도 놀이와 장소를 찾아가며 잘 놀았다.

그로부터 불과 2년밖에 안 지난 지금 나는 내가 봐도, 남이 봐도 영락없는 아줌마다. 해가 바뀔수록 짙어지는 기미는 매일 아침 거울 속에서 아줌마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어딜 가나 혹처럼 붙어 있는 25개월짜리 아이의 존재는 아줌마의 삶에 날 아주 깊숙이 밀어 놓았다.

전날 밤을 샜건 안 샜건 아이의 아침을 거르지 않기 위해 늘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면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다시 반복된다. 대체로 아침밥 먹이기를 시작으로 간단한 집안 일(결코 간단하진 않다!) -> 아이랑 놀아주기 -> 점심밥 먹기 (세 끼를 꼬박 챙기다니! 그래서 아줌마는 살이 찐다) -> 낮잠잘 시간 동안 잠시 신문, 책보기 -> 놀아주기 -> 저녁준비 -> 저녁밥 -> 씻기기 -> 재우기로 끝난다.

이렇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화 없이 살다보니, 날짜 개념, 요일 개념도 없어졌다. 아, 그래도 주말은 월요일부터 꼭 체크하고 기다리는데, 그날은 그래도 아이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바람이라도 쐴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추운 날씨로 갈 곳도 마땅찮아 집 안에 주로 있기에 주말을 제외하고 계속 반복되는 일상이다.

아이가 갓난 아기땐 그래도 낮잠도 많이 자고, 행동반경도 그리 넓지 않아 신문이나 책을 볼 '짬' 정도는 있었는데, 지금은 낮잠도 줄어든데다 온 집안을 종횡무진 누비면서 난장판을 만들고 잘 놀다가도 엄마가 신문이라도 집어들라치면, "엄마, 신문 안 돼, 싫어!"하고는 와락 달려들어 신문을 꾸기고, 째고, 그리고는 다른 방에 갖다 버린다. 그 옛날엔 컴퓨터가 없어도 PC방 가면 그만이었는데, 지금은 있어도 자판기를 만지지도 못한다.

사실은 얼굴에 낀 기미보다는 나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요구와 입장에 우선 촉수를 갖다대는 반복된 일상이 더 아줌마라는 걸 인식시킨다.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생활에만 전념(?)하면서 본격적으로 또래의 아줌마들 관계 속으로 들어 그들과 수다를 떨면서, 흔히 말하는 아줌마 문화도 알게 되었다. 처음의 약간 서먹한 관계에서 아줌마들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남편과 아이 이야기로 일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의 농도가 짙어지든, 옅은 그 상태이든 그 농도에 따라 털어놓는 속내는 내가 갖고 있었던 것과 통했다.

자신의 욕구와 바람이 뒷전이 된 채 육아에만 자신의 에너지가 다 소진되는 생활에 다들 답답해 하고, 때론 지겨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아이의 옷, 음식, 교육에서는 아주 열성적이었고 행복해 했다. 나 자신도 그랬지만 어릴 적 인형놀이할 때의 기분과도 연결해볼 수 있었다.

이런 현실에서 자신을 집안에서 해방시키고, 때는 조기교육 열풍을 타고 아기에게 다양한 '자극'을 주고, 아파트 철문들 속에선 사귀기 힘든 이웃을 사귄다는 명분에서 선택하는 것이 바로 백화점이나 문화센터의 유아프로그램이었다.

나 역시 지방에서 아무 연고 없는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오면서, 문화센터에 아이랑 함께 하는 체조놀이를 수강했다. 지금까지 나는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 원하는 프로그램을 수강하지 못해도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하면서까지 끊이지 않고 이용하면서 문화센터 주변에서 수업이 끝나고도 자리를 뜨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나누는 또래의 아줌마들을 1년여 동안 보고 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 한 대형할인마트 문화센터에서 마련한 수유실에서 아기 기저귀를 갈고 있다가 옆사람과 으레 아기 있는 엄마들이 주고받는 인사를 나누었다. 바로 아이의 개월수인데, 그냥 묻고 대답하는 식이 일반적이어서 그 날도 그랬더니,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은 종일 주더니 "놀러 오세요"하는 거였다.

묘한 기분이었다. 어설프게 웃으며 주머니에 넣곤 밖으로 나오니, 매장을 가득 채운 예쁜 아줌마들이 눈에 들어왔다. '수유실 안의 여자들과 그리고 매장 안의 아이 업은 많은 여자들, 모두가 갈 곳이 필요한 사람들이구나, 백화점이 그렇듯이 할인마트 역시, 가고 싶지만 갈 곳이 마땅히 없는 아줌마들에게 열린 '사회생활'의 공간이구나' 그건 내게도 해당되었다.

정말 아줌마들이 갈 곳은 많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거의 다 아줌마를 소비자로 떠받드는 곳만 있지 생산의 주체로 설 수 있게 도와주는데는 매우 인색하다. 요즘엔 여성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예전보단 많이 주고는 있지만, 나같이 취업을 하고 싶어도 아이 때문에 아예 포기하는 사람에겐 취업이 아닌 다른 공간도 사회가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취업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육아에 전념하는 아줌마들에게도 조기교육 상품을 소비만 하게 하지 말고,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을 좀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프로그램 역시 지역사회가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아이가 두 돌이 지나면서 운동량도 많아지고, 제 주변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졌다. 올 겨울엔 엄마가 자기 일을 찾느라 나름대로 개기느라, 아이는 엄마와의 일주일의 한 번 문화센터 나들이를 잘 하질 못했다.

애초에 바깥나들이가 좀 힘든 시기에 엄마랑 실내에서 놀 목적으로 이용했던 프로그램이었으니, 이번 봄 학기엔 수강을 하지 않았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어찌 실내에서 충족시킬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과 나 자신의 길찾기 과정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는 이웃 아줌마들은 집밖으로 나가기 위해, 아이의 교육을 위해 봄 학기를 수강하고 있다.

정말 아줌마들에게 백화점이나 문화센터 말고는 갈 곳이 없을까?

덧붙이는 글 | 사람마다 세상사를 보는 눈은 다릅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똑같은 사건도 각기 다르게 해석합니다. 오늘 우리는 아줌마들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려 합니다. 거창하게 페미니즘을 말하자는 것이 아닙니
다.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아줌마들의 시각으로 전하고자 할 뿐입니다. 

'아줌마들만 봐!' 연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오늘부터 약 2주간 한 편의 글이 '아줌마들만 봐!' 타이틀로 오마이뉴스에 연재될 것입니다. 남편을 말한다(2월 18∼19일), 결혼을 말한다(2월 20∼22일), 아줌마를 말한다(2월 23∼26일), 육아를 말한다(2월 27∼ 3월 1일), 나를 말한다(3월 2일 ∼ 4일)의 소제목에 따라 각각 두세 편의 글을 올립니다. 

마침 2월 22일은 오마이뉴스 창간 2주년입니다. 우리는 이 기획연재에 아줌마 뉴스게릴라들의 동참을 기꺼이 환영합니다. - '아줌마들만 봐!'연재 참가자 일동 


'아줌마들만 봐!'연재에 우선 참여한 사람들은 아줌마들의 인터넷 해방구인 웹진 줌마네(www.zoomanet.co.k)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줌마들입니다. 
이번에 글을 쓴 박영희는 생각한 것만큼, 말한 만큼 살아가고픈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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