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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삼순이, 콩. 어렸을 때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들의 이름이다.

…발레하듯 우아하게 몸을 쭉쭉 늘리며 높은 데서도 사뿐히 내려 앉던 고양이. 국수를 좋아해 국수 삶는 냄새만 나면 곁에 와서 야옹거리던 고양이. 오래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고양이가 국수 삶는 솥 옆에 와 앉으면 늘 먼저 몇 가닥 건져서 찬물에 헹궈 입에 대주곤 하셨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난 고양이를 안아 올리면 비릿하게 풍기던 생선 냄새. 함께 기르던 개와 싸우면서도 어떤 때는 나란히 누워 잠들어 있기도 했던 고양이.

고양이의 눈과 할퀴는 발톱이 무섭다고 싫어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고양이는 영물(靈物)'이라는 동네 할머니들의 말씀도 많이 들었다.

이제는 아파트 마당 한켠에서 쓰레기 봉투를 뒤지는 집없는 도둑 고양이들만 곁에 남았지만, 내게 고양이는 어린 시절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문이다. 나는 이런 고양이들을 동화 '고양이 학교'에서 다시 만났다.

열다섯 살이 되면 살던 곳을 떠나 고양이 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고양이들의 세계. 민준이와 나영이 곁을 떠나 고양이 학교에 입학한 버들이가 러브레터, 메산이, 바이킹, 스라소니, 기둥이 등의 친구를 만나 어둠의 세력인 그림자 고양이들의 음모에 맞서 싸우는 모험이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물론 천 년을 넘게 살아온 교장 선생님인 양말 고양이, 담임 선생님인 털보 고양이, 지혜로운 순례자 마첸이 그들을 도와준다.

세상 모든 존재가 어울려 살아야 하는데 인간들의 욕심으로 인해 생물의 종(種)들이 사라지고 세상이 살기 어려운 곳으로 변해간다는 교훈을 담으면서, 한편으로는 자폐로 말을 잃어버린 세나를 돕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따뜻한 마음도 함께 보여 주고 있어 아이들과 같이 읽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다. 거기다가 고양이의 털끝에서부터 수염, 표정에 이르기까지 잘 표현되어 있는 그림에다가 여러 종류의 고양이들과 그들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재미도 크다.

그런데 '고양이 학교'에서 눈에 띄는 두 할아버지 고양이가 있다.
갑자기 주인이 기르기를 포기해 아파트에 살다가 하루 아침에 개천가에 버려진 바이킹과 토토를 도와주는 레옹 할아버지. 집이 없는 고양이들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가르쳐주며, 고양이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준다. 레옹 할아버지는 쓰레기 봉투나 찢으면서 살아온 처지지만, 세상을 떠날 때가 되자 어린 고양이들에게 의연한 모습을 보이며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죽기 위해 길을 떠난다.

고아인 스라소니의 이름을 지어주고, 거두어 기르면서 어린 생명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준 뽕나무 할아버지. 거지 도사, 성자 고양이라는 이름도 있었는데 어미 잃은 종달새들도 데려다 키운 할아버지다. 강가의 쓰레기산이 점점 더 높아지고 사람들의 쓰레기더미가 할아버지의 집을 뒤덮으며 밀려오지만 뽕나무 할아버지는 그 자리를 지킨다. 누구에게나 자기의 죽음을 아름답고 위엄있게 맞이할 권리가 있다면서.

두 고양이 할아버지는 모두 생의 마지막 시간에, 어린 고양이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아낌 없이 나누어주었으며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노년이 진정 아름다운가' 묻는다면 나는 솔직히 한 마디로 대답하지 못한다. 다만 그들이 가진 것을 아낌 없이 나누어주고, 빈 손으로 가볍게 마지막 길을 가는 모습에서 감동과 아름다움을 느낄 뿐이다. 고양이 할아버지들은 그렇게 했다. 아는 것을 모두 알려주고 판단은 스스로 하도록 믿어주었다. 그들 고양이 할아버지의 지혜란 바로 우리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삶의 태도가 아니겠는가.

아이가 생일 선물로 받은 책을 함께 읽으면서, 어린 시절 같이 살았던 고양이들을 모처럼 만날 수 있었다. 동화 속에 들어가 실컷 놀다 나온 기분 좋은 며칠이었다.

덧붙이는 글 | (고양이 학교 1권∼5권, 김진경 글, 김재홍 그림, 문학동네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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