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고서는 우리 문화에 숨어 있는 온갖 성적이며 외설적인 상징이나 의미들을 까발린 책이 아닐까 생각할만도 하다. 그런 기대감으로 책을 집어들었다면 큰 오산이다. 이 책은 그런 말초적 음란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점잖음을 가장한 사람들의 이중적이며 모순된 행위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을 뿐이다.
리얼리티를 회피하지 말라
성적인 음란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은이는 왜 굳이 '음란함'이라는 표현을 제목에 집어넣었을까? 지은이가 말하는 음란함이란 '야하다', '선정적이다', 또는 '퇴폐적이다'는 의미가 아니다.
독일의 철학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나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외설'과 비슷한 맥락의 표현으로 '이 사회의 현실이나 모순을 은폐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행위, 물리적 리얼리티가 완전히 소거된 도착 상황'을 이르는 것이다.
지은이의 설명을 조금 더 들어보자.
"이 사회의 현실이나 모순은 '부정'되거나 '거부'될 수 있다기보다는 단지 '부인'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물리적 리얼리티'입니다. 즉 싫든 좋든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엄연히 존재하는 물리적 리얼리티를 바꾸는 일일텐데, 그렇게 하기보다는 자꾸 도덕이나 윤리를 내세워 '머리 속'에서만 이를 소거하려고하니 '도착'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도착'이란 게 원래 '뒤바뀌어 거꾸로 된 상태' 아닙니까? 그러니까 제가 문제 삼는 것은 '한국 문화가 도덕적이냐 비도덕적이냐?'가 아니라 '한국 문화가 자신의 물리적 리얼리티를 직시하고 있느냐 회피하고 있느냐?'인 셈입니다."
게다가 이런 현실의 문제를 애써 인식하지 않으려는 심리적 작용으로서 실재하지 않는 시작적이며 강력한 수단인 '판타지'를 들여와 그곳으로 도피하려하기 때문에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더더욱 어려워지고 힘겨워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똥 묻은 개, 똥부터 닦아라
다양한 문화적 코드와 현상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음란함과 이중성에 대해서 질타하는 지은이는 '물론 한국 사회만 음란한 판타지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고 말한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든 기본적으로 자체 내에 존재하는 엄연한 현실이나 모순을 은폐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방법으로 판타지가 동원되고 문화적 형식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문화가 음란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화가 음란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판타지로 꼽는 '아버지의 이미지' 즉 '민족주의'에 대한 지은이의 지적은 충분히 눈여겨 볼 만하다. 민족은 없고 그 이미지만이 남아 상징적으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 결국 한국의 민족주의는 허구에만 존재하는 땅을 향한 꿈이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문화비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음란함을 중심 축으로 삼아 문화 전반의 비윤리적이며 이율배반적인 상황들을 일일이 참견하고 비틀어줌으로써 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에 맞서는 새로운 서사를 가져올 것을 주장한다. 리얼리티의 총체성을 파악할 지은이의 꿈인 문화정치학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문화의 음란한 판타지
이택광 / 이후 / 344쪽 / 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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