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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16일, 한총련 6, 7기 대의원으로 3년째 수배를 받던 장진숙(28) 씨는 후두암으로 위독한 동생의 병문안을 갔다가 잠복해 있던 경찰들에게 체포됐다. 결국 장 씨는 암에 걸린 동생의 임종마저 지켜볼 수 없었다.<한총련 이야기 p.20>

6기 한총련 의장을 역임한 손준혁(31) 씨는 4년 간 수배생활을 하다 지난해 5월 연행돼 구속됐다. 구속과 동시에 설상가상으로 손 씨의 집에 찾아온 소식은 아버지 손영상(당시 64세) 씨의 담도암 말기 판정. 마지막으로 아들 얼굴을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손준혁 석방대책위와 영남대 수학과 교수들, 여타 인권단체들이 교육부. 청와대, 법무부 등에 아직 심리가 시작되지 않은 손 씨의 가석방을 여러 차례 호소했다. 하지만 손 씨는 7월 25일 아버지가 사망하고 나서야 5일간의 형집행정지를 받고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한총련 이야기 p.20∼21>

최승환(9기 한총련 의장)은 학생식당으로 가는 길에도 주위를 경계했다. 방학인 대학 교정은 인적이 드물기 때문에 학내에 상주하는 형사들의 눈에 쉽게 띌 수 있기 때문이다. 최 의장은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목도리조차 풀지 않았다. <한총련 이야기 p.25>


동생과 아버지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하고, 대학생이어도 캠퍼스의 낭만을 누릴 수 없는 한총련 대의원들. 그들은 한총련 대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평소에 다른 위법행위를 한 적이 없는데도 늘상 감옥에 들어가야 하고 도피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97년 한총련 이적규정 이후 현재까지 한총련 사법처리자는 800여 명에 이른다. 이는 해마다 평균 160여 명이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가고 있으며, 이틀에 한 명씩 한총련 피해자가 발생하는 꼴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사회의 지성계를 대표하는 각계 각층의 '어르신'들과 전대협·한총련 선배들이 주축이 되어 '한총련의 합법적 활동 보장을 위한 범사회인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만들고 20일 오전 10시 기독교회관(구관) 2층 강당에서 발족식을 가졌다.

'대책위' 발족식에는 한총련 노선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라는 커다란 목적에 동의하는 사회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모였다. 대학생들이 전과자가 되고 있는 현실을 방치하면 미래가 없다는 인식에 동의하는 대책위원회 수는 현재 625명에 이른다.

그 동안 '대책위'는 1월 30일에 준비모임을 가지고 준비팀이 중심이 되어 '한총련이야기' 발간 준비와 '한총련 세대'(www.h-gen.net) 홈페이지 개설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강위원 '대책위' 집행국장은 "앞으로 '대책위'는 한총련 합법화를 위해서 한총련 합법화의 날 지정, UN 인권이사회 제소, 주요 대선후보들에게 한총련 활동 보장을 공약화할 것을 촉구하는 등의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사업계획을 밝혔다.

'대책위' 출범식에서는 한총련은 그 동안 한총련에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폭력성)을 벗어버리고 21세기의 요구에 부응하는 한총련을 만들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많이 보였다. 그 대표적인 작업이 '한총련 이야기' 발간이다.

'한총련 이야기'는 지난해 10월부터 논의를 시작하여 1월 9일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한총련 이야기'는 <민족21> 기자와 <유뉴스>기자들이 자기 직장일을 접고 민족21 사무실에서 2달여 기간 동안 고생하여 만들었다.

'한총련 이야기'를 만든 <민족21> 유병문 기자는 "한총련이 받아야 할 응당한 찬사와 응당한 비판을 골격으로 해서 만들었다"면서 "오로지 한총련을 지지하고 싶진 않았다"고 출간 기념식장에서 제작과정을 밝혔다. '한총련 이야기'를 만들자는 의견을 낸 강위원 씨도 "새로운 한총련관을 만들기 위해서 한총련에 대한 고언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실제 '한총련 이야기'에는 한총련 이적규정의 부당성과 피해사례뿐만 아니라 한총련에 대해 따끔한 질책도 함께 실렸다. 한겨레 손석춘 여론매체 부장은 '수배당해 쫒기는 그대들에게 전하는 세 가지 제안'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총련은 말 그대로 총학생회의 연합이 되어줄 것, 조국통일의 시대적 과제를 한총련이 더 장기적으로 바라볼 것, 대학인들이 삶에서 부닥치는 문제들에 가까이 갈 것"을 한총련에 당부했다.

손석춘 씨 외에도 한양대 97학번 민병호 학우의 목소리(중앙집중식 투쟁체가 아닌 사안별 연대체, 지역조직 연합체계가 아닌 학과별, 단대별 연대체계, 한총련 중앙집행부의 전횡을 막을 제도적 보완장치 마련, 새로운 명칭), 민주당 임종석 의원의 애정어린 지적(선도성과 대중성의 통일)이 책에 담겨져 있다.

이들의 쓴소리가 앞으로 한총련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다. '대책위'의 출범과 '한총련 이야기' 발간을 시작으로 한총련이 이적규정의 '꼬리표'를 떼고 한국 대학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활동을 시작했다.

한총련 10기 임시의장 김형주 씨는 "대책위의 활동으로 '한총련 이야기'에 실린 눈물의 이야기가 환한 웃음의 이야기로 바뀔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대책위의 활동에 내심 기대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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