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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죽지세(破竹之勢).
노무현 태풍과 이회창 추락으로 상징되는 최근의 정치 상황을 이처럼 상징적으로 표현해주는 고사성어는 없을 것 같다.
<진서(晉書)>의 <두예전(杜豫傳)>이 출전인 이 고사성어의 사전적 의미는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 실제로 이회창 총재는 한동안 '대쪽'으로 불렸던 적이 있지 않은가.
더욱이 '파(破)'는 '석(石)'에서 뜻을 따온 한자. 실제로 돌(石)처럼 굳어있는 구태 정치가 국민들에게 환멸을 안겨주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희망의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노무현 태풍의 본질적 의미이지 않은가.
고사(故事)는 현재를 보는 창이다. 위(魏), 오(吳), 촉(蜀)이 천하를 삼분하던 시대가 끝나갈 무렵 두예가 호북에서 병력을 이끌고 강릉으로 진격하고 있었던 것처럼, 노무현 태풍은 '광주의 승리'를 발판으로 태백산맥을 넘고 있었다.
실제로 <한국일보>는 3월 22일자에서 "노무현 고문은 유권자 중 절대 다수인 20∼40대 연령층과 수도권에서 이 총재를 크게 앞서고, 영남권에서도 빠른 속도로 세를 넓혀가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물론 노무현 태풍이 앞으로 넘어야 할 장벽은 수없이 많다.
당장 예선 상대인 이인제 고문의 '음모론'을 전면에 내건 농성정치(籠城政治)가 발목을 잡고 있는 사이 정작 본선에서 상대해야 할 이회창 총재는 때늦은 감이 있긴 하나 대권-당권분리를 통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앞으로 전세가 역전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숨막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손자병법(孫子兵法)>에서도 공성(攻城)은 하수로 취급되거니와, 농성(籠城)하는 상대는 그대로 놓아두면 성 밖으로 기어나오기 마련이다. 전략을 아는 장수는 다만 자신의 군법대로 갈 길을 가면 되는 법이다.
실제로 노무현 태풍은 3월 27일자 <매일경제>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다음의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전히 이회창 총재를 압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노무현(46.1%)-이회창(23.9%).
무려 22.2%의 차이로 지금까지 나온 여론조사 중 가장 큰 격차이다. <매일경제>가 일주일 전인 3월 1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양자가 각각 39.1%와 26.8%를 기록, 12.3%의 격차를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그것은 일주일 사이에 격차가 10%나 늘어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이러한 파죽지세의 양상은 지난 한 주 동안 계속됐는데, 다음과 같이 세 신문의 여론조사에서도 각각 11.1%, 15%, 21.4%의 격차를 보였다.
<조선일보>(3월 25일자): 노무현(44.8%)-이회창(33.7%)
<한국일보>(3월 22일자): 노무현(52%)-이회창(37%)
<중앙일보>(3월 21일자): 노무현(55.0%)-이회창(33.6%)
다양한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객관적 수치는 일단 노무현 태풍이 일회성 바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셈이지만 가히 충격적인 결과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중앙일보>는 해설기사 '노풍 실감'에서 그 복잡한 심리를 이렇게 솔직히 토로한 바 있다.
"이것은 돌풍이 아니라 태풍이다. 노무현 고문의 가파른 상승세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들조차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존 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국민이 분출구를 찾아 '묻지마' 지지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이회창 추락과 노무현 태풍
그것은 일시적 현상인가, 아니면 민심의 반영인가? 현재를 읽는 창인 고전(古典)과 고사(故事)를 통해 이회창 추락의 원인을 분석해 보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언론이 이회창 추락의 원인으로 거론한 사례는 (1)호화빌라 세 채 (2)손자의 해외원정출산 (3)당 내분 (4)측근전횡 (5)이원종 충북도지사 무리한 영입 등이다.
지난 3월 5일 민주당 기자실.
설훈 의원이 성명서를 읽어내려 가고 있었다.
"이회창 총재와 아들 정연 씨가 가회동의 105평짜리 고급 빌라 두 채에 세를 얻어 살고 있습니다. 이 총재는 정치자금 내역을 공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 사안의 폭발성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듯했다. 총재 비서실조차 사실을 확인하려는 기자들에게 "이 총재가 지금 중요한 인사와 조찬중이다. 별도의 해명자료는 없다"고 답변하는 등 안일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다음날부터 하루 간격으로 설훈 의원이 "고급 빌라 한 채가 더 있다"고 폭로하고, 이낙연 대변인이 "호화빌라의 실제 소유주는 깜짝 놀랄만한 인물이다"라고 발표한 뒤에야 한나라당은 부랴부랴 해명하기에 바빴지만 성난 민심을 돌리기엔 이미 때가 늦었다.
결국 이회창 총재는 3월 8일 "국민들에게 송구스럽다"는 대국민 사과를 발표해야 했다.
사실 설훈 의원이 공개한 고급 빌라 건은 지난 설날 이 총재 자택에 1천여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던 문전성시(門前成市)가 언론에 보도된 직후부터 정치권 주변에 떠돌던 사안이었다고 한다. 더욱이 이것은 김근태 의원의 정치자금 양심선언으로 코너에 몰린 동교동계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놓은 수비용 폭로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 <일요신문>은 "한나라당이 핵폭탄을 갖고도 소총수 한 명에게 당했다"고 평한 바 있다. 사실 이 사건은 별 것이 아닌데 한나라당이 미봉책(彌縫策)으로 일관하다 호되게 당한, 즉 여당과 야당의 전투력(?) 차이에서 발생한 해프닝 정도로 분석한 것이다. 특히 설훈 의원의 활약(?)을 <삼국지>를 능가하는 심리전과 선전전에 비유하기도 했다.
물론 <손자병법>에는 "적의 무방비한 곳을 공략하고 병력을 뜻하지 않은 곳에 기습적으로 출동시킨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이 사건을 '정치의 기술력' 차이로만 보는 것은 올바른 접근이 아닐 것이다. 도리어 한나라당이 민심의 무서움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한 것이 핵심적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목민심서(牧民心書)> 율기육조(律己六條) 제가(齊家)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淸士赴官 不以家累自隨 妻子之謂也(청사부관 불이가루자수 처자지위야)
이것을 직역하면 "청렴한 선비가 고을살이를 나갈 때는 가루를 데리고 가지 않는다. 가루는 처자를 이른다"이다. 이와 관련 다산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고을살이를 나가는 사람은 세 가지 버리는 것이 있다. 첫째, 가옥을 버린다. 대개 집은 비워두면 허물어진다. 둘째, 노복을 버린다. 대개 노복들을 놀려두면 방자하게 된다. 셋째, 자제들을 버린다. 자제들은 호사한 분위기에 젖으면 방탕해진다."
정약용은 목민관의 세 가지 금기로 가옥, 노복, 자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했거니와, 이것은 그로부터 2백여 년이 흐른 지금 이회창 추락의 원인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다시 말해 가옥은 호화빌라 문제로, 노복은 측근 전횡 문제로, 자제는 아들과 손자 문제로 불거져 나오지 않았는가.
결국 호화빌라와 자제들의 문제는 정치지도자에게 결코 구우일모(九牛一毛)가 아니라 역린(逆鱗)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구우일모는 "많은 것들 중에서 극히 작은 한 개로 대단한 것이 못됨", 역린은 "절대자의 치명적인 약점이나 허물"을 뜻한다.
이와 관련 우리는 <순자(荀子)>의 <자도편(子道篇)>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고사(故事)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자로(子路)라는 이가 있었다. 어느 날 자로가 분에 넘치는 호사스러운 옷을 입고 나타나자 공자는 이렇게 꾸짖었다.
"자로야, 화려한 옷은 어찌된 것이냐? 양자강의 근원은 민산(岷山)에서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극히 미미했지. 분량도 적었고 물의 흐름도 고요했어. 이를테면 겨우 잔(觴)을 띄울(濫) 정도라고나 할까. 그러나 아래로 내려올수록 점점 물의 양이 불어서 빠름이 급해지자 사람들은 배를 타고 다니면서도 빠지지 않을까 두려워했지. 세상의 모든 이치가 이같은 것이다."
즉 "무릇 모든 일의 시초는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됨"이라는 뜻을 가진 남상(濫觴)의 고사는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사실 병역면제, 해외원정출산, 호화빌라 문제는 우리 사회의 상류층과 특권층에겐 당연시되어온 것이었다. 그러나 한 나라를 이끌어나가겠다는 정치지도자에게 이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일반 서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회창 총재가 이런 문제에 대한 자각의식이 없는 것으로 보이면서 민심이 이반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그냥 잠잠해질 작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기자의 판단이다.
다음은 당 내분 및 측근 전횡과 관련해 이야기할 차례다.
이회창 총재는 어제(3월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총재직 사퇴와 대선후보 전념을 선언했다. 집단지도체제를 요구한 비주류의 요구를 거부했던 일주일 전의 기자회견을 다시 뒤집은 것이다.
우선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 총재가 정당민주주의를 위해 한발 양보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바람직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진작 그렇게 했다면 박근혜 의원의 탈당 명분도 사라졌을 것 아니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활활 타오르던 분란은 일단 잠재웠지만 리더십과 판단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은 앞으로도 언제든지 이 총재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총재 측근과 당내 강경파의 권유에 밀려 내놓은 일주일 전의 강경책은 당 내분의 새로운 불씨를 제공한 바 있다. 이를 두고 당시 미래연대는 "이 총재가 국민 모두를 실망시켰다"고 비판했으며, <내일신문>은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를 뒀다"고 제목을 뽑기도 했다.
이와 관련 <손자병법>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대목은 곱씹어 볼 만하다.
"삼군의 미혹함이 기정사실화 되고 또한 군주를 의심하게 되면 곧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난국을 맞게 되는 것은 지당한 말이다. 이것을 일러 군사를 혼란 속으로 끌어당겨 적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것이라 한다."
여기서 '제후들의 반란'은 박근혜 의원 탈당, 김덕룡·홍사덕 탈당 불사 발언, 이부영·강삼재 부총재 사퇴, 김만제·김원웅·서상섭 의원의 이 총재 지도력 비판, 미래연대의 집단행동 등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다 비주류에 의해 '측근 3인방'의 핵심인물로 지목돼온 하순봉 부총재가 3월 20일 춘천에서 했던 '쥐새끼 발언'은 당내 분란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그는 "배가 흔들리면 쓸데없는 쥐새끼들이 왔다 갔다 한다. 그래도 한나라당은 끄떡없다"고 말했는데, 사실 그것은 모순(矛盾)으로 가득찬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것은 "한나라당은 끄떡없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충정(?)에서 나온 발언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을 '침몰하는 배'로 규정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국당 김철 대변인으로부터 "쥐들은 선박의 침몰을 제일 먼저 알아챈다"는 촌철살인의 논평을 듣고도 할 말이 없게 된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순봉 부총재를 비롯한 당 중진들이 집단적으로 몰려가 이원종 충북도지사에게 입당을 강권한 것도 일반적인 민심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로부터 "다른 일을 다 때려치우고서라도 이회창이 대통령 되는 것만은 막겠다"는 원한 맺힌 막말을 들어야 했던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실제로 <법구경>에는 "탐욕으로부터 걱정이 생기고 탐욕으로부터 두려움이 생긴다"는 경구가 있다.
결국 이회창 총재에게 있어 진정한 '내부의 적'은 '비주류'가 아니라 '자만심'이었던 셈이다.
민심과 함께 하지 못할 때 대세(大勢)는 언제든 허세(虛勢)로 변한다는 사실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동서고금의 고사가 증언하고 있다. 아울러 민심을 움직이는 것은 정치의 기술이 아니라 변치 않는 진심과 성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교훈은 노무현 고문과 이인제 고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런 점에서 이인제 고문의 상궤를 벗어난 농성정치가 민심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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