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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학교운영위 문제로 알아볼 일이 있어서 지역 교육청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그곳에 올라와 있는 글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각급 학교에서 학생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야간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에 관한 글이어서 새삼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얼른 눈이 갔습니다.

-학생은 인간도 아니에요? 시간 되면 먹여야하는데 하루 전에 급식 통지서 가져와 다음날 바로 야자 하면 애들은 어디에서 밥 먹나요? 매점과는 인간 관계가 아주 좋으신가보죠. 그리고 멀리 버스 (두 번) 갈아타는 데는 어떻게 해요. 돈 없는 사람은 학교에 보내지 말라는 것인가요. 참고해주세요. (중식은 하루 전, 야식은 오늘 통지서를 가져오면 오늘은 어떻게 먹나요.)-

-저는 올해 신입생인데 오늘 야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학원도 다녀야 하는데 야자 8시까지만 하던가, 아니면 학원 다니는 애들은 학원 등록증을 갔고 와서 확인해서 그 애들은 학원에 가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야자를 한다고 해도 학원에 다니는 애들이 있겠지만. 저는 이 의견을 내면서 모든 고등학교에 강제적으로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답변자님은 야자를 학교장 결정에 따라 학생들의 희망에 따라 한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말이 좋지 야자 전교생 참여랑 뭐가 다르나요. 진짜 이건 희망하는 학생만 야자 한다고 하는데, 정말 이렇게만 되어도 아무 말 안 합니다. 답변자님의 생각으로는 학교에서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담임선생님께 직접 말씀드리라고 하는데 저도 경험자인데 말씀드렸다가 봉변만 당했습니다.-


학부형 한 분과 두 명의 학생이 올린 세 편의 글을 보고 크게 분노하거나 놀라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 같습니다. 세 건 모두 학교 현장에서의 아이들과 관련한 인권 침해 사례가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 사회는 미래의 주역인 아이들의 인권에 대해서 무지하리만큼 무관심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환부는 있는데 아픔의 자각증상은 없는, 마치 암과도 같은 고약한 병에 걸린 셈이기도 하구요.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불과 얼마 전에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교육붕괴'니 '학교붕괴'라는 말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너무도 판이하게 다른 점이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주요 보수 일간지들이 한 목소리로 성토하던 '열린교육이 버려놓은 통제불능의 아이들'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학교와 교사의 통제 아래에서 별탈 없이 '순응'하는 아이들로 변하고 만 것인지.

이런 의구심은 쉽게 풀렸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방종'은 있지만 정작 '자유'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자유는 그렇지 않지만 방종은 일시적인 강압과 통제에 의해서 쉽게 뿌리가 뽑혀집니다. 그만큼 자기 정당성의 뿌리가 깊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알고 그것을 향유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함부로 방종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방종에 대한 반대급부로 인해 자신의 자유마저 박탈당하리라는 예상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아이들은 참 자유를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의사를 정당하게 개진하고 민주적인 토론 과정을 통해서 어떤 합의점에 도달하는 훈련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입시에 필요한 지식만을 암기하라고 종용했을 뿐.

언제부터인가 우리 아이들에게 '자율'이란 말은 그 본래의 뜻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입니다. 물론 그것은 오랜 세월 학교가 자율이란 언어를 타율로 왜곡하여 사용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쉽게 생각하면 큰 일입니다. 가령, 학교장이 학생들에게 이런 훈화를 했다고 합시다.(아직까지 단 한 번도 학생들 앞에서 그런 훈화를 하신 교장선생님을 만나본 적이 없지만)

"여러분은 자기의 양심과 자유의사 대로 행동할 줄 아는 참된 용기를 지닌 자율적인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국내 몇 안 되는 학교를 제외한다면, 학교장의 이 소중한 훈화가 아이들의 가슴에 박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첫째 이유는 아이들이 '자율'이란 언어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둘째 이유는 그것을 사전적인 의미로나마 이해한다고 하더라고 그 말을 전하는 사람의 모범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우리 교육의 실패를 의미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최근에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0교시 자율학습이 시급히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해집니다. 희망이 아닌 것을 희망이라고 속이고 자율이 아닌 것을 자율이라고 왜곡하여 말하는 것을 계속 방치하는 것은 교육의 근간을 흔들고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있으나 양심이 삐뚤어지고 자율적인 의지가 부족한 사람'을 양산하는 것이 우리 나라 교육의 목표가 아니라면, 정부나 교육관청은 최근 학교에서 학생들의 자유의사와는 상관없이 강행하고 있는 자율보충학습을 더 이상 묵인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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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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