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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아이는, 지난 겨울 아침에 학교갈 준비를 하면서 내가 베란다에 걸어둔 온도계를 확인하고 들어와 영하 3도다, 영하 5도다 하고 말하면 늘 되묻곤 했다. 숫자가 큰 게 더 추운 건지, 아니면 숫자가 작은 게 더 추운 건지.
영을 중심으로 한 영하의 온도가 아이에게 그런 것처럼, 연도 앞에 붙은 기원전이라는 글씨는 내게 거꾸로 계산해 나가야 하는 미지의 시간들이다. 숫자가 많은 게 더 먼 옛날인지, 아니면 숫자가 적은 게 더 먼 옛날인지.
그렇게 막연하고 쉽게 계산이 되지 않는 세월 저편의 시간 속에도 과연 노년이 있었을까. 그 노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사람들은 노년을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기원전 로마 시대의 웅변가이며 정치가, 문인이었던 키케로가 이 궁금증에 대하여 2002년 오늘 이야기를 들려 준다. <노년에 관하여>는 키케로가 실제 인물이었던 정치가 카토의 입을 빌려, 두 사람의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자신의 노년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은 책이다.
키케로가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인 예순두 살에 쓴 <노년에 관하여>는 모두 23장 86절로 구성되어 있지만 각 절이 그리 길지 않은 짧은 수필이다. 30대의 두 젊은이가 80대의 카토를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해, 노년이 불행하게 보이는 네 가지 이유를 꼽고 과연 그것이 타당한지 살펴보는 것으로 이어진다.
노년이 불행하게 보이는 네 가지 이유, 즉 노년이 되면 일을 할 수 없다, 노년이 되면 체력이 떨어진다, 노년이 되면 쾌락을 즐길 수 없다, 노년이 되면 죽음이 멀지 않다는 것에 대해 키케로는 명쾌하게 반박하고 있다.
먼저 '노년과 일'에 관해서는 비록 육체는 쇠약하더라도 정신으로 이루어지는 노인의 일거리가 없는가라고 물으며, 다른 세대에 이익이 되도록 나무를 심는 노인의 모습에서 자신에게는 결코 속하지 않을 것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노인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노년과 체력'에서는 젊은이의 체력을 바라기보다는 갖고 있는 힘을 이용해 그 힘에 맞춰 하려고 하는 바를 하는 것이 적절하며, 유년기의 유약함, 청년기의 격렬함, 중년기의 장중함, 노년기의 원숙함은 각 시기에 거두어져야만 하는 자연스러움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노년과 쾌락' 부분에서는 욕망과 야망, 열망과의 전쟁이 끝난 후 찾아오는 감사와 한가함에 시선을 맞추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노년과 죽음'에서 키케로는 열매가 성숙하여 무르익었을 때 저절로 떨어지는 것같이 노년의 성숙함이 생명을 가져간다고 말하며, 죽음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인가를 간단명료하게 정리하고 있다.
키케로는 로마 시대에 최고 정치 지도자를 역임하며 힘있는 노년을 보낸 사람이다. 노년의 고독과 빈곤, 무위(無爲)에서 자유로워서일까. 일에서도, 체력에서도 지나칠 만큼 자신만만하다.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도 우리 옆에는 힘있는 노년과 그렇지 못한 노년이 있는 것처럼, 그 시절에도 많은 노년들이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힘이 있든 없든 노년을 꿰뚫는 통찰력은 역시 시대를 묻지 않는다. 기원전과 후를 가리지 않는 노년의 어려움과 그것을 넘어서는 지혜는 지금 이렇게 오랜 세월을 지나 우리 곁에 작은 책으로 놓여 있다. 키케로의 말처럼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늙어가는 인생길에서 노년의 가장 적절한 무기는 덕을 갖추는 것이다. 2002년 오늘 우리는 삶을 위한 무기를 갖추었는가.
(노년에 관하여 De Senectute / 키케로, 오흥식 옮김, 궁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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