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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년전 일이다. 이병헌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 내가 노인복지관에 근무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친정아버지, 시아버지처럼 '복지관아버지'라고 소개했던 분. 오랜 자원봉사자로 옆에서 도와주시는 것을 넘어, 혈육의 아버지처럼 나의 실수와 속상함과 눈물까지도 품어주셨던 분이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병원에 입원중이셨던 돌아가시기 2주 전 토요일, 복지관으로 걸려온 어머님(이병헌 아버님의 부인)의 전화. 아버님께서 얼마 지탱하지 못하실 것 같다며 복지관 내의 '장례서비스센터'에서 도움을 받고 싶다는 전화였다.
궁금해 하시는 것을 모두 알려드리고 퇴근하는 길, 버스 안에서 소리 없이 흘러내리던 눈물. 가슴을 치는 생각 하나. 노인복지 괜히 했구나, 노인복지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슬픈 일은 없었을텐데, 시댁과 친정 양가 부모님 네 분의 돌아가심만 생각해도 겁이 덜컥 나고 막막한데 어르신들과 생활하면서 앞으로 이 일을 얼마나 많이 겪어야 하는가,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그 때 문득 떠오르는 아버님의 모습. 어느 핸가 서울 송파구 아시아공원에서 노인문화제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 첫 날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다음 날 행사 준비를 위해 기관으로 돌아오려고 물품을 싣고 직원들이 모두 차에 탔을 때였다. 먼 빛으로 아버님께서 빗자루로 행사장 주변을 쓸고 계시는 것이 보였다. 지원 나온 구청 직원들에게 뒷정리를 부탁했던 나는 아버님께 같이 복지관으로 돌아가시자고 권했다.
아버님의 말씀. 직원들이야 바쁘니까 먼저 들어가고 나는 한가하니까 마저 쓸어 놓고 곧장 집으로 가겠다고. 직원끼리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버님이 안 보이실 때까지 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하시고 물설고 낯선 서울에 오셔서 마음 붙인 곳이 바로 이 복지관이라고 하셨던 아버님.
예상했던대로 얼마 후 아버님의 운명 소식과 함께 아버님께서 입고 가실 수의를 '장례서비스센터'에서 준비해 주었으면 한다는 가족의 전화. 아버님께서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입고 가실 수의는 깨끗한 분홍색 보자기에 싸여 내 가슴에 안겼다. 수의를 안고 병원으로 가면서 많이 울었다. 눈물 속에서 아버님께서 마지막 입으실 옷을 안고 가는 나와 아버님, 참으로 귀한 인연이구나 하는 생각이 이어졌다.
이틀 후 아버님의 장례식 날, 이른 새벽의 발인은 전 날의 입관 예배 참석으로 대신하고 출근했지만 아침부터 심한 배탈과 고열에 시달리며 노인복지 괜히 했다는 생각은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려움과 만날 때면 늘 하는 생각. 처음으로 돌아가자. 누구는 원점이라 하고, 누구는 초심(初心)이라 한다.
노인복지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내 머리 속에는 이미 노인이 되신 분들께는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인생을 마무리하실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과 아직 노인이 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아름다운 노년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다면 됐다.
그 분들의 인생 마지막 몇 년 혹은 몇 달 마음 붙이고 재미있게 보람있게 지내다 가시는 곳이 바로 여기 내 직장 노인복지관이라면 내 직업도 나쁘지 않다. 가실 때마다 울음이 터지고 슬픔에 목이 메이고 가슴 속에 아픈 기억이 하나 하나 새겨질지라도, 그 분들의 마지막 정말 아깝고 소중한 시간을 잠깐이라도 함께 할 수 있다면 왜 슬프기만 하겠는가. 왜 보람이 없는 일이겠는가. 나의 부모님은 물론 나도,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길, 누구나 가는 그 길을 지켜보고 마지막을 잠깐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이 직업도, 이 일도 괜찮다. 참으로 소중할 수 있다.
아, 아버님 그래서 제 곁에 오셨었군요. 아, 그래서 제가 가슴에 안고 가 전해드린 그 옷을 입고 아름다운 5월에 흙으로 돌아가셨군요. 비로소 뜨거운 열과 슬픔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화나고 힘들고 눈물날 때 묵묵히 옆에서 지켜보시는 것으로 달래주셨던 아버님, 내게 오셔서 3년의 시간이었지만 가족과는 또다른 가족으로, 누군가의 가슴에 소중한 기억을 남기고 가신 아버님의 삶이 참으로 크게 참으로 깊게 다가왔다. 그제서야 '아버님, 안녕히 가세요' 비로소 인사할 수 있었다.
오늘은 이틀 간 내린 비로 말갛게 씻겨나간 하늘이 파랗게 높고, 밝은 햇살 아래 초록이 눈부시다. 후배와 함께 가서 후배 친정 어머니의 수의를 맞췄다. 말기암 진단을 받으신 어머님을 보시며 아버님이 '수의를 준비해야겠다, 네가 직접 보고 맞췄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단다.
경험이 없으니 일흔다섯이신 내 친정 어머니께 의논드렸고, '내가 앞장서주마' 하시는 어머니를 따라 동대문 광장시장으로 갔다. 슬픈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울다가, 웃다가, 어떤 베가 좋은지 고르고 가격 흥정을 하며 어느덧 슬픔의 언덕을 또 넘어서고 있었다.
부모 자식이 어떤 인연이길래 입고 가실 옷을 준비하나. 이병헌 아버님이 내게서 떠나신 5월에 후배의 친정 어머니는 떠날 준비를 하시며, 자식들에게 사람 한 평생의 삶이 이렇게 지나가는 거라고 가르쳐 주신다. 부모는 세상 떠나는 그 날까지 자식들에게 가르쳐 주고, 그것도 모자라 다 주고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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