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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세계에 접속한 걸까? 민중가요 작곡가의 노래가 아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집회에는 랩퍼들이 등장한다. 뿐만이랴. 저항의 상징인 상록수는 공익광고의 배경음악으로 더빙된 지 오래다. 한편에선 크라잉넛의 말달리자로 대표되는 인디밴드의 진출이 한바탕 사회를 휩쓸고 간 뒤인데 이제 사람들에게 클럽과 인디는 그리 낯설지 않은 말이다. 또 소위 오빠부대로 치부돼 왔던 팬클럽들이 분연히 일어나 문화시민운동과 함께 대중음악 발전의 걸림돌로 지목돼 온 TV가요순위프로그램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쯤이면 우리 대중음악의 상황은 저변의 튼튼함이나 다양성의 측면에서 꽤 낙관적인 것 같다. 고딩시절의 꿈을 등지고 밤무대를 전전해야 했던 와이키키브라더스의 시나리오는 현실과는 먼 일이었던 것일까? 하지만 윤민석 씨 노래 외 민중가요의 상황은 어떤가. 크라잉넛 외 인디밴드의 상황은. 그리고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운동이 시작된 지 꼬박 한 해가 지났건만 TV제국의 가요순위프로그램의 모습은 너무나 위풍당당한 현실이 아닌가. 신음해온 지 오래인 대중음악계에는 여전히 브라운관이 요구하는 모습으로 뜨지 않는 이들 대부분에겐 창작과 생계라는 고된 블루스만이 기다릴 뿐이다.
그런데 뜨길 거부하는 고집쟁이들이 있다. 바로 거리의 밴드 <이반>. 제대로 말하자면 이반은 현재의 뜨는 방식으로의 유명세를 거부한다. 고집없이 음악하는 이들도 없겠지만 이들은 좀 독특한 면을 지니고 있다. 음지에서 일하면서도 양지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많고 탈도 많은 사회 저변이란 음지 자체의 개혁을 원한다는 것도 그렇고, 정치적 음악의 주류인 민중가요풍이 아닌 하드코어와 비슷한 음악적 형식을 추구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그렇다.
즉 가사로 보자면 민중가요, 형식으로는 인디밴드의 한 부류인 이들은 소위 정치적 밴드라 불린다. 이런 이반은 자신의 창작곡을 가지고 집회나 정치적인 이슈의 문화제에 참여하길 좋아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미국 대중음악계에 사회 참여적인 메시지를 '지르며' 등장한 RATM의 초기시절과 흡사하다.
기자는 우리 사회에 드문 모습으로 결성된 이반을 만나 어떤 동력이 자신들을 지탱시키고 있는지 그리고 이반이 딛고 선 바닥은 어떤 상황인지 궁금했다. 자, 그러면 이 바닥에 대한 이반의 얘기를 들어보자.
오토바이 여행 이야기를 편집해놓은 사진으로 도배된 클럽 '철조망 바이크 바'. 선정적으로 찍힌 여자의 사진과 당첨을 뒤로 한 복권이 즐비하다. 인터뷰는 이렇게 동네 호프집과 같은 공간이면서도 '오토바이로 세상을 타는 공간'에서 지난 27일 진행됐다.
클럽과 라이브바의 중간쯤 위치하는 신림동 녹두거리 '바이크바'는 원래대로라면 토요일마다 8시에 시작하는 공연을 9시로 늦췄다. 한국과 중국 축구경기 때문. 클럽에서도 음악보다 축구가 먼저인 듯하다. 그러나 경기가 진행되는 시간 내내 신문을 읽거나 의자 쿠션을 상대로 드럼 연습을 하며 모니터에는 제대로 눈길을 주지 않는 이반.
비로소 경기가 싱겁게 무승부로 끝나자 이반이 부산스러워진다. 여성 보컬의 씨스킨이 먼저 공연을 시작했다. 그런데 모던 락 분위기의 씨스킨 다음 무대에 오른 이반은 대뜸 발전소 노조원의 파업 얘기를 꺼냈다. 파업이 끝나고 복귀한 노조원의 월급날 통장에 찍힌 마이너스 60억 얘기. 이반은 공연 중에 파업 얘기를 하고 있었다. 클럽 공연에서 파업 얘기라니. 도대체. 분명 익숙한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클럽에 온 손님들은 자연스러운지 다음 얘기와 노래를 기다렸다. 바이크에 처음 온 나만이 놀란 것이다.
이반은 지난 3월부터 토요일마다 이곳에서 다른 밴드들과 함께 공연을 하고 있다. 정치적인 밴드인 이반의 공연이 클럽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곳은 락을 중심으로 공연하는 곳이고 상업적인 것은 원치 않는다며 이런 밴드도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장님. 그런 이해 속에서 이반은 공연하고 있었다. 이날 이반은 <이땅에 살기 위하여>, <불량국가>, <싸워>, <니 안에 무언가 썩어가고 있어>를 불렀고 해비메탈 그룹 BAP에 자리를 넘겼다. 인터뷰는 BAP 공연이 끝난 밤 10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공산당밴드에서 이반으로
- 먼저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고 멤버 구성은 어떠한지 소개를 부탁한다.
심원 : "원래는 나와 기타의 김성배 그리고 베이스의 김성수가 서울대학교 인문대 노래패 '함성'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당시 노래운동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락을 좋아한다는 배경도 있었지만 가사를 담아낼 수 있으면서 전달력이 있는 장르에 대해 주목했다. 즉 정치적인 고민을 음악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풀어내자는 생각이었는데 랩이 바로 그랬다. 그리고 보컬의 트랜드가 하드코어와 맞다는 전략적인 측면도 있었다. 그래서 나와 성배 그리고 몇몇 친구들과 공산당선언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다가 불행히도 군대 등의 문제 때문에 해체됐었다. 제대 이후 기타의 최정우, 드럼의 강승희를 만나 이반의 이름으로 다시 시작했다."
- 서울대 출신의 인디밴드이고 창작력이 뛰어난 것으로 입소문이 나 있다. TV 브라운관이 크게 거부할 만한 인물은 없다고 느껴지는데 아직은 잠재적이기는 하지만 연예기획사가 보기에 어느 정도의 상품가치를 가졌다고 느낄 수 있는 밴드라는 생각이 든다. 전의 인공위성처럼. 그리고 듣기로는 메이저레이블으로부터의 제안도 받았었지만 인디로 남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굳이 인디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정우 : "당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저항조차도 상품으로 포장되는 모습에 반대하고 자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사를 보면 메이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의도한 면이기도 한데 우리의 음악은 집회나 정치적인 문화제와 잘 맞다. 그렇기 때문에 인디밴드들의 공간인 클럽마인드와 잘 맞지 않는 측면도 있다."
신림동 고시촌서 이불 뒤집어 쓰고 한 첫 번째 녹음
- 지난해 가을 이반의 첫 번째 녹음작업은 이른바 홈레코딩 시스템을 이용했다고 알고 있다. 당시 상황은?
심원 : "당시 총학생회 선본의 주문으로 녹음을 급하게 했는데 자취를 하고 있는 성수네 집에서 했다. 그런데 신림동은 고시원이 많고, 특히 자취생들도 고시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2번 시도하다가 못했다. 무슨 소리만 들려도 달려왔으니까. 그래서 결국 이불을 뒤집어쓰고 노래를 했다. 그때 고생 좀 했다."
- 연습은 주로 어디서 하는가?
심원 : "학교 두레 문예회관에서 한다. 방학 때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요즘에는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외파/내파, 이번 앨범의 메시지
- 5월 중에 이반의 데모 앨범이 나온다고 들었는데 이번 앨범의 메시지는?
최정우 : "앨범은 모두 21곡이며 2장이고 각각의 이름은 내파, 외파이다. 외파에 있는 10곡은 비교적 강한 음악이고, 내파에 있는 11곡은 다소 조용한 곡으로 이뤄졌다. 이렇게 모든 곡이 정치적이지는 않다. 'Hide' 같이 개인적인 문제나 인간관계, 마음 속의 울림들에 주목하는 곡과 정치적인 목소리를 함께 담았다. 원래는 'political attitude and personal choice' 즉 정치적인 입장과 개인적인 선택을 제목으로 하려고 했는데 정치와 비정치를 구분한다는 것이 너무 이분법적이고 어쨌든 음악을 통해 정치적으로 나아가겠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정했다.
즉 음악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의 정치이자 혁명적 수단으로 파악하고, 그렇다면 밖으로 깨야할 것(외파)과 안으로 깨야할 것(내파)이 있다고 본 것이다. 예를 들어 외파에는 기존의 의미에서 '정치적인' 곡들이 수록되어 있는 반면, 내파에는 보다 내면-정치적인 문제라고 부를 수 있는 주제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념어 자체는 보드리야르로부터 빌려온 것이지만 그 내용은 많이 다르다."
- 가장 애정이 담긴 곡은?
심원 : "'take 13'이다. 만들었을 때 좋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받았던 유일한 곡이다. 그리고 거의 내가 썼지?"
김성수 : "(억울한 목소리로)나도 했는데…"
심원 : "전에는 과격하고 직선적인 곡을 많이 썼다. 그러나 세상이 싫다는 얘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것저것 다 붙이면 곡이 지저분해진다. 그래서 가사 자체는 간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느낌을 잘 표현했다고 본다."
김성수 : "'꽃같은 세상'이다. 원래는 대학 1년 여름방학 때 처음 쓴 건데 다시 만지게 된 곡이다. 창작이 잘 안 되는 상황에서 만들어내 애착이 간다. 하지만 너무 순화된 것이 아쉽다. 원래 '꽃'이 다른 말이었는데…."
- 검열도 하나?
최정우 : "아니다. '꽃'이 그것보다 더 좋다고 모두 생각해서 바꾼 것이다. 더 느낌이 좋잖아(김성수가 밀린 것 같은 느낌. 여전히 수긍하지 않는 분위기)."
김성수 : "그리고 '싸워'가 좋다. '싸워'는 다듬어 가면 갈수록 좋아지는 곡이다."
강승희 : "나도 '싸워'가 좋다. 이반의 음악적 지향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이다. 그리고 나를 반성할 수 있게 하는 곡이기도 하고 메시지가 가장 완성도 있게 만들어졌다."
김성배 : "나는 가장 좋아하는 무엇을 고르라고 하면 대답을 못하겠다. 정말 난감하다. 'take 13'도 좋고, '싸워'도 좋고, '마비', '하이드', '울트라'..."
- 하나도 뺄 게 없다는 얘긴가. 그런데 'take13'가 무슨 노래인가?
김성배 : "'take13'는 아까 불렀던 '니 안에 무언가 썩어가고 있어'다."
최정우 : "이반의 대표곡은 '싸워'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체게바라 포스트 앞에서'라는 곡도 좋아한다. 곡 자체의 완성도가 있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다시 곱씹어보게 하는 곡이다. 체게바라가 우상화되고 저항이라는 것이 상품처럼 되어버린 세상에 대한 냉소가 담겨 있다. 또 '불량국가'도 좋다. 이곡은 편곡할 때 참 재미있게 했다. 재미있는 리프와 주법이 담겨있다. 최근에 윤민석 씨가 만든 '퍽깅유에스에이'와 같이 미국을 주목하고 쓴 것인데 우리는 미국과 우리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섹스 피스톨즈를 카피한다고 저항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 이반을 정치적 밴드라고 소개했다.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준비하고 발언한다는 의미에서일텐데, 프로파간더한 예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소위 정치적인 음악인 민중가요에 대해 예술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여하간 프로파간더에 대해서는 항상 논란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심원 : "기존 민중가요의 한계는 음악적인 면이지 내용은 아니다. 나중에 조금 변하기는 했지만 민중가요는 군가풍의 투쟁가나 동지애를 느끼게 하는 발라드만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음악적인 면에 많이 신경을 쓴다. 음악하는 사람들 모두 그렇겠지만 완결된 음악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똑같은 음악에 가사가 정치적이라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내용과 형식이 맞아떨어진다. 과격한 음악이라면 내용도 그러해야 한다. 대중문화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음악이 음악만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다. 그리고 그쪽에서 욕하면 맞받아칠 수 있는 게 있기 때문에 그리 신경쓰진 않는다."
- 이반의 음악은 하드코어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멜로디코어라고도 하던데, 누가 만들어낸 말인가?
심원 : "전에 학교 인터넷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얘기할 때 생각나서 한 말인데 실제 그런 장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 펑크는 음악적 형식이 아닌 소위 사회에 대한 태도라고 하던데 펑크 등 국내 음악 장르에 대한 의견은?
강승희 : "언더음악계도 음악적 조류가 있는 것 같다. 조선펑크 얘기하면서 크라잉넛이 등장했고 이젠 하나의 조류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그 외의 음악장르가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다. 열풍이 불면 자꾸 바뀐다. 개성과 자부심 그리고 스펙트럼이 넓지 않다."
심원 : "우리 나라에서 하드코어라고 불리는 음악들은 사실 하드코어가 아니다. 외국의 슬립낫 정도를 하드코어라고 부르는 데 우리 나라의 서태지도 모던 락으로 분류된다. 그만큼 여기는 비슷비슷하다. 한 음악 장르가 유행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음악 형식을 찾다가 바뀐다. 음악적 형식과 내용을 함께 고민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저항정신으로 잉태된 장르를 저항정신이 있어서 하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김성배 : "저항하는 지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의식과 메커니즘이 따로 돌아가는 구조이다. 우리는 저항을 해도 밖으로 드러나는 저항이 필요하다."
최정우 : "섹스피스톨즈를 카피한다고 해서 저항한다고 볼 수는 없다. 사실 내용만 그렇다면 트롯트도 저항성이 있을 수 있다. 그대로 카피만한다는 게 문제이다. 그건 취미생활일 뿐이다. 60년대 신중현 선생님은 그 시대에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음악에 많이 담아냈다. 그것이 우리의 하나의 예이다. 저항성을 획득하고 대중적 파급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심원 : "우리의 행동과 저항이 연결됐을 때 저항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와 같은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싸우는 것
- 현재 운동그룹은 거대담론에서 각론적인 의미의 진보로 나아가고 있다. 그만큼 운동그룹의 모습도 운동 대상이나 방식에서 80-90년대와 많이 달려져 있다. 싸워야 할 대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강승희 : "살아가는 것 자체가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현재 전적으로 음악에 매달리지 못하고 있다. 군대, 학교 등과 관련된 문제가 많이 있다. 이러한 체제 내에서 우리와 같은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성배 : "적이 사라졌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거시적인 것에서 미시적인 것으로 바뀌고 있는데 자본주의 시스템 전반적인 것에 대해서 싸워야 한다. 머리띠를 두르고 싸울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 또한 자신의 삶을 걸어야 하는 것인데 같은 의미에서 우리는 음악으로서 싸우고 싶다. 그리고 문화는 미시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힘이 있다. 그리고 스스로를 자괴감에 빠뜨리는 것도 하나의 대상이다. '니 안에 무언가 썩어가고 있어'는 그런 면에서 가능성을 보여준다."
심원 : "상당히 예민한 질문이다. 일단 우리들 서로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 이회창은 없지만 대통령으로 지지하는 후보도 제각각이다. 나는 우선 내가 딛고 있는 위치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더다. 그래서 대중문화 오버의 시스템과 싸와야 하고 기존의 획일성에 반대한다. 그리고 우리의 정치성은 범좌파에 해당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 주요 대상이고 무엇보다도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문제가 근본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갈수록 싸울 대상이 많아져서 그만큼 할 노래도 많아졌다는 생각을 한다. 하하."
- 집회에서 이반은 언제나 음악이라는 무기로 무장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 무기는 어떠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가?
심원 : "그 질문은 노래패를 할 때부터 항상 고민했던 문제이다. 도대체 사람들이 우리의 노래를 통해서 변할 수 있을까라는 것. 하지만 우리와 같은 밴드가 세상에 던져져 있는 상황 자체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노래가 중요하고."
김성배 : "클럽에서는 우리의 음악이 썩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집회에 서면 우리의 음악은 날이 선다. 현장성과 접목된 노래이기 때문이다. 나는 싸우러 가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노래는 현장에 부딛쳐 있을 때 미시적인 부분들을 메꿔 줄 수 있다."
심원 : "클럽에서 노래하며 가끔 가졌던 생각은 마음을 비워야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당황하는 모습, 생각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냥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따라부를 수 있는 음악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심원 : "경험상 집회에서 우리의 노래를 부르면 다 따라 부른다. 우리도 집회에서는 나름의 전략을 가지고 있는데 가사를 확 줄인다거나 시작하기 전에 함께 연습을 해보기도 한다. 싸워 같은 노래를 할 때는 관중과 함께 '싸워'라는 말을 계속 주고 받는다. 그럴 때 짜릿한 느낌들을 봐왔고, 그게 참 좋다."
이반의 진짜 이름은 매혈밴드?
-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
심원 : 녹음기계만 160만 원이 들었다. 마이크 35만 원. 아마 3백여만 원 정도 든 것 같은데 다 빚이다. 아마 한국논단같은 곳에서는 이걸 보고 이렇게 제목을 뽑을 수도 있다. "정치한다더니 빚만 쌓여" 하지만 꼭 그 형국이다. 사실은 일명 홈레코딩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돈은 들지 않은 것이지만 그만큼 제약이 많다. 앨범 녹음은 3개월만에 했는데 각 곡에 리프가 4개 이상씩 쓰였다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정말 빨리 한 것이다. 녹음하는 곳에 가서 하면 한 곡에 30만 원씩 든다. 실은 우리는 매혈단이다. 다음 주에 피 뽑으러 간다. 그리고 지금까지 개런티로 받은 돈은 30만 원이다. 오십만 원이 넘으면 멤버들에게 십만 원씩 풀 생각이다. 하하."
* 매혈단 : 드러머 강승희 씨는 약대에 다닌다. 가끔 제약회사 등에서 유료로 사람을 모집하는데 강승희 씨는 이걸로 가끔씩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며 이걸 소위 '피뽑는다'고 한다. 지난 겨울에 그 얘기를 했었는데 이젠 멤버 전원이 간다니 참 웃지 못할 참담한 얘기다.
- 제도나 인식과 관련해서 밴드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들이 있다면?
심원 : "군대문제다. 나와 성수는 갔다왔는데 아직 다녀오지 않은 친구가 3명이다. 그 외의 문제는 별로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생기겠지…."
- 이반 결성 이래로 꽤 많은 공연을 한 것으로 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공연은?
김성수 : "지난 겨울 명동에서의 공연이다. 검열 반대 문화제. 사실 너무 추웠다."
심원 : "지난 3월 30일에 있었던 '파문' 공연이다. 관객규모나 호응도면에서 봤을 때."
김성배 : "서울대 경영대 공연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해오름제 공연이었는데 관객이 딱 10명이었다. 그때 일곱곡이나 했었는데 분위기 자체가 너무 썰렁해서 말리지 않더라. 막 더하라고 하고. 관객이 10명 있었는데도 참 즐거웠다. 또 그때 페이도 20만 원이나 받았다."
- 당신이 영향받은 인물과 음악은?
심원 : "일단은 어쩔 수 없이 맑스다. 노래패 함성을 하면서 아니 대학에 들어와서 충격을 받았고 아직도 그의 글을 다시 읽어봐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놀랍다. 음악적으로는 아마도 RATM. 공산당 선언을 했을 때도 몰랐는데 군대 있을 때 처음 접했다. 사회에 나와서 이런 식으로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와이키키브라더스는 부모님들이 보면 안 되는 영화
- 최근 앨범 녹음 시기에 커뮤니티에 와이키키브라더스 보지 말라고 올렸던 사람이 누구인가?
김성배 : "그때 와이키키브라더스 얘기가 개인적인 사정이랑 맞닿아 있었다. 경제적인 압박을 많이 받고 있었고 돈이 필요해서 하고싶은 것을 못하게 되는 것 사이에서의 갈등.
그러나 와키와 이반의 사정은 차원이 다르다. 이반은 사실 의식하건 그렇지 않건 엘리트 밴드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학교이름만으로도 알려지기 쉽다. 학교의 간판이 주는 이점이 분명히 있는데 결국 이렇게 생각하면 나중에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와키에서 끝까지 하는 사람이 나온다. 그리고 나는 그게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그건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다. 녹음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걸 보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 봤다고 하더라."
심원 : "와키는 잘못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요즘 음악하는 사람에게는 감동이 없을 것 같다. 기타 메고 다니면 다 그렇게 되나보다 그런 생각만 하게 할 뿐."
김성배 : "사실은 멤버보다는 우리 부모님이 보지 말아야 할 영화다. 하하."
최정우 : "다행히 우리 부모님은 못 보셨다."
- 앞으로의 계획은?
심원 : "5.18 공연이 있다. 쌈지에서 하는 공연인데 모닝본드, 사일런트아이, 사라 등 몇 팀과 함께 한다. 그리고 우리 시간에만 5.18 광주항쟁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그날 거기에 올 사람들은 잘 모를 테니까. 뒷통수를 치려고 한다. 강력한 오버를 해서 기억은 남게. 그리고 대동제 기간에 섭외가 들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성배 : "사실 장기계획에 대해선 군대 문제 때문에 힘들다. 일단은 1집 정규 앨범까지는 꼭 내고 싶다."
이반은 매주 토요일 신림동 녹두거리에 있는 철조망바이크바(94번 종점 옆)에서 공연을 한다. 이반뿐만 아니라 클럽에서 공연하고 있는 밴드들에겐 이들의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그래서 기자는 TV 가요순위프로그램 등 연예프로그램을 볼 시간에 클럽에서 밴드의 공연에 참여하며 술이나 콜라를 마시길 권한다. 그게 훨씬 문화적이고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대중음악의 저변을 튼튼히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반의 곡과 이야기는 www.freechal.com/ivanpcm을 통해 접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싸워> 가사
A. 싸워 싸워 이 나랄 말아먹는 정부와 / 싸워 싸워 널 희롱하려드는 남자와 / 싸워 싸워 널 쥐고 흔드려는 부모와 / 싸워 싸워 널 숨기려는 네 자신과
B. (싸워) 기다리지 말고 (싸워) 돌아보지 말고 / (싸워) 이제는 널 위해 싸워봐
Rap. 부모 선생 경찰 TV폭력에 길들여져 / 좆 같은 지랄들을 지겹게도 겪어 / 이제는 죽어버린 너의 또다른 모습을 / 이 거리에 휘날리는 깃발에서 찾아봐 / 돈 벌어 내숭떨어 떠들어대는 너를 떨쳐 /우린 어리버리 흔들리지 않으리 / 아무리 뭐라해도 짖어대는 놈들에겐 / 병신 닥쳐 외쳐 부딪쳐
<니안에 무언가 썩어가고 있어> 가사
너에게는 너무나도 평화로운 세상이지 / 세상 아픔을 다 잊을 수 있는 너 / 언제나 암담하다 생각하던 현시대 / 얼마나 아팠는가 있고마는 현실에 / 이정도 쯤이면 이만큼 왔으며 됐지 그렇지 묻는 넌 / 지옥같은 감옥, 감옥, 감옥, 꽃같은 유혹)
너에게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세상이지 / 세상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는 너 / (이 시대의 가치, money, 그 수치속에 갇힌 미친 생쥐 같이 / 빠져나갈 구멍, 누구나 하는 변명 / 이젠 내 삶을 즐겨야 겠어, 계속 해서 그 소리) /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있지만 / 태연한척 그 길을 걷고 있지만 / 니 안에 무언가 썩어가고 있어 / 니 안에 무언가 죽어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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