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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자존심이 강하고 성격적으로 심술을 잘 부리는 아내의 투정을 나는 잘 받아 주지를 못한다. 삼십 년이 가까워 오는 결혼생활에서 남편의 무능함과 무뚝뚝한 성격이 아내에게는 더 할 수 없는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지난 년 초에 92년 식인 승합차에 큰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수리비로 들어 간 금액을 생각하면 너무도 가슴이 아픈데 새차를 사자니 경제력이 여의치 않고 그렇다고 또 거금을 드려서 수리를 해야한다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차가 없으면 안되냐? 수리해서 쓰면 되지?" 아내의 말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심술 같아서 더욱 속이 상하였다. 지금 나에게는 차가 없으면 내가 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인 것을 아내가 모르는바가 아니다.
군대에 제대한 아들 녀석은 눈치가 얼마나 빠른지 벌써 나의 생각을 아는 듯이 앞서 가는 말을 한다. 전에도 그런 점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그랬다. 역시 젊은 패기는 매우 진취적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나의 아내는 어쩌면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일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부정하는 것이 파괴적인 힘이 실려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든지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차량 때문에 고생해 오던 남 모르는 사연들이 억울할 정도로 감정이 상한다. 드디어 결심을 굳힌 나는 할부 대출을 받을지라도 쓸만한 중고 지프차로 바꾸기로 했다. 당분간 아내와의 불화를 각오하고라도 강행하기로 한 것이다.
이 문제로 아내의 매몰찬 감정의 저항이 일어났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반감을 성토하고 있었다. 나의 괴로움은 매우 심했다. 그러나 나의 고집도 만만치는 않았다. 자연 부부의 대화는 꼭 필요한 사무적인 말 외에는 일체 단절 된 셈이다. 그동안에 서울에 있는 아이들이 몇 번이나 다녀갔다. 그 때만 억지로 아무 일이 없는 척 했지만 전혀 눈치를 체지 못한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그런 생활 중에서도 아내는 새로 구입한 차에 대한 만족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자기도 수시로 시내 볼 일을 만들어서라도 자주 차를 운전하고 다녔다. 그리고 돈 쓰는 씀씀이는 놀라울 정도로 바꿨다. 전에는 넉넉지 못한 생활비에 관심도 없었고 또 나 역시도 아내가 과도히 신경 쓰이지 않도록 재정관리를 계속해 온 것이다.
그래서 더 그랬다고도 볼 수는 있지만 아내는 돈 쓰는 일이나 관리하는 일에는 신경을 통 끄고 살아 온 것인데 이제는 사람이 변해 버린 것 같았다. 아니 반란인지 심통인지 뭐 그런 쪽으로만 나는 생각하면서 '남편을 골탕 먹이려는구나' 하며 분한 마음에 속으로 아내를 얼마나 욕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도가 지나치고 있었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장거리 여행을 하고 왔다. 전에는 자기가 운전을 할지라도 장거리 여행 때는 주로 내가 운전을 하든지 아니면 내가 옆 조수석에 앉아서 도움을 주었든 것인데 이제는 그것조차 필요 없다는 식으로 행동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물론 전에도 가끔 두통이 심하다고 하여서 병원에 같이 간 적이 있었지만 여전 두통 문제는 치료가 않되고 있어서 큰 병원에 가서 검진을 하자고 하여도 응하지를 않더니 이제는 혼자서 부지런히 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아내와 나 사이에 냉기류가 몇 달째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퉁명스럽던 아내가 스스로 입을 열고 토로하기를 돈이 많이 필요하단다. 사실 얼마 전에도 필요하다면서 내게서 목돈을 억지로 요구하고,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로 인출하여 가져간 돈을 자기 통장에 넣어 두고 있었는데 내가 그 돈을 갚아내지 못하고 있다가 내가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은행의 통보를 받고서야 해결해 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병원에 검진비용으로 들어가는 돈이란다. 아내는 그 때서야 자기는 밤낮으로 귀에서 모기소리 같은 소리가 계속 들린단다. 듣고 보니 원인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혹시 귀에 이상인지 머리에 이상인지는 모르니 그동안의 나의 상한 감정이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측은한 마음조차 들었다.
그래서 MRI를 찍으로 멀리 천안까지 가는 날 내가 함께 가려고 차에 올랐는데 아내는 또 냉정한 말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진 찍는데 왜 두 사람이 필요하데요?"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차에서 그만 내리고 말았다. 아내의 칼 같은 성격에 내가 찔린 기분이었다.
또 몇 일 지나고 사진의 판독설명을 듣는 날도 아내는 혼자서 다녀왔다. 그 날 내가 결과가 어떻게 나왔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사진에는 아무 이상이 보이지 않았단다. 결국 '만성적인 신경성 염증'이라고 하면서 "신경 좀 쓰지 않게 해요"라고 쏘는 듯이 말했다. 어이없어서 "신경 안 쓰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나? 신경 안 쓰려면 살지를 말아야지?"하고 대답하였다.
말이야 맞는 말이 아니겠는가. 다 같은 사정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병이 되나 어떤 사람에게는 병이 되지를 않는다. 요즈음 어떤 유명한 분은 말하기를 '스트레스를 즐겨라'고 역설하였다. 사실 적절한 스트레스는 자극이 되어 유익한 것이라고도 말한다.
이것은 어쩌면 자기 수양의 경지일 수도 있다. 자기를 잘 관리하고 생활의 보람과 의미를 찾는 것이야말로 건전한 자기관리요 수양이 아니겠는가 싶다. 이유야 어찌하든 아내가 더욱 측은해 진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무능한 남편으로 인해 고생시킨 것을 생각할 때 미안한 마음 또한 진정이다. 아내여 건강 하라. 그리고 남편에게만 목을 메지말고 자기의 삶에 보람을 개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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