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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 교수님, 안녕하신지요.
언제나 언론개혁의 현장에서, 사회 민주화의 전선에서 참된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고 계신 교수님의 노고와 열정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옆으로 비켜서서 그저 입으로만 부조하는 저는, 선생님과 같이 실천하는 양심들의 노고에 거저 업혀가는 죄송함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졸렬한 글을 눈여겨보시고 반론을 제기해 주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하신 것처럼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해보고 그에 대한 제 생각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말씀드립니다. 김 교수님은 2002년 대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번 선거에서는 김대중 씨와 김영삼 씨가 노무현 후보를 매개로 하나로 묶여야 한다는 신민주연합론을 제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상징으로 김영삼 씨 측근으로 알려진 박종웅 의원이 민주당 간판으로 부산시장 후보에 나서는 것이 용인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대전제는 양 김 씨의 단결이며, 소전제로는 박종웅 의원이 노 후보로 상징되는 이 땅의 민주와 개혁을 바라는 세력들과 충분히 연대 가능한 사람이라는 말씀이십니다.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자면, 전자에는 대찬성이고, 후자에는 의문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제 논지의 핵심입니다. 저는 삼김 청산에 반대합니다. 일김 청산과 이김 극복이 제 소신입니다. 여기서 일김은 말할 것도 없이 군사 쿠데타 출신인 김종필 씨입니다. 극복은 현재는 치워 없애고 과거는 깡그리 무시하자는 청산대신에, 그들의 공과를 가리고 따져 좋은 것을 잇고 버릴 것은 철저하게 버리자는 의미에서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주장과 제 주장은 하나로 통하는 것입니다. 양김이 연대하지 않고 과연 어떤 방식으로 현재의 지역구도 극복이 가능하겠으며, 양김이 연대하지 않고 무슨 수로 수구 기득권 세력의 강고한 성채를 극복하겠습니까. 따라서 저는 노 후보가 김영삼 씨를 찾아가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리고 시계를 들춰보인 그 노고와 성의를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삼고초려인들 이보다 더한 정성이겠습니까.

다만 그 대상이 왜 박종웅 씨냐는 것입니다. 박종웅 의원을 제가 만나본 일도 없고 개인적으로 잘 알지도 못합니다. 다만 저와 많은 국민들에게 비쳐진 박종웅 씨는 헌법기관으로 소신껏 국정을 감시하고 법안을 제안하는 선량이기보다는, 인간 김영삼 씨의 개인비서에 불과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최근 들어 가장 화려하게 매스컴을 탄 박종웅 씨의 행동이 무엇입니까. 바로 조선일보를 포함한 언론사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으로 규정짓고 그의 말마따나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을 하던 때 아닙니까? 당시 그는 이회창 총재의 중단 권유를 받고도 "일단 어른을 뵌 뒤 결정하겠다"며 거부했고, 결국 자기를 찾아온 김영삼 씨의 권고를 받고서야 20일간의 단식을 풀었던 사람입니다.

국민들은 이 장면을 보면서 대체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전두환을 찾아가 잘 쉬다 왔습니다고 넙죽 절하던 장세동을 떠올린다면 지나치게 거친 상상력일까요? 그가 단식에 돌입한 이유는 어떻습니까? 탈세 언론사주의 구속과 언론사 세무조사란 현 정권의 결정이 과연 국회의원의 단식농성을 받을 만큼 몰상식하고 반민주적인 폭거였던 것입니까?

두 번째로 제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박종웅 씨가 김영삼 전대통령의 낙점을 받아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나가는 과정의 부당함입니다. 산술적으로 노 후보 지지세력 + 김영삼 전대통령 지지세력 = 부산시장이란 등식이 성립한다는 증거는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부산 시민의 민심이란 그야말로 구름 잡는 추상에 의존하지 말고, 객관적인 자료 말씀입니다. 이를테면 여론조사와 같은 방법도 한 가지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과연 이런 절차를 거쳐 박종웅 의원을 부산시장 후보 중 한 명으로 천거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노무현 씨에게 위임한 것은 이 땅에 변화와 개혁과 민주를 가져오는 한에서의 재량권이지, 모든 의사결정을 노 후보에게 위임하고 그저 무비판적으로 그를 마냥 지지하겠다는 것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비유컨대 김대중 대통령의 박정희 기념관 착공을 생각해 봅니다.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고, 사회변혁운동 세력 중에서는 그야말로 아무도 찬성하지 않는 박정희 기념관을 김 대통령은 무슨 배짱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인가요. 혹시라도 그가 "나처럼 박정희 씨에게 탄압받은 사람 없다. 내가 용서하면 그걸로 된 거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저도 제 주위의 많은 사람들도 그런 결정을 내릴 권한을 김 대통령에게 위임한 사실 없습니다. 이야말로 재량권 남용이란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노 후보의 박종웅 씨 천거는 이와 유사한 의혹이 있습니다. 그가 누가 됐든 양김의 연대를 통한 신민주연합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부산시장 후보로 내세울 수 있다는 결정은 혹시라도 노 후보의 독선일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충심으로 이 땅에 개혁과 변화를 가져올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지지하고 후원합니다. 그러나 그 지지와 후원은 이제 정당한 비판과 감시의 바탕에 서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인간은 신이 아닙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재야인사로 머물 당시, 변화와 개혁, 민주화에 대한 그의 신념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합니까. 그의 선정과 치적이 빛나는 만큼 구악과 다를 바 없는 비리와 실정 또한 엄존하지 않습니까?

이것을 단지 수구 기득권 세력의 방해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홍삼 트리오의 비리 의혹을 수구 세력의 음모로 볼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신이 아닌 인간이 잘못할 때 그것을 바로잡을 의무는 역시 신이 아닌 인간일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아들 문제에 대해 직언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비극이 지금의 저 처참한 대통령 모습을 만들어낸 주범이 아닐까요?

역사의 진보가 더디고 힘든 것은 감수할 수 있습니다. 현실을 도외시한 순결주의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접을 수도 있습니다. 현실 정치인인 노무현 후보가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을 말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그 단초가 바로 원칙과 신념에 반해서라는 감성적인 이유였다면,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마음이 굳세어져 하나의 염원이요 신념으로 변하는데 이르렀다면, 노무현 후보는 답해야 합니다. 당신은 과연 어떤 원칙과 신념을 가지고 이 나라를 경영할 것인지라는 물음에 말입니다.

저는 적어도 그것이 부산시장 후보로 박종웅 씨를 천거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김영삼 씨 진영에 그이 말고는 정말이지 사람이 없답니까? 그게 아니란다면 부산시장 박종웅은 김영삼 씨의 마음을 얻는 데는 적격일지 몰라도, 그래서 박종웅 시장 후보가 부산시장이 되어 노무현 후보의 조 대비가 되려 노력할지는 몰라도, 권력의 향배를 결정할 힘을 가진 이 땅의 유권자요 시민이란 진짜 조 대비의 눈 밖에 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그가 덕평 연수원에서 노사모 앞에서서 호소한 감시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수구언론에게만 적용될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 자신이 국민에게 냉정하게 감시되고 비판받을 점이 있다면 비판받아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민주주의란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나무가 아닐까요?

부족한 의견을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제나 평안하시길 빕니다.
낡은의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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