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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혁명가였던 체 게바라의 열풍이 우리 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자본주의에 저항한 최대의 게릴라가 자본주의 최고의 히트 상품이 되어버리는 기묘한 현상 속에서, 체 게바라의 이미지는 이 땅의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유행이 되어버렸다. 신자유주의의 가속적인 팽창 속에서 질식할 것 같던 '진보' 진영에게 체 게바라는, 옛 거장들의 오래된 필름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과 같은 종류의 노스텔지어를 선사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 또 한명의 게릴라가 정글 속에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1994년 1월 1일 NAFTA(북미자유협정)의 발효일을 기해, 멕시코 원주민의 존엄성과 권리를 보장해줄 것을 요구하며 봉기한 사파티스타 반군의 부사령관 마르코스.

얼굴을 온통 뒤덮은 검은 스키마스크, 양 어깨에 메여 있는 탄띠, 씬 레드라인(Thin Red Line)이 주는 극도의 긴장상태를 장작 삼아 불타오르는 눈빛. 전형적인 게릴라의 표상을 지닌 그이지만, 그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전혀 낯설은, 하지만 반가운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빚어지는 수많은 종류의 갈등은 결국, 관계성의 단절이라는 공통적인 근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관계성의 단절'은 다양한 양태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것은 때로는 '인종'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고, 때로는 '국가', '민족', '계급' 등의 모습을 갖기도 한다. 아니, 보다 본질적으로, 우리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관계성의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나'를 '나'의 존재 범주에 가두어버리는 '이름'이라는 관념에 의해. 모든 개별자들이 수많은 관념들에 의해 그 존재범주가 규정돼버리면서, 가장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관계성의 단절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사회 하부계층이 겪는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을 '관계성의 단절'에서 찾고 있다. 신자유주의적인 체제하에서 멕시코 원주민들은 인종적으로, 계급적으로, 구조적으로 끊임없이 단절되고 있음을 그는 간파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총을 들지 않았다. 총알은 관계성의 단절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지, '치료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 자신이 먼저 자신을 '단절시키는' 수많은 관념들을 벗어버렸다. 그를 규정하고 있는 '백인', '인텔리', '남성'과 같은 관념들을 말이다. 그의 말처럼 그와 사파티스타들은 "검은 스키마스크로 얼굴을 가림으로써 '진정한' 얼굴을 얻을 수 있었고, 모든 이름을 버린 채 오직 '게릴라'라는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진정한' 이름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거기에는 오직 '인간'만이 있을 뿐이다. 관계성을 단절시키는 모든 관념들을 벗어버린 가장 본질적인 의미의 '인간'이 있을 뿐이다.

마르코스는 이런 '관계성의 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말'을 한다. 결국, 인간 사이의 상호관계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말'이기 때문이다. 그와 사파티스타 반군은 게릴라 역사상 언론매체와 인터넷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한 게릴라로 평가받고 있다. 그만큼 그들은 어떤 무기보다도 '말'이 훨씬 강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부사령관 마르코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말'은 선언문, 호소문, 일기, 소설, 시 등의 다양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그의 모든 글들은 하나하나가 인간이 갖고 있는 '관계성'의 꼭지점을 찾아가는 하나의 생명체가 된다. 그것들이 그 꼭지점에 도달하는 순간, 우리는 부사령관이 하나의 본질적인 인간으로서 전하고자 하는 꿈과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게릴라가 없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멕시코보다 더 민주적이기 때문도 아니고, 더 부유하기 때문도 아니며, 더 관계성이 잘 보존되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 사회에 용기 있는 사람이 멕시코보다 더 적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치유를 갈망하는 움직임들이 커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게릴라가 될 차례이다. 총을 든 게릴라가 아닌 '우리의 말'로써 싸우는 게릴라 말이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부사령관 마르코스 지음, 주제 사라마구 서문, 후아나 폰세 데 레온 엮음, 윤길순 옮김, 해냄(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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