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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정신이 산란하고 마음은 허둥지둥이다. 나이 마흔셋이면 어지간한 일에 좀 태연하고 담담해질 줄 알았는데 영 아니다. 오래 전 미국으로 이민간 친구는 한 아이의 엄만데 역시 한 아이의 아빠인 남자와 연애를 하더니 결국 이혼했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가까이 사는 또다른 친구는 장애를 가진 아이 기르는 일에 지치고 지쳐 얼마 전부터 미국 이민 결심을 했고 몇 달 후 이 땅을 떠나게 된단다.
아이 기르는 엄마들이 내린 결정이어서 더 마음이 쓰였던가. 내 마음이 갈피를 못잡고 힘들기만 하다. '당신은 내 손이 되어줄 수 있나요?'의 저자는 이럴 때 내게 필요한 것이 바로 '정신의 캐어(care, 도움)'이며 '마음의 캐어'라고 이야기할 것 같다.
오사나이 미치코는 '뇌성소아마비인으로 손과 발을 사용할 수 없고 언어장애가 있는 16세 아들을 둔 엄마'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일상 생활이 불가능한 저자가, 도움받으며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도움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일상 생활에서부터 직업 활동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를 풀어나가고 있다.
저자는 캐어를 주는 사람들이 다시는 도와주러 오지 않을까 두려워서 캐어를 받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타협하다 보면 결국 캐어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기에, 그들의 기계적인 손길에 '당신 엉덩이도 그렇게 닦습니까? 당신이라면 약과 섞어 놓은 그 밥을 먹을 수 있습니까?' 하고 자꾸 되물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캐어가 장애인이라는 특정 대상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21세기는 고령화 사회, 캐어 사회로 무엇이든 할 수 있던 사람이 갑자기 장애인이 되고 의학의 발전으로 쉽게 죽지 못하는 까닭에, 누구나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과 대면하게 되고, 서로 도우며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보다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해야 진정한 고령화 사회, 약한 사람들의 사회가 온다고 강변하는 저자의 글은 다시 한 번 노인문제에 임하는 나의 자세를 돌아보게 해주었다. 노인분들의 다양성을 인정해 드리며 그 분들의 욕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늘 이야기하면서도, '노인분들은 다 그렇지 뭐'하는 식의 일반화가 얼마나 많았던가.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들까지도 더 살기 편해지는 것은 자명한데도 나는 늘 그들의 이야기를 스쳐 지나고 있을 뿐이다.
인생에서 가장 극진한 캐어를 받을 수 있는 시기는 갓난 아기 때이며,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일 모두가 캐어이고, 지구는 자연과 우주의 캐어를 받으며 아름답게 자라는 것이라는 저자의 통찰은 정말 대단하다. 저자 자신의 말대로 '캐어받는 프로'이기 때문이어서만이 아니라, 인생 전체에 대한 열린 시각이 있기에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하다고 자신만만한 우리 역시 캐어 받으며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배려, 친절, 사랑 같은 것은 모두 정신적 캐어(마음의 캐어)이며, 캐어를 잘 주고 받기 위한 지름길은 바로 서로가 지니고있는 장점을 왕성하게 발휘하는 것. 이혼으로 혹은 장애를 가진 아이로 인해 힘들어 하는 친구들을 어떻게 위로할 지 고민하는 나 역시 일방적으로 무언가 주는 것이 아니라 주고 받아야 하는 것이었음을 알아 차린다. 일단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그리고 그들의 아픔을 나는 당사자가 아니므로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솔직히 말할 것. 그래서 책은 이렇게 또 나를 도와준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제 막 캐어복지사에 대한 개념이 정리되면서 교육이 시작된 정도이다. 사회복지사와 간호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직종으로 전문직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며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치는 경우도 많았는데,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같다. 일본식 사회복지 체계가 어떤 문제점을 가졌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사회적 도움을 구체적으로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에 솔직히 부러움을 숨길 수 없다.
(당신은 내 손이 되어줄 수 있나요? -흡족한 캐어를 받기 위하여- / 오사나이 미치코 씀, 변은숙 옮김 / 깊은 자유,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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