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야."
기다려지는 시간이지만 어느 새 강연날을 까먹고 일에 빠져있을 때, 옆 선생이 말한다.
아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머리를 긁적이며 행여 같은 날 중요한 약속을 했을까하는 조바심으로 책상달력을 본다. 깨끗하게 비어있는 날을 보며 빙긋 웃고는 벌써부터 뿌듯함이 차오른다.
열심히 찾는 자에게 먹을 것이 많다던 어른들 말씀처럼 뒤적이다보면 바쁜 학교 생활 속에서도 그럴싸하게 문화적 충족감을 맛볼 수 있는 때가 많다. 그 가운데 은근히 기다려지는 시간이 교사아카데미가 아닌가 싶다.
처음 홍세화 선생님의 강연에서는 두 가지 것을 배웠다.
하나는 프랑스 교육을 통해 우리교육의 현재 모습과 방향성을 생각했고, 또하나는 누구를 보든 되도록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이다.
이 모두 교육에 관한 것인데, 결국 "교육은 기다림이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교육현장에서 체벌을 할 때나 학습지도를 할 때 가끔은 아이들을 너무 쪼이지 않나 할 때도 있다. 이렇게 교사의 욕심 때문에 아이들이 이리저리 휘둘릴 때도 있다보면 너무 성급해서 기다려주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되뇌이는 말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되도록이면)"
이 강연 다음으로 이어진 한비야님의 강연 또한 잠재우던 여행욕을 불러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할 일이 똑같은 사람의 모습은 저렇게 당당하고 건강하구나'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면 좁다고 말할까.'
그녀가 오기 전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이 슬라이드로 방영되었다. 한비야와 아프가니스탄. 처음엔 무슨 관계일까 생각했다. 어렴풋한 것은 오지탐험가란 이름을 가졌기에 아프가니스탄에 뭔가 도움을 주는 일을 하나보다 정도.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오지탐험가'에서 '긴급구호팀장'이란 이름을 달고 있었다.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지만 어쩌면 전자의 일은 그녀의 말처럼 지금의 일을 위해 하게 된 듯 보인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모습과 그녀가 여행하며 찍어온 오지의 사람들. 그들은 그녀가 말하는 "지구집"에 함께 사는 가족이었다. 오래 먹으면 독이 퍼져 뇌가 손상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독풀들을 끌고 가는 소년과 그것을 뜯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최고 희망이 '학교 다니는'일이라니. 수업 시간에 하염없이 졸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이 모습을 보게되면 어떤 마음일까. 그것을 보는 선생님들이 저마다 '아~'라는 소리를 낸다.
슬라이드 장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녀는 자신의 여행담을 빠르고도 당차게 진행해준다.
그녀는 여행할 때 세 가지 원칙이 있다고 한다.
"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한 나라에서 적어도 한달 이상 머문다. 오지마을 중심으로 다니며 현지인과 똑같이 먹고 자고 생활한다. "
사실 그녀가 걷는 것, 사람 만나는 일, 오지를 좋아한다는 말에 가슴이 설레였다. 이제 맘만 먹으면 세계일주에 도전할 수 있겠구나 하고. 하지만 여행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쉬운 법은 없는 법. 그녀가 말했던 마사이족의 손님맞이 모습에서 소의 피를 주었을 때, 우유에 섞인 소 피를 딸기우유로 바꿔 생각할 수 있는 그녀의 위트와 한국을 베이스캠프로 삼고 세계는 진짜 좁으니 자신의 무대를 전세계라 생각하라는 그녀의 강인함은 어쩌면 준비된 여행자가 아니었나 싶다.
의식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도 그랬다. 그러니 자신은 비위가 없다는 것이다. 문화 가운데 음식문화야말로 그들의 삶을 잘 비춰주고 있지 않은가. 문득 월드컵을 앞두고 문화 상대주의를 모르는 것처럼 개고기 먹는 우리문화를 비난하던 몇 나라의 사람들이 우스워보인다.
빠르고 칼칼한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쳐나고 당장이라도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음을 느끼게 했다. 가슴은 잔물결치며 흘러가는 유쾌한 수다쟁이 한비야.
한비야의 강연을 듣고 두 가지 생각을 다시 굳혔다.
하나는, 조카를 위해 세계 지도를 사기로 했다. 외교관이 되겠다며 영어공부하기를 즐거워하는 여섯 살 조카 얼굴에 웃음꽃이 보인다.
둘째는, 무슨 일이든 시도하게 되었을 때 '개운'하게 끝낼 수 있도록 한다.
뇨기를 참으며 들었던 시간.
강연 뒤 함께 들었던 선생님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와아~ 대단한 여자다!"
"아무나 여행하는 것이 아니야"
참 느슨하게 살고 있었다.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기웃거리기는 많이 했지만 정작 깔끔하게 그녀의 말처럼 '개운'해질 때까지 해 본 적이 있었나 했을 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돌아나오는 길에 "선생님 강연 듣고 싶었습니다" 했더니 그랬단다.
선생님들이 각자 한비야가 되어 전달해달라고. 그래서 우린 "제2의 한비야"가 되어 세계가 얼마나 좁은지에 대해 전하기로 했다. 그 말이 스며들려면 아이들은 "꿈"을 꾸어야한다. 아직 꿈이 없거나 꿈을 꿀 생각이 없는 아이들이 많다. 어쩌면 한비야님의 이야기가 이 꿈을 꾸게될 계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강연이 끝나고 그녀의 딩동댕 퀴즈가 있었다. 신간 "중국견문록" 한 권을 선물로 주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간단했다. 하지만 손을 들어 답한 사람은 몇 없었다. 답은 약 40,000 km. 하지만 난 이 길이를 실감하지 못 한다. 하지만 충분히 설레이고 있다. 여행을 하게 될지 어떨 지 모르지만.
아이들에게 그녀의 당당함을 사진으로 보여줄려고 카메라를 들었는 데 건전지가 있었음에도 말을 듣지 않는다. 결국 그녀의 강연에만 충실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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