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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차차 보겠지만 한국 사람들이 어떤 일을 철저하게 해내지 못했다면 그 일차적인 이유는 '평미레질'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모아 담고 다져서 깎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실(實)에 대한 그간의 평미레질이 얼마나 되었는지 한번 보시지요. 평미레된 말과 개념을 담는 대표적인 그릇이 바로 국어 사전입니다. 그래서 국어 사전에 나온 '실사구시'의 뜻을 먼저 보겠습니다.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일. 문헌학적인 고증의 정확을 존중하는 과학적·객관주의적 학문 태도를 이르는 말임." (두산동아 국어사전)
"사실에 근거하여 이치를 탐구하는 일, 또는 그런 학문 태도." (연세대 한국어 사전)
이 사전들은 실사(實事)를 '사실에 토대/근거를 두는 것'이라고 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도 한자어이고 앞 뒤 위치만 바꾼 것을 빼면 '실사'와 완전히 같은 한자를 씁니다. 그래서 '實事'는 '事實에 근거를 두는 것'이랍니다. 한자어의 앞 뒤 위치를 바꿈으로써 '근거를 두다'는 매우 특별한 뜻이 새로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좀 웃깁니다.
혹은 사(事)를 '사실(事實)'의 약자로 보고 실(實)의 뜻을 '근거를 두다'로 보았던 것일까요? 하지만 실(實)자가 '근거를 두다'는 뜻으로 쓰인 다른 예를 저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적어도 이 두 국어사전이 실사(實事)의 뜻을 제대로 모른 채 그냥 통념에 따라 '대충 얼버무렸다'고 밖에 볼 수가 없겠습니다. 평미레질은 하지도 않고 말입니다.
두산동아 사전이 제시한 "문헌학적인 고증의 정확을 존중하는 과학적·객관주의적 학문 태도"라는 풀이는 더욱 황당합니다. '실사구시'가 오늘날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학문태도라는 말도 금시초문이거니와 (물론 제가 무식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만), 옛 문헌의 용법을 참고해서 그 원래 뜻을 탐구하는 고증학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는 말도 자연스럽지가 않습니다.
적어도 제가 이해하는 서양개념 '과학(science)'은 '객관적 관찰(觀察)과 논리적 추론이 결합된 학문 혹은 그런 방법'입니다. 반면에 한자문화권의 고증학은 본질상 주관적 성향을 갖는 해석(解釋)에 기우는 학문 방법론이지요. 더구나 같은 글자라도 여러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문장 내 위치나 문맥에 따라 매우 다른 뜻을 가지기도 하는 한문(漢文)의 고증학이라면 더더구나 현대적 의미의 과학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습니다.
고증학적인 문헌 해석학은 서양에서도 주로 중세에 활용됐던 학문 방법론이었던 반면, 객관적인 관찰과 논리적 추론에 바탕을 둔 과학은 서양 근대의 특징입니다. 그런 과학과 해석학이 '결국 같은 것'이라는 주장이 새로운 학설로 제기될 수 없는 바는 아닙니다. 앞으로 논쟁을 거쳐 정설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수준에서 보편적인 뜻을 담아야 하는 국어 사전에 수록할 설명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데 한 백과사전에서도 그와 비슷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실사구시 實事求是: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하려는 태도. 즉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 보는 것과 같은 실험과 연구를 거쳐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을 통하여 정확한 판단과 해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실사구시이다....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실사(實事)부분의 설명은 앞의 두 국어사전과 비슷합니다. 뒷부분의 " ... 실험과 연구를 거쳐 ... 객관적 사실을 통하여 정확한 판단과 해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오늘날의 '과학'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실사구시가 과연 그런 서양식의 과학적 학문 태도였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국어 사전이나 백과사전에 나타난 실(實)은 그다지 평미레질이 잘 안되어 있습니다. 국어 의미론에 전문적 조예가 없는 저 같은 사람에 의해서도 쉽게 그 정확성을 의심받잖습니까?
한자 '실(實)'의 어원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그 한자의 어원적인 의미와 옛날 한자 학습서에 나타났던 뜻을 좀 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중문자보(中文字譜)'라는 한자 계보서에 나타난 실(實)자의 어원을 보겠습니다.
'중문자보'는 '설문해자(說文解字)'를 근간으로 해서 후대에 증보 개정한 한자 계보 및 어원 사전입니다. 설문해자는 약 2천년전에 슈우셴(許愼)이 쓴 것인데 각 한자의 어원적 의미를 육서(六書)에 따라 정리한 책입니다. 오랫동안 한자로 글살이를 해온 우리로서는 그 책을 중요하게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은 다른 글에서도 밝힌 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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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에 따르면 실(實)은 '집 면'자와 '꿸 관'자와 조개 패(貝)자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집 면'자는 오늘날 흔히 '갓머리'라고 불리면서 부수로만 쓰입니다만 옛날에는 집이나 지붕을 가리키는 글자였습니다. '꿸 관'자는 어미 모(母)와 비슷해 보이지만 네모 안의 점이 둘로 나뉘지 않고 선으로 이어져 있는 점에서 다릅니다.
관(貫)자의 고어형으로 오늘날은 별로 쓰이지 않지만, '구멍을 뚫어서 끈으로 꿰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조개(貝)가 고대에 '돈'으로 쓰였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후대에는 '귀중한 것 일반'을 가리키는 말에 두루 사용됐습니다.
그래서 실(實)을 직역하면 '집안에 끈으로 꿴 돈이 많다'는 뜻입니다. 집에 보화가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기분 좋은 말입니다. 저도 이 말을 좋아합니다. '부자 되세요'하는데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간단히만 볼 것은 아닙니다. 그 끈에 꿴 돈이 '집에' 혹은 '지붕 아래에' 있다는 말은 가용성을 가리킵니다. 내 손이 닿는 곳, 내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 돈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림의 떡'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돈이 '끈에 꿰어져 있다'는 표현도 생각해볼 거리입니다. 돈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질서있게 정리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조금만 더 상상력을 동원하면 그 '끈'을 어떤 '중요한 원칙'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 돈은 내 영향력 아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어떤 차원 높은 원칙에 따라 정리되고 사용된다는 뜻을 유추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끈, 혹은 차원높은 원칙은 '벼리'라는 말로 바꿔 부를 수가 있습니다. '벼리'도 사실은 끈입니다. 끈은 끈이되 그물코를 꿴 끈입니다. 어부가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을 때에는 그물을 넓게 칩니다만 그것을 잡아당길 때에는 수백 개나 혹은 그 이상의 그물코를 일일이 잡아당기지 않습니다. 그물코에 꿰어진 벼리만 스르렁 잡아당기면 그물은 오므라들고 고기가 잡힙니다.
그래서 실(實)의 어원적인 의미는 '벼리를 통해 질서있게 관리되는 가용한 풍성함'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어원적인 뜻이고, 특히 2천년전의 문헌에 근거를 둔 고대 사회에 통용되던 의미입니다. 그런 뜻이 정말 확실한 것이라는 점은 그보다 더 고대의 갑골문 문헌을 살펴보고 또 그 후대의 어법 변화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더구나 그 말이 한국에 들어온 이후에 어떻게 사용됐는지도 따로 살펴보면서 평미레질을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갑골문에 대해서는 전문지식이 없고 중국의 한자 어법에 대해서도 조예가 없는 저로서는 그런 한계를 인정하면서 주로 한국 문헌에 나타난 실(實)의 뜻과 어법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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