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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에 맑은 표정으로 힘차게 걷는 사람을 보면 즐거워진다. 열의를 갖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프로의 자세가 저러하리라. 그렇게 씩씩하고 활기차게 걷는 사람을 보면 괜히 그 이의 됨됨이에게까지 믿음이 간다.

노을이 지는 공원길에서 사색에 잠겨 천천히 걷고 있는 노신사를 만나는 일도 즐겁다. 묵묵히 자기 일을 감당해온 이의 연륜과 무게가 그의 느린 걸음걸이에서 느껴진다. 천천히 지팡이를 짚어가며 한 발씩 앞으로 떼놓는 작은 걸음마다 기억과 회상과 기쁨과 고통이 담겨 있는 것만 같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의 걸음걸이는 또 어떤가. 위험을 무릅쓰고 미지의 세계로 떼어놓는 그 걸음이야말로 앞으로 그 아기가 살아나갈 가장 큰 자신감의 시작이라 불러도 좋다. 한 손으로 꽉 움켜잡고 있는 보행기 또는 책상 다리를 놓고 자기 두 다리만으로 처음 떼어놓는 그 걸음은 일종의 독립선언이다. 이젠 본격적으로 말썽을 피울 테니 위험한 물건은 치워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걷는다는 것은 아주 쉽다. 그저 몸을 일으켜 세워 앞으로 발을 교대로 내딛으면 그만이다. 걸으면 경추 1번 아틀라스에서 미추 코씩스까지 기분 좋은 긴장이 흐른다. 척추 기립근에 힘을 넣고 가슴을 쑥 편 뒤에 팔을 앞뒤로 자연스럽게 흔들면서 고개를 든다. 중둔근 대둔근이 좌우로 씰룩이며(걸을 때 여자만 엉덩이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남자의 엉덩이 근육이 좀 더 날씬하고 위로 올라붙었기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양 발을 교대로 내딛는 이 직립보행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가끔 잊는 것처럼 보인다.

걷는다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란 종족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다. 아니 두 발로 걷는 행위가 바로 호색하고 간교하며 잔인하지만 그러나 매력적인 인류란 종을 만들어냈다. 하긴 이 매력적인 종족이 지구상의 모든 고등 종을 절멸시킬 능력을 가졌고, 마침내 사용할 지도 모르는 유일한 종족이기도 하다. 제발 인간 이성의 힘으로 또는 신의 가피를 입어서라도 그 능력만은 발휘되지 말기를. 아무튼 인류는 두발로 걷기란 기술을 익힘으로써 만물의 영장으로 자리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빙하기에 이미 도태되어 존재자체가 지금에 전해지지 못했으리라.

두 발로 걷게 되면서 양 손이 자유로워졌고, 그 손으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면서 문명이 시작됐다. 지금부터 460만 년 전, 동부 아프리카의 어느 지역에서 대체 무슨 생각에서 시작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일군의 유인원 무리가 나무에서 내려와 두 발로만 걷기 시작했다. 적어도 나무 위에서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육상으로 내려와 두 발로 걷기를 선택하면서부터 고난은 시작됐고, 수많은 난관이 그들 위에 떨어졌다. 파충류들에게 쫓겨 다니고 힘센 포유류들에게 사냥 당했다. 하지만 이 종족은 기이하게도 번창에 번창을 거듭해서 마침내 대륙이 이동을 멈추고 지금의 구도를 갖추게 되었을 무렵에는 온 지구에 번식하기에 이르렀다. 상시적인 직립 보행이야말로 유인원과 인류를 가르는 가장 중요하고 독특한 특징 중에 하나이다.

귀가 번쩍 뜨일 소식 하나. 두 발로 걸으면 두뇌가 좋아진다. 임마뉴엘 칸트가 골방에서 사색에 잠겼다면, 인류는 그의 장서목록에 순수이성비판이란 걸작을 추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걷는 행위는 뇌를 자극하는데, 특히 전두엽을 발전시킨다. 전두엽은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성과 추리와 연역, 언어와 감정의 일부마저도 전두엽이 관장한다. 정신병도 바로 이 전두엽 이상으로 나타난다. 전두엽은 그 중요성만큼이나 에너지 소모량도 많아서 온 몸에서 사용되는 산소 요구량의 20%를 전두엽 혼자 독차지 한다. 걷기는 바로 이 전두엽을 자극하는 행위다. 바른 자세로 걸으면 머리가 좋아진다. 물론 건강에도 좋다.

발은 제2의 심장이란 말을 혹시 들어보셨는지? 혈액은 매우 끈적끈적한 액체이다. 이렇게 점도가 높은 액체가 혈관이란 파이프 안을 흐르자면, 점도가 낮은 맹물이 흐르는 것에 비해 훨씬 많은 힘이 필요하다. 더구나 사람 몸에 있는 혈관을 모두 이으면 지구를 세 바퀴 감고도 남을 만큼 길다. 이렇게 먼 거리를 혈액이란 끈적끈적한 액체가 돌아다니자면 얼마나 강력한 힘이 필요할 것인가.

또한 혈액도 무게가 있으니까 당연히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끈적하고 무거운 혈액이 순환 중에 다리 쪽으로 몰리면 대체 어떤 힘이 그 다리 쪽의 피를 중력을 이겨내고 다시 심장으로 되돌릴 것인가. 걸으면서 발바닥이 받는 압력과 걷기 위해 움직이는 근육이 다리에 쏠린 피를 심장으로 다시 올려 보내는 데 일조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발은 제2의 심장인 것이다.

따라서 앉거나 차타기만 좋아한다면 당신의 심장은 걷는 사람에 비해서 두 배 세 배 일을 더하게 되고, 마침내 피로해져 서버릴 지도 모른다. 안타깝지만 심장 세포는 재생이란 것이 없다. 죽어버린 심근세포만큼 다른 세포들이 더 일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 되면 마침내 심장이 더 이상 뛰지 못하는 일이 생기고, 그것이 바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죽음의 정의이다. 건강해지고 싶다면 걸으라.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건강을 지키는 금언이다.

태음인은 느리고 장중하게 걷는다. 체격이 큰 사람이 많은 태음인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대거나 엉덩이를 나부대지 않고 천천히 걷는 모습은 보기에 좋다. 태음인을 상징하는 동물은 소. 황소가 재 넘어 사래 긴 밭을 묵묵히 가는 것처럼 태음인의 결음걸이는 느리고 무겁다. 하지만 태음인들은 폐기능이 약하다. 그래서 자기 몸피와 걸맞지 않게 가슴을 수그리고 어깨를 늘어뜨리며 옹색하게 걷는 사람이 더러 있다.

게다가 태음인들은 걷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아니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를 과히 좋아하지 않는다. 일요일이면 산으로 들로 놀러가기 보다는 집에서 리모컨을 삿대삼아 티브이 서핑을 즐기는 편을 택하는 태음인들은 무엇보다 걸어야 한다. 당신의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세우라. 그리고 시원하게 걸으라.

뜻이 크고 속셈이 깊으며 쉽게 자기를 들어내지 않는 태음인들이여. 당신의 운세가 만사형통하고 싶다면 가슴을 펴라. 시선은 정면 사방을 보고 척추를 곧게 편 뒤 뚜벅뚜벅 걸으라. 어지간한 병 따위도 단지 그 하나만으로도 나아버릴 것이다. 당신의 운세 또한 시원스런 걸음걸이처럼 확확 풀려나갈 것을 장담한다.

소음인들은 조심조심 예쁘게 걷는다. 남녀를 불문하고 용모 단정한 미인이 많고 피부도 깨끗한데다 재주도 많은 소음인들은 좀처럼 실수를 하지 않는다. 소양인들이라면 벌써 결론이 나도 두 번은 나올 법한 일도 소음인 손에 넘어가면 좀처럼 해결을 보기 어렵다. 치밀하고 꼼꼼한 그래서 더러 소심하다는 평을 받기도 하는 소음인들은 기혈이 모두 부족한 사람이 많다. 그래서 걸음걸이도 조심스럽고 사뿐사뿐 예쁘게 걷는다. 체구도 비교적 작은 사람이 많다.

소음인들도 걸어야 한다. 아니 다른 어떤 운동보다 걷는 것이 좋다. 만성적으로 피곤하고 스트레스에 약하며 추위를 잘 타고 소화기가 약하기 쉬운 소음인들은, 애초에 타고 나길 기혈이 부족하게 타고 났다. 이런 사람이 건강을 생각한다고 처음부터 마라톤이며 수영을 시작하는 것은 몸에 무리가 온다. 아주 허약한 사람이라면 한 시간에 4Km 정도로, 조금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5-6Km 정도 속도로 빠르게 걸으시라. 건강이 눈앞에 있다.

소음인들은 소화기가 약하다. 그래서 걸으면서 허리가 구부러지고 가뜩이나 좁은 어깨를 더욱 웅크리고 전체적인 자세가 틀어지는 경향이 있다. 역시 고개를 들고 허리를 곧추 세우고 가슴을 활짝 펴고 걸으라. 호흡은 복식호흡이 좋다. 숨을 들이쉬면서 배를 부풀리고 숨을 내뱉으면서는 배가 들어가게 하라. 호흡은 최대한 길게 끊어지지 않고 가늘게 쉬는 것이 좋다. 걸음을 억지로 씩씩하게 걸으려 할 필요는 없다. 걸어서 기분 좋다는 생각을 자기암시처럼 되 뇌이며 바른 자세로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좋다. 체력이 좋아지면 그 때부터 속도를 높이시라.

활달하고 재치에 넘치는 소양인들은 잘 걷는다. 걸음걸이가 빠르고 경쾌한 편이다. 걸으면서도 연신 좌우를 두리번거리거나 쇼윈도에 비친 자기 모습을 잘 보는 편이다. 하지만 조금만 오래 걸으면 쉽게 지치고 무엇이든 꾸준히 오래 해야 하는 일에는 잘 적응을 못 하는 편이다.

소양인들은 조금 천천히 걸으면서 자세에 좀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 소양인들의 걸음걸이는 경쾌하지만 지나치면 촐랑거린다든가 경망스럽다는 말을 듣기 쉽다. 걸을 때의 시선은 상방 15도를 주시하고 지나치게 좌우를 돌아보지 말고 믿음직스럽게 걸으시라. 지나치게 급한 성격도 바뀔 것이다. 처음에 체중을 발뒤꿈치로 받으면서 땅에 대고, 발 중앙과 측면을 따라 체중을 옮기다가, 마지막으로 엄지발가락으로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즐기라. 당신은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걷는 지조차 몰랐으리라. 내 신발의 뒷굽이 안쪽부터 닳는지 바깥쪽부터 닳는지도 살펴보고(아마 바깥쪽부터 닳기 쉬우리라), 양쪽이 서로 대칭을 이루지 못한다면 당장 굽부터 바꾸라. 바꿀 수 없다면 버리라. 대칭을 잃은 신발은 신발이 아니라 건강을 위협하는 흉기다. 이것은 모든 체질에게 공통된 사항이다.

머리도 좋아지고 건강도 좋아지며 심지어 체형도 예뻐지는 즐겁고 유쾌하게 걷기는 고맙게도 공짜다. 장애가 있는 분도 물속에서 걷기랄지 보조기를 사용한 걷기랄지 다양한 방법을 찾아 걸으시기 바란다. 인간은 두 발로 걷는 동물이다. 기본에 충실해야 응용도 잘 되는 법. 한의학에서 말하는 건강을 위한 열 가지 지침에서도 차는 적게 타고 많이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少車多步)고 말한다. 우선 걸어야 뛰든지 날든지 할 것 아닌가? 골프도 좋고 축구도 좋지만 좋은 자세로 걷는 것, 건강한 삶을 찾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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