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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라는 이름은 재즈라는 음악의 한 분파에서 실로 압도적인 위치를 자랑하는 거장의 성스러운 이름이다. 언제나 재즈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괴로워 할 때 새로운 길을 개척해주는 구세주의 이름이 바로 Miles Davis였다. 특히 Birth of Cool앨범에서 새로운 길을 제시한 쿨 재즈(Cool Jazz)<1>, Kind of Blue에서 주장한 모달 재즈(Modal Jazz)<2>, Columbia레이블에서 발표한 Bitches Brew앨범은 한줄기 빛이 되어 퓨젼 재즈(Fusion Jazz)<3> 열풍의 시발점이 되었다.

보통 퓨젼 재즈라고 하면 재즈연주자들이 4박자의 록 비트를 깔고서 전자악기를 사용하는 예쁘장한 음악을 떠올리기 쉬울 텐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Bitches Brew'를 감상하면 정말 난감할 것이다. 퓨젼재즈의 지평을 열었다고 흔히 인구에 회자되는 이 음반은 오히려 요사이의 진부한 Cliche를 남발하는 퓨젼재즈가 아닌 그야말로 새로운 방향의 제시였던 것이다.

1969년도에 발표한 Bitches Brew 이후 몇 장의 음반을 발표하면서 거친 일련의 실험들은 마침내 '재즈는 댄스뮤직'이라는 명제를 확고하게 수행하는 퓨젼재즈를 창조해내는 데에 성공을 했다. 그 음반이 지금 소개하려하는 1972년작 'On The Corner'이다. 이 음반은 엄청난 수의 discography를 자랑하는 이 藝人의 작품 중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음악성을 자랑하는 음반이다.

이전까지의 마일즈 데이비스라는 음악인을 대변하는 페르소나는 '야만과 이성의 혼합'이었다. 그는 격렬한 groove를 지녔지만 자신의 냉랭한 트럼펫 소리로 이 모든 세션을 통제하는 독재자의 이미지였다. 실례로 이 음반이 발매되기 전에 발표되었던 뜨거운 일렉트릭 기타와 끈끈한 오르간이 작렬하던 Fillmore실황이나 'A Tribute to Jack Johnson'같은 음반에서조차도 그만은 시종일관 냉랭한 톤의 트럼펫을 연주했던 것이다.

그런 그가 현대 고전음악의 거장인 Stockhausen과 Godfather of Soul이라 명명되어진 불세출의 뮤지션 James Brown<4>의 거대한 영향에 Jimi Hendrix<5>, Sly & The Family Stone<6>의 Black Music을 발견한다. 기악의 전통적인 음색과 테이프에 녹음된 전자음의 음색을 훌륭하게 통합한 Stockhausen<7>과 흑인 음악인들의 거리문화에 경도된 클래식 학도(이 욕쟁이 양반이 실은 쥴리어드 음대출신이다)는 그들의 업적을 멋지게 자신의 음악에 녹여내었다.

전작까지의 groove의 발현은 각 세션들의 마에스트로적인 품격에서 우러나오는 연주적인 즐거움이었다면 그래서 각 세션들이 하나하나 분리되어 멋진 그림들을 파노라마식으로 보여주고 있었다면 이 음반에서의 groove는 마치 퍼즐조각들처럼 따로따로 분리하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합주의 즐거움을 통한 groove를 만들어 내는 데에 성공하였다.

물론 이 음반에도 멋진 형태의 솔로가 즐비하지만 조금 다른 의미의 멋진 솔로이다. 광폭한 groove를 연주하는 첫 번째 곡에서부터 이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John Maclaughlin의 광분하는 듯한 전자기타와 Michael Henderson의 불같은 훵키무드를 조성하는 베이스연주는 기본적인 최면을 시작하면 이어지는 Herbie Hancock과 Chick Corea의 천천히 고조되는 건반연주는 그 최면성을 배가시킨다.

거기에 각종 시타르와 타블라를 동원하며 Al Foster, Billy Hart, Jack De Johnette, Mtume등 무려 4인의 드럼과 타악기연주자가 연주하는 반복되는 리듬과 이 모든 소리들이 창조해내는 주술성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형태의 groove의 벽을 만들어 내면서 견고한 음의 공간을 창조해낸다. 여기에 와와 페달<8>을 연결한 왜곡된 소리의 트럼펫은 '마일즈 맞아?'라는 말이 나올만큼 '음'이 만들어내는 견고한 정글에서 울부짖는 맹수같은 소리를 뽑아낸다.

이 음반에서의 마일즈 데이비스는 연주적인 측면에서는 지극히 흑인음악적인 어법을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소리의 배치에는 스톡하우젠에게 경도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무수하게 사용된 녹음된 결과물들의 편집, 오버더빙 등이 이 음반의 창조에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이 음반의 강렬한 groove는 무수히 많은 리듬 루프들의 편집과 오버더빙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이는 현재의 화두라 할 수 있는 Electronica의 수작업적인 가장 원시적인 자화상을 볼 수 있다.

음반의 쟈켓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마일즈 데이비스는 이 음반을 통해서 동시대의 흑인 젊은이들에게 어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는 너무 무겁고 어른들에게 너무 경박했던 이 음반은 상업적으로 실패를 거두게 된다.

그러나 현재 뉴욕계열의 힙합DJ들에게 성전이며 지금 들어도 충분히 미래적인 사운드를 담아내고 있는 이 음반이 1972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의 시대를 초월하는 전위성에 찬사를 아낄 수 없게 한다. 이제 시대가 그를 따라잡은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덧붙이는 글 | <1>쿨 재즈(cool jazz) : 1949년 마일즈 데이비스의 명반 'Birth of Cool'로 탄생을 알린 재즈의 한 분파. 극렬한 즉흥연주를 자제하고 다소 냉랭한 분위기를 이끌어나가는 재즈이다. West Coast Jazz라는 별칭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2>모달 재즈(Modal Jazz) : 재즈의 즉흥연주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음악. 본격적인 용어로는 Modal Music이라고 불리운다. 즉흥연주의 방법을 새롭게 중세선법을 도입하여 연주한 것을 두고 Modal Music이라고 한다.

<3>퓨젼재즈(Fusion Jazz) : 재즈의 방법론에 록을 융합한 형태. 그러나 이 뜻은 이미 오래된 뜻이고 글쎄 이것저것 소위 말하는 메인 스트림 재즈의 형태를 벗어나 무엇인가 다른 요소가 섞여 있으면 퓨젼재즈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용어의 정의가 힘들다.

<4>James Brown : 흑인 음악인 중에 가장 존경받는 이를 꼽으라면 Miles Davis, Jimi Hendrix, Prince그리고 이 James Brown이다. 온 몸을 불사르는 듯한 무대매너와 불을 토해내는 듯한 열정적이고 섹시한 창법으로 유명한 Soul아티스트이다. 그 외에도 소외받는 흑인들을 대변하는 데에 가장 열심이었던 아티스트이다.

<5>Jimi Hendrix : 60년대 후반의 록을 이끌었던 뮤지션. 기타에 대한 파격적인 실험으로 주법상의 한계를 파괴했으며 기타줄을 물어뜯고 기타를 불사르는 과격한 무대매너는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대중음악사상 가장 숭앙받는 아티스트중 하나로 자리잡혀 있다.

<6>Sly & The Family Stone : Sly Stone이라는 불세출의 천재 뮤지션에 의해 영도된 음악집단. 소울과 리듬 앤 블루스의 과격한 형태를 띄었으며 이에 싸이키델릭한 사운드를 혼합시킨 실험적이고 끈끈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7>Stockhausen : 가장 실험적인 형태의 고전음악을 만들었던 혹자는 스톡하우젠 이후의 고전음악에 관한 실험은 끝났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음악을 만들었던 희대의 천재이다.

<8>와와 페달(Wah-Wah Pedal) : 스피커를 통하여 나오는 소리를 왜곡시키는 사운드 이펙트의 한가지이다. 보통 전기기타의 연주에 많이 사용하는데 우는 듯한 소리가 흐른다. 지미 헨드릭스를 유명하게 해준 이펙트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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