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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말경, 필자는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회의에 정부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할 일이 있었다. 일주일간의 고된 회의 행군을 마치고 토요일에 황금같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셰익스피어 생가를 다시 찾기로 하였다. 약 5년 전 이맘 때쯤 그곳에 들른 적이 있지만 이번에 다시 찾은 데는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었다.
관광을 떠나기로 한 5월 25일, 아침부터 바람이 몹시 불었다. 며칠 전에 런던 시내 템즈 강변의 뱅크사이드에 있는 셰익스피어 기념관 (Shakespeare's Globe Exhibition)에서 들은 리어왕의 울부짖음이 바람 소리 속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리어왕을 쓴 셰익스피어의 그 영감이 바로 이 바람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출발장소인 빅토리아 역으로 부지런히 갔다.
| 셰익스피어 생가로 가는 고속도로 주변의 대초원 |
| 셰익스피어 생가 주변동네 한바퀴 |
지하철을 갈아타고 뛰어서 간신히 시간 맞추어 간 그곳에는 사람들이 아직 웅성거리고 서 있었다. 그런데 기이한 인연이었다. 5년 전에 안내를 했던 가이드가 이번에도 가이드를 하게 된 것이다. 30명 가량 되는 관광객 중 대여섯 명 정도 되는 일본인들을 따로 모아 맨 앞줄에 세운다. 그때도 일본인 관광객들은 따로 모아 특별대우를 해주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버스로 갈 때는 앞쪽에 앉혀서 유창한 일본어로 따로 설명을 하고, 내려서도 그들에게는 따로 배려를 해주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나도 일본인과 같은 동양인인데 나한테는 아예 오지도 않았다. 그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또 다시 이번 여행의 가이드라는 것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혹시 그도 나를 기억하나 싶어 중간에 옥스퍼드 대학에 들렀을 때 슬며시 물어보았다. 자기도 어슴프레 기억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반갑다는 말도 의례적인 인사치례도 없었다. 이곳 영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인식이 매우 우호적이라더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니 이내 바람이 불었다. 내 작은 우산으로는 감당이 안 되었다. 한 여름에도 손이 시려울 정도였다. 비장감이 생겼다.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해야 할까? 얼마 전 이곳 영국의 에밀리 브론테의 생가를 찾은 우리나라의 어느 소설가가 기행문을 대단히 비장하게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날씨가 나에게도 비장한 느낌으로 글을 써 보라는 것인가.
에밀리 브론테가 살던 언덕은 이런 바람을 동반한 비로 인해 '폭풍의 언덕'이 되었으리라. 그리고 밤새도록 창문을 두드리는 억센 비바람은 심약한 그에게 아마도 그런 소설을 쓸 천혜의 환경을 만들어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셰익스피어 생가가 있는 Stratford-upon-avon으로 가는 고속도로 주변에는 그야말로 '저 푸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조금씩 색조를 달리한, 그러나 녹색의 기조를 유지한 드넓은 밭과 초지와 삼림이 양쪽의 지평선 저 끝까지 이어졌다. 그 파노라마 앞에서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가이드도 자랑스러운 듯 어느 순간 좌우를 둘러보라고 말했다. 정말 환상적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부터 찬사가 터져나왔다. 그 녹색 계열의 대 장관은 도저히 내 필력으로는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는 것을 한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저런 광활한 대자연이 보기엔 아름다워도 그 속에는 많은 사람의 엄청난 땀이 배어 있을 터. 그 넓은 초원에 농가도 드문드문 하나씩 보이던데 어떻게 저 엄청난 자연을 다스린단 말인가. 얼마 전 회의 중에 "영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일을 한 열 배는 더 하는 것 같아"하던 동료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그때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 대자연 앞에서 오늘 그 말이 또 머리를 스치는 것이다.
저 녹색 파노라마는 사소한 일에도 싸움을 위하여 쌈박질을 일삼는 저기 동쪽의 어느 척박한 땅의 정치꾼들이 보고 마음에 담아야 할 장면이 아닐까. 마음이 갑자기 넓어지는 것 같았다. 이 세상의 모든 부조리마저도 품을 수 있을 듯이. 이렇게 그냥 이 마음으로 살고 싶다.
이윽고 셰익스피어 생가에 도착했다.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생가는 밖에서 보기엔 평범한 2층 목조건물이었는데 뒤엔 제법 넓은 정원이 있었다. 생가는 옆에 붙은 작은 방문자센터를 통해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양쪽엔 며칠 전 런던시내의 기념관에서 본 것처럼 그의 연대기, 작품설명 등이 벽에 걸려 있었다.
| ▲셰익스피어 생가의 필자와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 ⓒ 여인철 |
그의 생가는 그의 작품활동 관련 전시품보다는 그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보는 편이 나을 정도였다. 그가 생가를 일찍 떠나 대부분의 작품활동을 런던에서 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관람을 마치고 나와 주변의 시가지를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비가 후두둑거리더니 이내 바람을 동반한 작은 폭풍우가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 황야에서 맞닥뜨린 폭풍우가 생각났다. 그리고는 '폭풍의 언덕'에서의 '악전고투' 끝의 '절대고독' 속에서 썼다는 어느 소설가의 글을 떠올렸다.
"아직 끝나지 않은 내전이 퍼뜩 떠오르고 깊이 억눌러 왔던 내상이 다시 욱신거렸다. 몇 년 전부터 내 이름을 갉아먹고 쏠아대는데 단단히 재미를 붙여온 쥐새끼들, 내 삶 주변에 모여들어 웅웅거리는 쉬파리떼, 내 문학을 헤집고 스멀거리며 돌아다니는 바퀴벌레 무리. 그것들이 떠오르자 그때까지의 내 평온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 '조선일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문인'이라고 일컬어지는 '프로조선' 소설가는 '거센 비바람'속의 '절대고독' 속에서 위에서 말한 몇 종의 하등동물을 떠올렸다고 한다. 우습기가 그지 없다. 도대체 누가 할 일 없이 그것도 몇 년 전부터 그의 이름을 갉아먹고 쏠아대는데 재미를 붙였으며, 그의 삶 주위에 모여들어 웅웅거렸으며, 그의 문학을 헤집고 스멀거리며 돌아다녔단 말인가. 소외되고 있음을 견딜 수 없었던 그가 남들이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그렇게 쓴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누가 그것을 초래했단 말인가. 모든 것이 자업자득인 것을 그는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조선일보를 매개로 하여 그와 '안티조선' 사이에 불붙은 '내전'은 그의 말마따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에게 조선일보를 대리하여 '내전'에 뛰어들라고 한 적이 없다. 그 동안 조선일보에서 베푼(?) 것에 대한 보은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싸움을 자청했고 그 '내상'에 괴로워하고 있는 것일 뿐.
그는 죄없는 '안티조선' 진영의 사람들을 그렇게 하등동물로 싸잡아 공격을 감행했지만, 나는 '프로조선' 진영의 사람들에게 그렇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은 것이다. 내 머리로는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는 그런 하등동물들을 그 고생을 해가며 발견해주었다는 것이 나로서는 그저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어떻게 비록 방향은 일치하지 않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만큼의 정확한 개수의 종을 발견해냈을까.
나는 평소에 우리나라의 몇몇 지식인 부류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에 비해 터무니없는 지위, 명망 또는 권력을 누리고 있으며 그 부류들이 다름 아닌 교수, 언론인 그리고 소설가들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조선일보의 사회적 해악에 대하여 잘 알면서도 더러운 욕망 때문에 거래를 하고 있다.
조선일보와 그런 지식인의 관계는 마치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와 같다. 조선일보는 지면을 내주는 대신 쓰레기 같은 글로 지식인의 권위를 이용하여 민중을 현혹시키고, 지식인들은 자신이 이용당하는 줄 알면서도 이름을 내기 위해 거기에 늘어 붙어 있는 것이다. 그나마 그 둘의 관계가 수평적인 것도 아니다. 겉으로는 그런 지식인을 지성이라 추어주지만, 실은 조선일보의 기자들은 그런 헛똑똑이 지식인들보다 한수 위다. 가지고 노는 것이다.
| ▲런던의 셰익스피어 기념관 (Globe) 무대에서의 '한 여름밤의 꿈' 리허설 장면. ⓒ 여인철 |
이제 그 소설가의 '절대고독' 속의 몇 종의 하등동물들의 발견으로 인해 나는 이렇게 그런 '조선일보류'의 지식보부상들에게 '쥐새끼'같은 교수들, '쉬파리떼'같은 언론인들, '바퀴벌레' 같은 소설가들이라는 말을 하나씩 공평하게 나누어줄 수가 있게 되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셰익스피어 생가에 가기 며칠 전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이순원이라는 소설가가 안티조선을 선언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는 그 소설가를 잘 모르지만 그는 조선일보에서 주관하는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나왔고 그 후로 조선일보와 인연을 맺으며 성장했다고 한다. 그것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었다. 더군다나 조선일보에 그 동안 글을 고정적으로 쓰던 소설가라 하지 않는가.
그는 작년 언론사 세무조사 무렵부터 조선일보를 끊을 것을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고 한다. 천문학적인 탈세가 드러나자 세무조사라는 정당한 법집행을 (여기서 그것의 정치적 의도 유무를 따지고 싶지 않다) 언론탄압으로 호도하던 조선일보의 본래의 모습을 그때 직시하게 되었을 것이다.
정확한 눈이다. 깊은 소설을 쓰려면 그 정도의 혜안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같은 시중의 우수마발도 1996년 한총련 사태를 보도하는 조선일보의 삐라같은 논조에 질려 끊어버린 후 쳐다보지도 않다가 바로 그 무렵에 다시금 주목을 하기 시작했는데 말이다. 그러나 그가 조선일보를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이유가 어디 그뿐이랴.
이순원 소설가, 정말 축하한다. 그리고 오랜 망설임 끝에 내린 결코 쉽지 않은 결단에 대해 찬사를 보낸다. 언젠가 안티조선 행사장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나는 등단한 적도 없는 주제에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민족문학 작가회의(대전충남)의 말석에 이름 석자 걸쳐놓은 습작중인 사람으로서, 문인들이 그곳에 몸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사랑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요즘 민족문학이 과연 민족문학인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무엇 때문에 '민족'문학인가. '민족'문학이 그냥 문학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왜 그들은 그냥 '문인협회'라는 곳에 있지 않고 '민족'문학 쪽에 있는가. 어떤 문인은 '민족'문학을 한다면서도 전 생애를 '반민족'으로 일관해 온 조선일보에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런 부류의 문인이 바로 조선일보를 '헤집고 스멀거리며 돌아다니는 바퀴벌레' 같은 문인이 아닐까?
조선일보에 글을 쓰려면 제발 '민족'을 운운하지 말기 바란다. 그 이중성과 기회주의가 역겹다. 그리고 가난을 이길 뱃심이 없다면 애초에 문학의 길로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다. 조선일보에 기웃거리며 떨어지는 국물로 입도 적셔야겠고, '민족'문학 한다는 소리도 듣고 싶다는 것인가. 그 국물이 도대체 무슨 국물인지 알기나 하는가?
탈세국물이다. 국민의 세금을 탈세한 돈으로 네 돈이냐 내 돈이냐 하면서 칼럼 한 편당 100만원씩 펑펑 쓰는 것이다. 어느 한심한 사회학과 대학교수는 그 탈세한 돈으로 칼럼 한 편당 100만원씩 주는 것을 두고 "신문사가 형편이 좋아 돈 많이 주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했단다.
| ▲셰익스피어 기념관 입구에 뜻밖에 소네트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을 한글로 쓴 액자가 걸려있다. ⓒ 여인철 |
그게 우리나라의 명문대학의 사회학과 교수가 한 말이다. 우리나라 사회학과 대학교수의 의식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말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 부류의 교수가 바로 조선일보를 '갉아먹고 쏠아대는데 단단히 재미를 붙인 쥐새끼' 같은 교수가 아닐까?
여기에 '민족'문인까지 가세해서는 안 된다. 조선일보는 그들의 '반민족성'에 분칠을 하기 위해, '반통일성'을 가리기 위해, 그리고 '반민중성'을 위장하기 위해 미끼를 던지는 것이다. 그 미끼에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 미끼를 물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족'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지금 세상을 바로 보아야 한다. 지금 그렇게 강과 산을 노래하고 있을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다. 우리가 부정해야 하고 거부를 해야할 것들이 힘을 갖고 세상을 농단하고 있다.
그것은 과거 독재시절에 저항해야 할 것들과 외피만 다를 뿐, 더 교묘한 형태로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그것을 이 시대의 '민족'문인들이 깨닫게 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조선일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문인'중의 한 명이라는 소설가 이순원이 개안을 했듯이 '민족'문인들의 또 다른 개안을 절실히 기대한다.
작은 폭풍우는 계속 몰아치고 있다. 아직도 리어왕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야에 서서 분노의 목소리를 토하고 있다.
"힘껏 울려라! 타올라라, 불길아! 쏟아져라, 비야! 비도 바람도 천둥도 번개도 내 딸은 아니다. 폭풍우여, 나는 너를 책망하지 않겠다... 그러나 나는 너를 저 악독한 두 딸년의 편을 들어 이 늙고 백발 성성한 늙은이의 머리위로 전쟁을 몰고 온 비열한 첩자라고 부르겠다.”
("Yet I call you servile ministers,
That have with two pernicious daughters join'd
Your high engender'd battles 'gainst a head
So old and white as this.")
조선일보는 이 시대에 거부되어야 할 수구세력의 본산이며, 탁류의 원천이다. 이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인 것이다. '조선일보류'의 교수와 언론인, 그리고 소설가들은 그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면 글을 쓰는 것을 삼가야 할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구차한 이유를 들며 계속 조선일보에 글을 쓴다면 리어왕이 소리친 것처럼 나도 그들을 "조선일보의 비열한 첩자"이며 "우리 시대의 '꼴라보'"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만일 당대에서 그 심판을 할 수 없다면 후일 심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는 나의 이름을 그들 이름의 대척점에 걸어 놓겠다.
그런 저런 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운 사이 차창을 후비고 지나가던 폭풍우는 그치고 버스는 런던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런던의 셰익스피어 기념관과 그의 생가를 며칠 간격으로 둘러보는 동안 나의 머리를 지배한 리어왕. 오늘 그의 폭풍우 몰아치는 황야에서의 분노어린 절규에 나의 목소리를 실어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불어라 바람아, 쓸어버려라! 날뛰어라! 불어라! 폭포수 같은 호우야, 회오리바람아, 억수같이 퍼부어서 '쥐새끼'들을 젖게 하고, '쉬파리'떼와 '바퀴벌레' 무리들을 물에 잠기게 하라!..."
(Blow, winds, and sweep them off! rage! blow!
You cataracts and hurricanoes, spout
Till you have drench'd the‘mice’, drown'd the ‘blowflies’ and the ‘roa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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