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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사랑이라는 단어가 보편화된 시대도 없었던 것 같다. 이제 대중매체에서 유부남과 유부녀, 사제간의 사랑 등 과거에 금기시되어온 사랑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은 그다지 낯선 일이 아니다. 중년 뿐 노인들의 사랑이야기나 결혼에 대한 미담도 어색하지 않게 다가오는 걸 보면, 이제 남녀간의 애정이라는 화두는 10대나 20대만의 전유물은 아닌 셈이 된 것이다.
그러나 대중매체의 힘을 빌어 전파된 "사랑"이라는 화두는 묘할 정도로 이미지화되고 그 속에서 우리는 타자화되고 있다. 미디어 속에서의 사랑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여성과 멋진 남성이 등장하며, 일반인은 범접할 수 없는 극적이고 절묘한 이야기가 동반된다. 그리고 범상한 이들은 누리기 힘든 성적인 코드가 결합되곤 한다. 결국 대중은 이미지의 포로가 되고, 쟁취할 수 없는 가치에 목말라하는 구도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김영하의 단편 소설 <호출>에 나오는 주인공도 결국은 이미지의 포로일 뿐이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올 아름다운 여성을 꿈꾸며, 극적인 만남을 원한다. 그러나 그와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그녀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체는 검고 둔탁한 형체의 호출기에 불과하다. 호출기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적어도 주인공이 호출기를 이용하여 상대방을 불러내기 전까지는. 그러나 주인공이 진정 그녀를 불러내기를 원하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바로 이러한 불확실한 연결 속에서 이미지만 남은 사랑의 비극이 존재한다. 그는 결코 그녀의 본질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다만 그녀의 아름다운 육체와, 서사적인 만남의 플롯만을 구상할 뿐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완성된 그녀 자신이 아니다. 그가 원하는 그녀의 이미지일 뿐이다. 바로 이것이 이미지의 포로가 되어 버린 현대인의 비극이다.
김영하의 소설을 읽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다거나 즐거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 사회의 금기를 메마른 듯한 문장으로 침범해 나가며, 사회적 욕망과 세기말적 징후에 대한 코드를 집어내는 그의 글을 접하는 것은 조금 부담스런 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은 현대인의 모순과 그로 인한 비극을 냉철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신세대에 걸맞는 감각적인 글쓰기를 행하는 그이기 때문에 신세대의 어두운 질곡을 냉철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이리라. 김영하가 그리고자 하는 시대는 내가 나를 기만하고 타자와 내가 서로 분열되는 시기이다. 바로 타인과 나와의 관계의 소중함을 노래한 김춘수의 <꽃>이 시드는 시대를 이야기한 것이다. 이시대의 신세대들은, 그의 글을 접하면서 과연 김춘수의 <꽃>이 시들었는가에 대해 생각하며 작가의 감각적인 문체를 즐겨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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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출 - 3판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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