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뷰티플 마인드는 "내쉬 균형" 이론의 창시자로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쉬라는 실존인물의 전기를 영화화 한 것이다. 거기에는 주인공이 냉전시대에 빅 브라더의 지휘 하에서 첩보활동을 펼치는 뛰어난 암호 해독가로 복무하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빅 브라더(Big Brother)란 조지 오웰의 유명한 소설 <1984년>에 등장하는 인물로 권력과 감시, 그리고 극한적인 억압의 상징을 나타내는 주체를 말한다. 이 영화에서 빅 브라더는 내쉬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다. 때로 적들로부터 그를 보호하는 보호자의 역할도 하지만, 사실은 내쉬의 사생활까지도 일일이 감시하고 지배하는 압제자였다.
소설가 조지 오웰이 그리고 있는 정보의 독점을 기초로한 전체주의적 국가체제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도 널리 모방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국가권력은 비밀경찰과 국내 첩보기구를 설치하여 국가 안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정보 통제와 관리를 제멋대로 수행해왔다.
그런데 이러한 감시활동은 단순히 국가권력에 의해 설치된 첩보 기구에 국한되지 않고 자본주의 국가의 보편적인 작동 원리로 편재되어 나타난다. 그 대표 기관들이 바로 감옥, 학교, 군대, 공장, 고해소 등이다.
프랑스 철학자 푸코에 의해 더 유명해진 "원형감옥" 이미지는 본디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감옥은 죄수들이 감시자의 얼굴을 볼 수 없는 반면, 감시자는 중앙 사무소에 기거하면서 그들의 각방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죄수들은 감시관이 언제든지 자세히 지켜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감시 자체를 내면화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원형감옥 이미지가 다양한 형태로 작동하면서 자본주의 사회 전체를 지배하며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푸코의 지적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최근 정보 통신 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인한 무수히 많은 형태의 감시 기술들이 생겨났음을 개관하면서, 과거 벤담이 말했던 기술 이전 시대의 원형감옥 구상이 무색해졌음을 말하고 있다. 이제, 불연속적이고 무작위적인 영상 웹은 벤담의 무모한 꿈을 능가한 총체적인 범위까지 미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도청이 FBI나 CIA의 특권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어느 누구라도 감시자(작은 독재자)가 될 수 있는 시대다. 예컨대, 생각지도 못했을 때에 우린 감시카메라에 찍힐 수 있고, 개인 E-메일과 신용카드 등의 정보도 컴퓨터에 내장되어 개인의 통신 기록을 저장하는 "쿠키"와 같은 기술로 손쉽게 남에게 노출 될 수도 있다. 끔찍하지 않은가.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도 개인의 사생활 침해와 데이터 이용 감시 권력에 대해 대중들의 항의가 거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새로운 형태의 원형감옥식 감시 권력이 벌이 아니라 긍정적인 혜택에 기반한 소비자의 원형감옥이며, 분산화되고 전적으로 합의에 의한 것이라는 데서 찾고 있다. 이것은 압제적인 정부에 의해 강요되는 감시는 깊은 분개를 사지만, 일반적으로 공공 안전을 위한 감시는 환영받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 보상과 혜택의 이면에는 내가 무슨 비누로 목욕을 하며, 어느 인터넷 사이트를 주로 방문하는지 등등의 매우 사밀한 정보들까지도 자칫 맘대로 악용될 수 있는 소지가 많다.
다방향 감시의 시대는 지배 독재권력과 자본가들에게도 위협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사파티스타 반군(EZLN)의 "최초의 인터넷 게릴라 작전"이다. 이들 지지자들은 1998년 초에 멕시코 정부의 웹사이트에 해킹해 들어가서 반군 지도자의 사진으로 사이트를 뒤덮어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반군의 메시지를 남겼는데, 그 중에 "우리는 독재자,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라는 문구는 다방향 감시의 시대를 잘 표현해 준다. 금방 제압 당하고 말리라던 반군들은 정부를 협상대로 끌어내었을 뿐만 아니라, 멕시코 사회의 전반적인 지지도 얻어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를 내세우며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세계 지배를 실현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 지배권력자들과 자본가들의 생각은 어리석었다는 것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저자는 감시와 권력 관계를 꾸준히 다루면서 다방향 감시의 시대 속에서 미시화된 권력의 작동방식과 그 지형도를 잘 그려내고 있다. 그는 참여에 의한 감시장치가 종전의 감시장치의 강제적인 많은 요소를 제거해 준다는 사실을 일단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감시의 발전이 강제적인 개입을 지지하는 전세계적 감시 체제의 필요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못박는다. 네트워크 세계가 불안정과 모순이라는 심층의 요소를 안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체제가 더욱 요구된다는 것이다.
넷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색깔이 없으므로, 신기술에 의한 감시장치의 분산이 다양한 정치적 행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을 뿐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
|
개인의 죽음
렉 휘태커 지음, 이명균.노명현 옮김, 생각의나무(2001)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