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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데뷔 이래로 일관되게 유지해온 그의 소설의 키 포인트는 '인간 존재의 의미'입니다. 그의 장편 가운데 이 타이틀에서 자유로웠던 작품은 단 하나도 없었어요. 심지어 연애소설로 분류되는 '상실의 시대'조차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와타나베와 미도리, 나오코의 애정관계를 떠나서, 그 소설의 주제는 '자아 찾기'였으니까요.

그리고, 하루키는 바로 이 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통해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는 작업에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듯 합니다. 물론 요미우리 문학상 수상작인 장편 '태엽감는 새'에서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미처 그 소설에서 얘기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아무래도, '태엽감는 새'는 부부관계를 기둥으로 펼쳐 나가다 보니 설명에 미비해지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하루키는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통해, 동성애라는 코드를 갖고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해 설명합니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는 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해서 초등학교 선생을 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데, 바로 스미레라는 약간은 여성적 매력이 없어 보이는 인물입니다. 키도 작죠, 몸매도 별로고, 세련된 것도 아니고, 말도 함부로 하고. 하지만 '나'는 그런 스미레에게 강렬한 애정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어요. 스미레는 남자에게 성적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스미레의 앞에 한국계 중년 여인인 '뮤'가 등장하면서 스미레의 성적 정체성이 드러납니다. 그래요, 그녀는 레즈비언이었습니다. 그녀는 뮤에게 강렬한 성적 욕구를 느낍니다. 살면서 한번도, 누구에게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요. 그리고, '나'는 그런 스미레를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날 뮤와 스미레는 유럽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런데 예정일이 되어도 돌아오질 않아요. 그리고 '나'는 뮤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그래서 '나'는 부랴부랴 그리스의 외딴 섬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스미레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스미레는 이후 소설에 다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소설의 제목이 된 '스푸트니크'에 대해 먼저 얘기할까요. 스푸트니크는 소련에서 세계 최초로 쏘아올린 위성이죠. 개를 태워서 쏘아올린 것으로 유명한데, 그 개는 지구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답니다. 지금도 지구 근처 어딘가를 빙글빙글 돌고 있을지도 몰라요.

우리는 이 우주 가운데서 너무도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이 드넓은 우주 가운데서 나 자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생각해 보세요. 정말 보잘 것 없죠. 그래요. 사람은 언제 사라져 버릴지, 언제 연기처럼 휙 없어져 버릴지 모르는 존재입니다. 이 무한한 우주 가운데서 70 가량의 인생을 보내다가 사라져 가죠.

우리가 어느 날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스푸트니크호에 탄 개처럼 우주 공간 속에서 소멸해 버린다고 해도, 스미레가 키우던 고양이처럼 나무 위에서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스미레처럼 그리스의 한 섬에서 행방을 감춘다고 해도 이 우주 가운데서라면 별 의미가 없을지 모릅니다.

하루키가 하려는 얘기는 바로 그겁니다. 이제껏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들을 통해서 계속 강변해 왔어요. '우리는 작지만, 소중한 존재다. 당신은 대단한 존재다. 그게 당신의 레종 데르트- 존재 의의인 것이다' 라고 말이죠. 하지만 나이 50을 넘긴 하루키에게는 인간의 존재가 예전만큼 거대해 보이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말 그대로, 주인공 스미레는 흔적없이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편지도 남기지 않고, 단지 파자마를 입고 샌들을 신은 상태로.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닙니다. 하루키는 후반부에 카드를 하나 감춰 뒀어요. 주인공 '나'는 자신이 담임을 맡은 학생의 학부모와 섹스 파트너 관계를 갖고 있어요.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합니다. '남편과는 섹스하지 않아. 난 이만큼 당신을 원해. 당신은 나를 얼마나 원하지?'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주인공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그가 원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세상 어떤 금은보화도 아닌 '스미레' 하나 뿐이거든요. 주인공에게는 스미레가 레즈비언이건, 어느날 갑자기 흔적없이 실종되어 버렸건 상관하지 않습니다. 어찌되었던 그가 원하는 건 스미레 하나 뿐입니다.

그는 소설의 마지막에서 어느날 갑자기 스미레가 새벽에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녀가 늘 그랬듯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설령 자신과 스미레가 우주 가운데서는 먼지와도 같은 보잘 것 없는 존재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래요. 우리는 우주에서는 먼지만도 못한 작은 존재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예요. 우리 자신에겐 어떤지 몰라도, 70도 채 살지 못하는 나약하고 작고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건 슬프지만 사실이지요. 하지만 하루키는 이 소설을 통해서 분명히 말합니다. 그런 당신을, 보잘 것 없는 당신을, 먼지보다 미미한 당신을 미치도록 원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아무리 당신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미약한 존재라 하더라도. 그런 당신을 간절히 원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말입니다.

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정환 옮김, 자유문학사(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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