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천다려 뒤 안에 대숲이 있습니다.
그곳이 본래는 밭이었습니다.
오래 전 이 집에 살던 사람이 한 그루의 대나무를 얻어다 밭가에 심었다지요.
그때는 대나무가 귀할 때였습니다.
비바람에 강하고, 잘 썩지 않는 대나무는 어로를 하거나 해초를 기르는 섬사람들에게 아주 소중한 물건이었습니다.
십 수년, 집을 비우고, 밭을 일구는 사람도 없어지고, 점차 마을은 늙어 갔습니다.
싸고 편리한 플라스틱 재료들이 나와 더 이상 어민들에게도 대나무는 예전의 가치를 지닌 대나무가 아니게 됐습니다.
내가 폐허가 된 집을 고치고 들어와 살기 시작할 무렵, 곡식을 키우던 뒤 안의 밭은 이미 대숲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수 만 그루의 대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대숲.
하지만 저 숲의 대나무들은 본디 한 그루였습니다.
모두가 한 뿌리에서 나고 자라 숲을 이루었습니다.
대나무는 한 그루가 십리를 간다고 합니다.
십리에 뻗은 수만 수십만의 대나무들이 땅에 한 뿌리로 굳건히 뿌리내려 어떠한 지진도 대숲만은 가르지 못한다지요.
그래서 이웃 나라에서는 지진이 나면 대숲으로 피하라고 가르친다지요.
하나이면서 전체인 대나무, 숲이면서 나무인 대숲.
대나무는 한 그루가 병이 들면 숲 전체가 병들어 죽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대나무와 친근한 것은 그 실용적 가치나 곧은 절개,
늘 푸른 기상 따위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모두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숲을 이루어 살고 있다는
연대성 때문일 테지요.
그 공동 운명을 숙명으로 지닌 채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성 때문일 테지요.
장마가 시작 됐습니다.
바람이 불고, 대나무 한 그루가 흔들립니다.
대숲이 흔들립니다.
사람의 숲이 일렁입니다.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