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 서해사태 이후 관심을 모았던 '교전규칙'이 사실상 선제공격을 채택한 새로운 작전지침이 마련됨으로써 강경한 방향으로 개정될 것으로 보인다. 합참본부는 한미연합사와의 교전규칙 개정 합의에 앞서, 작전지침을 바꿔 사전경고 단계를 줄이고 공격 작전을 원활하게 해 이를 교전규칙에 반영할 계획이다.
보수언론과 정치권으로부터 "안일한 대응을 했다"는 집중포화를 맞아온 합참본부는 2일 브리핑을 갖고, 북한군의 북방한계선(NLL) 침범시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을 생략하고 안전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시위기동을 하되, 퇴각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경고사격에 이어 격파사격을 실시하는 새로운 지침을 마련해 해군의 모든 작전부대에 시달했다고 밝혔다.
새로운 작전지침에 따르면,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 징후가 포착되면 해군은 합동대비전력을 유지하면서 대비태세를 갖춘 뒤, 남측 함정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시위기동을 했음에도 북측 경비정이 퇴각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경고사격을 가하며, 경고사격에도 불구 계속 복귀하지 않으면 곧바로 격파사격에 들어가게 된다.
이에 따라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으로 돼있는 5단계 대응절차는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3단계로 단순화된다. 이전 대응 단계에서는 명확히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NLL를 사수하되 선제사격을 하지 말 것과 전쟁으로 확대시키지 말 것을 지시했었다. 이러한 김대중 대통령의 지침은 99년 6월 연평해전 당시 적용되었고, 새로운 작전지침이 나오기 전까지 NLL 진입 북한 함정에 대한 지침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작전지침에서는 방어적 성격, 즉 무력 충돌을 예방하고 무력충돌시 확전을 억제하는 군의 작전 방향이, 사전 경고 단계를 줄이고 필요시 사실상의 선제공격을 통해 북한군을 무력화시키는 공격적 성격으로 전환됐다. 합참에서는 "반드시 경고사격후 격파사격을 하는 것인 만큼, 이번 북한 경비정처럼 아무런 경고없이 불시에 타격을 가하는 `선제사격'과는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며 선제공격을 채택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사전경고 없는 기습적인 선제공격이 아니더라도 공격 전(前) 단계를 줄이고, 대응사격을 작전지침으로 삼아온 이전의 방식과는 달리 북측의 공격이 없어도 선제공격을 가능케 한 부분은 사실상 선제공격을 채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군이 우려했던 확전 위험은 어떻게 하나?
합참은 해군의 작전지침을 공세화, 단순화하는 한편, 육군과 공군의 지원을 받는 합동대비전력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상희 합참 작전본부장은 "앞으로는 북 함정의 NLL 침범징후만 포착되어도 해군뿐만 아니라 공군전력, 백령도-연평도에 위치한 지상군 전력이 합동으로 대비한다는 것"이라며 "이때 공군전투기의 초계 비행 범위가 NLL 부근 쪽으로 전진배치된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보도했다.
이러한 군당국의 강경한 대응 방침은 6.29 서해교전 때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했다는 측면보다는 군에서도 가장 크게 우려하는 확전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군이 6.29 서해교전 때 "전면전을 막기 위해 신중한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가, 보수언론 및 정치권의 집중 공격을 받고 공격적인 성격으로 작전지침을 변경시킨 것은 안보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가 강하게 투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군당국이 일부가 아닌 전면적인 작전지침 변경을 결정함으로써, 향후 남북간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 및 그 규모가 커질 위험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지난 10년간 북한 함정의 연평균 NLL 진입 횟수가 약 20차례에 가까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남북한 사이의 무력 충돌 횟수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군이 공격적인 작전지침을 마련함으로써 북한이 NLL 진입을 자제하고 진입하더라도, 남측의 공격 이전에 퇴각을 한다면 공격적인 작전지침은 빛을 발할 수도 있다. 선제공격을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공격적 억지력이 북한의 도발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는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남측의 희망 사항이다. 우선 북한이 6.29 교전사태이후에도 강하게 주장하고 있듯이 NLL를 넘어서는 것을 '도발'로 규정하는 것은 남측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법적으로도 근거가 없고 당사자의 한쪽인 북한이 인정하지 않는 NLL를 침범했다고 이를 도발로 간주하고 무력 사용에 나서면, 이 역시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어느 일방의 주장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현실과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주요 외신이 북방한계선 수역을 '남한의 관할권이나 영해'가 아닌 '분쟁 수역'이나 '국제 수역'으로 표기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분석하고 있듯이, 6.29 사태를 비롯해 북한군의 NLL 진입은 NLL의 무력화에 있다. 다만, 그 방법이 당국자 회담 등 대화의 방식보다는 군사적 방법을 선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점이 있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군 본연의 임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측 군 당국이 사실상 선제공격을 채택한 작전지침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NLL 문제에 대응할 경우, 북한이 의도하는 'NLL의 분쟁 지역화'는 현실화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게 된다.
소규모 충돌이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도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군이 6.29 교전 때 신중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칫 소규모 충돌이 대규모 충돌로 비화될 수 있다는 위험 부담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비겁하다"는 비난을 하고 있지만, 목숨을 담보로 한, 그리고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군의 입장에서 볼 때, 확전에 따른 인적, 물적 손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잘 알려져 있듯이, NLL 인근은 법적,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지역일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남북한 양측이 무력을 집중시켜 놓은 지역이다. 북측이 남측보다 해군력에서 열세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사시 남측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군사력은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부에서 "왜 KF-16 전투기로 초계 비행만 하고 사용하지 않았냐"고 말하지만, NLL에 근접했다가는 북한의 대공 미사일의 표적이 될 수 있다.
또한 해군 초계함이 근접 공격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NLL에 근접시켜 공격에 나서면 북한의 지대함 미사일과 지상포 및 해안포의 사정거리에 들어간다는 점을 먼저 고려하고 나와야 한다.
결론적으로 NLL 지역에서 확전을 불사한 군사 행동에 나서려면, 북한의 해군은 물론 서해안에 배치된 각종 포와 미사일기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북한군 전체를 상대로 한 전쟁 계획을 수립해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을 군당국이 사실상 선제공격을 채택한 것은 보수언론과 정치권이 이끌고 있는 강경 여론에 떠밀린 것이 아니냐는 추론을 낳고 있다.
흔히 군은 정치논리에 휘둘리지 말고 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6.29 사태가 보여주듯 크든 작든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군은 가장 직접적이고도 큰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 군의 안일한 대응을 문제삼으면서 선제공격, 확전론을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안보 불감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군이 공격적인 작전지침을 마련함으로써 예상할 수 있는 또 한가지 근본적인 문제는 북한 등을 상대로 선제공격 전략을 명시하려고 하는 부시 행정부의 움직임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대량살상무기 위협 사전 제거를 명분으로 필요시 선제공격 옵션을 갖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은 올 8월경에 정식으로 채택될 예정이고, 이에 따라 미국의 대북한 군사전략 및 한미연합방위체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군사적 능력 및 전략이 공세적인 성격으로 바뀌고 북미간의 핵심적인 현안들이 협상을 통해 풀릴 전망이 극히 불투명해짐으로써, 정부 당국자들 스스로 2003년 위기설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 군당국이 북한의 NLL 진입 문제에 대해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은 향후 남-북-미 삼각 관계 및 한반도의 안보 정세를 더욱 불확실하게 만들 소지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