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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태풍 전야의 고요였을까요.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하더니, 오늘은 거센 비바람이 몰아칩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들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합니다.

지붕의 추녀만으로는 비를 피할 수 없어서 덧대어 긴 차양을 했으나
이런 날은 그마저도 무용지물입니다.
비가 마루까지 들이치고, 세살문을 열어놓으니 방안까지 따라 들어옵니다.

풍경소리 요란하고, 앞산과 정원의 나무들은 아프게 울어댑니다.
바닷가 마을에서는 지붕이 날아가고, 수백년 묵은 팽나무가 넘어졌습니다.

아침부터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찾느라 오전 내내 빗속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전기가 나가니 모터를 연결해서 쓰는 수돗물도 나오지 않고, 수세식 화장실, 냉장고, 전기 밥솥, 보일러까지 모든 것이 정지됩니다.

내 삶은 너무 많이 과학기술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플러그를 뽑으면 작동이 중단되는 로봇처럼 나는 어느새 과학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다행히 전기가 들어와 집안이 질서를 되찾았지만, 언제 다시 전기가 나가게 될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습니다.

태풍의 영향으로 연 사흘째 배가 묶이고, 사람들은 오도 가도 못합니다.
섬은 아직 원시의 시간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태풍 앞에서 사람인 나는 한없이 무참해집니다 .
태풍의 중심이 섬을 관통한다면, 우리 중 누가 무사할 수 있을까요.
생사의 판관인 태풍으로부터 누가 우리를 살려낼 수 있을까요.

인류는 많은 시간을 인류 자신을 죽이는 연구에 몰두해왔습니다.
인류 전체를 몰살시킬 수도 있는 핵 폭탄을 만들어냈으나, 그 위력적인 폭탄으로도 저 무자비한 태풍 하나 제압할 수 없습니다.

인류는 일을 저지를 수 있는 능력은 키워 왔으나 수습할 능력은 키우지 못했습니다.
인류가 핵 폭탄을 터뜨려 폭풍을 만들 수는 있어도 그 폭풍이 인류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인류의 지적 성장은 이렇듯 파멸적인 방향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자연의 위력 앞에 과학이란, 또 인간이란 얼마나 무기력합니까.
이 세기도 인간의 세기는 아닙니다.
태풍이 몰려옵니다.
나는 비바람을 피해 도망치는 개미처럼 서둘러 굴속으로 파고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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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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