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후보는 9일 불교방송 시사프로그램 <유창선의 아침저널>에서 있은 인터뷰를 통해 "나와 민주당의 기득권이 없는 방향으로 갈 용의가 있으며 극단적으로 100%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 개방형 경선)도 가능하다"며, 그동안 자신이 언급해온 재경선의 구체적인 방법을 처음으로 밝혔다. 이는 노 후보가 말했던 '기득권 포기'의 실질적 내용을 드러낸 것으로, 이로써 민주당내 재경선 논의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노 후보가 재경선 용의를 밝혔음에도 민주당 안팎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정몽준 의원이든, 박근혜 의원이든 갑자기 민주당에 들어와 경선을 해봐야 패배할 것이 뻔한데, 누가 그러한 선택을 하겠느냐. 결국 재경선에 참여할 사람이 없어 재경선은 말로만 그치게 될 것"이라는 반응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시된 노 후보의 '100% 오픈 프라이머리'안은 경선결과의 불가측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난번 민주당의 국민경선에서는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선거인단이 50%를 차지했고, 나머지 50%는 당내 선거인단이 차지했다. 국민의사가 크게 반영되는 길은 열렸지만, 여전히 당내 기반은 절반의 영향력을 가진 셈이었다. 이에 비해 선거인단 전체를 일반국민 참여로 구성하는 방식을 채택한다면, 당내 기반이라는 것은 큰 의미를 갖기 어렵게 된다.
이같은 방식은 정몽준 의원 등과 같은 민주당 외부 인사들의 관심을 일단 끌만한 방안인 것으로 보인다. 국민 지지율의 추이에 따라 '해볼만한 승부'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면, 민주당내 기반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내볼만한 유인 효과를 이 방안은 갖고 있다. 물론 '100% 오픈 프라이머리'가 채택되더라도 당내 기반이라는 것이 완전히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현역 의원들의 지지분포에 따라 경선 분위기가 영향받는 문제, 국민선거인단 모집과정에서 기존 당조직의 영향력 문제 같은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물론 재경선 논의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이 추가로 논의되겠지만, 외부에서 들어가는 입장에서는 불리함을 의식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이같은 재경선의 실질적 대상은 정몽준 의원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 의원의 경우에는 국민 지지율이 노 후보와 승부를 걸기에는 미약한 상태이고, 무엇보다 노 후보와의 차이를 강조하고 있는 입장이다. 과거사에 대한 인식 등, 여러 면으로 볼 때 그가 민주당과 손잡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렇다고 민주당내에서 재경선에 뛰어들 사람도 없어보인다. 결국 재경선 성사 여부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정몽준 의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몽준 의원 입장에서는 앞서 지적한 것 이외의 다른 여러 문제들도 부담으로 의식될 수 있다. 영남지역 출신으로서 민주당 간판을 가질 경우 생겨날 현실적 어려움들을 예상할 수 있고, 민주당 구성원들과의 이질적 요소도 장애요인으로 의식될 수 있다. 잘못하면 대선출마도 못하고 민주당에서 발목이 잡혀버릴 위험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노 후보의 파격적인 제안에도 불구하고 정몽준 의원이 민주당 재경선에 뛰어들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러나 정 의원이 이번 대선을 단지 2007년 도전을 위한 징검다리정도로 인식하지 않고, 바로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더 큰 욕심을 가질 경우, 민주당 혹은 협상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새로운 정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드는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결국 정몽준 의원의 입장에서는 8·8 재보선 이후의 정국흐름을 보면서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독자정당 창당을 통한 대선출마, IJP와의 4자연대를 통한 대선출마, 민주당 재경선 참여 사이의 선택을 놓고 그는 정치적 저울질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론은 노무현 후보가 제안한 국민재경선의 성사 여부를 사실상 좌우하는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몽준 의원의 수용여부와 상관없이 노 후보의 입장에서 이번 제안은 이중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만약 정몽준 의원의 참여를 통해 재경선이 가능해질 경우에는, 국민재경선 과정을 통해 노풍의 재점화와 대선판세의 반전을 다시 기대해볼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은 노 후보가 밝힌대로 후보자리를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그리고 정 의원이 끝내 수용하지 않아 재경선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라도 당내에서 제기될 '후보교체론' 이나 '제3후보론'을 제압할 수 있는 명분을 쥘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노 후보의 이번 제안은 그가 모처럼 내놓은, 실질적인 승부수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민주당 재경선의 성사 여부는 8·8 재보선을 거친 뒤 뜨거운 여름정국의 관심사로 부상할 것이 예상된다. 아직은 그 성사 가능성이 적어보이지만, 민주당 국민경선 재실시에 대한 8월정국의 결론이 어떻게 내려질 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국민경선의 재실시 여부는 올해의 대선판도를 좌우하는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