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학대에 다닐 무렵, 채플(대학 예배) 시간에 별난 손님들이 초청된 적 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시각 장애를 가진 할아버지 몇분이었는데, 이들은 신구약 성경 전체를 줄줄 암송하여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알다시피 성경은 단 권으로 보일 뿐이지 사실은 여러 권의 책들을 한 데 묶어 놓아 매우 방대한 분량이다. 그런데 한 번 읽기도 어려운 책을 모두 외운다는 데 놀랄 밖에.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것은 문자주의적 성경 이해가 낳는 극단적인 성경숭배의 사례가 아닌가 한다. 생각해 보라. 성경의 깊은 뜻은 모르면서 무작정 성경을 달달 외우고 골백번 읽는다 해서 무슨 유익이 있겠는지를 말이다. 그런데도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성경을 몇 번 읽었는지가 자랑거리 중 하나일 때가 많으니 참 답답할 노릇이다.
성경이 인류 역사상 최대의 베스트셀러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성경은 기독교 인구 1천만을 자랑하는 우리 나라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기독교인이 전체 국민의 1%도 안 된다는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한 해에 150만부 이상 팔리는 대단한 베스트셀러다. 그러니까 성경은 단순히 기독교인들만의 책을 넘어서 대중 교양 필독서로서의 그 위치를 굳히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팔리는 책이면서도 일반에 가장 오해되고 있는 대표적인 책이 성경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의 저자 스퐁 감독에 따르면, 그 이유는 바로 기독교 근본주의에 기초한 문자주의적 성경 이해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자주의적 성경 이해란, 성경의 형성 배경이나 해석학, 성서 고고학 등에 대한 일정한 고려 없이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 내용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문자주의적 성경 해석이 낳는 폐단과 문제점은 워낙 많아 여기에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한 가지 예만 든다면, 아직도 지루하게 계속되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진부한 논쟁도 고대의 신화적 세계관을 반영한 창세기를 그 속에 담긴 뜻을 읽지 않은 채, 문자 그대로의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 생긴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경에 대한 기초적 개론서만 읽어보아도 얼마든지 알 수 있는 문제들이 계속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신학이 대중화되지 않았다는 점과, 한국의 경우 특히 보수적 교회와 교단들이 신학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그 자유로운 학문성을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 게다가 21세기를 살고 있으면서도 계몽주의도 벗어나지 못한 의식을 가지고 매주일 설교를 하는 많은 보수적 목사들의 행태도 여기에 크게 한 몫 하고 있다.
저자 스퐁 감독은 교회 안에 팽배한 반지성주의가 오늘날 교회의 젊은이들에게 성경을 허무맹랑한 책으로 보이게 만들고 결국엔 그들을 교회 밖으로 내쫓고 있다고 탄식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00년까지 24년간 미국 감독교회(성공회) 뉴왁 교구 감독으로 봉직하면서도 꾸준히 성경을 연구하여 웬만한 신학자보다도 훨씬 나은 신학적 수준에 도달하였다. 누구보다 교회 현장을 잘 알기 때문일까? 이 책도 까다로운 논제들을 아주 대중적으로 알기 쉽게 잘 풀어놓아 신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도 읽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다.
저자는 성경의 양 축을 이루는 구약과 신약을 개괄적으로 다루면서 그 중요 책들이 형성된 배경과 담고 있는 깊은 의미들을 전해주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문자주의적 성서 해석의 문제점들을 명확히 알게 될 것이며 대체 왜 예수의 탄생을 기록한 마태복음, 누가복음의 보도가 서로 상충되고 있는지 등 각 성경의 형성 배경과 본문의 맥락을 대략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는 가장 영적이고 심오하다고 하는 요한 복음서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어 기뻤다. 저자는 요한 복음이 쓰여진 배경을 통하여 문자주의자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요한이 의도한 메시지, 하나님 이름이라는 신학적 열쇠를 말해 준다.
이 책은 논란의 소지가 있는 몇 가지 문제들을 남겨 두고 있다. 가령 저자는 바울의 복음을 말하면서 바울이 동성애자였을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다. 또 기독교에서 전통적으로 말해온 인간타락에 기초한 죄론에 대해서 인간의 이기심과 자기 중심성이 오히려 생존충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새로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아마 이런 내용은 보수적 기독교인들에게는 꽤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저자의 신선한 문제 제기들은 성경을 교리나 문자가 아니라 새로운 지평에서 읽는 방향을 제시하기에 충분하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