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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진 후보
한나라당 박진 후보 ⓒ 오마이뉴스 권우성
- 걸어온 길을 보면 참 화려하다. 가던 길을 계속 가도 의미있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텐데 왜 정치권의 길을 택했는가.
"이거 험한 길이다. 편한 길이 아니다. 내가 원래 국회의원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청와대 비서관할 때도 그랬고, 대학교수 할 때도 그랬고, 변호사 할 때도 그랬고, '정치'에 대해 일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신뢰하지 않고, 권력 다툼이나 하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군림하는…. 그런데 정당이 들어가서 모르던 것을 깨달았다. 1년 동안 밖에 되지 않지만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은 것은 배웠다. 결국 우리나라는 정치인들이 끌고간다는 단순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일종의 '자격'이 필요하다. 그 자격은 어찌보면 '선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출직은 처음이다. 다 임명직이었다. 선출직이 가지는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성이 있다. 그래서 가보지 않던 길, 험한 길을 택하게 됐다. 또한 우연히 제 고향이 종로다. 명륜동 2가 129번지 출신인데, 종로에서 20년 살고, 유학 한 10년하고, 돌아와서 종로에서 한 10년 일했다. 이번에 기회가 주어졌다."

- 자신의 가장 큰 경쟁력?
"도전정신과 참신함이다. 그리고 국제적인 경험과 식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40대 중반이다. 우리 40대가 다시 허리역할을 해야한다."

- 화려한 학력들, 청와대 국장, 총재비서 경력 등이 강점일 수 있지만, 다르게 보면 너무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것 아닌가. 소위 이 사회의 '주류'로서 서민이나 소외계층의 정서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 아닌가.
"그랬다. 이번에 출마하면서 거리를 돌아다니고 시장을 돌아다니고 또 양로원, 경로당, 재래시장, 복지시설 등을 돌아다니며 여러가지 경험을 많이 했다. 물론 대통령이나 야당 총재를 모시고 수행할 때 이런 곳에 안다녀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선거를 내가 뛰고,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직접 주민들을 만나 대화를 나눠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다르더라. 여러가지 참 많이 느꼈다. 서민이 생활에서 느끼는 실생활을 보다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겠다는 반성을 많이 했다."

- 다녀보니 괴리가 느껴지는가.
"괴리라고 특별히 생각되는 것은 없다. 다만 정치인으로서 직접 실생활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부분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어차피 정치인으로서 길을 가게되면, 서민들과 당연히 어깨를 맞대야하기 때문에 이미 생활의 일부분이 돼버렸다."

- 쟁점이 되는 부분이 아들의 이중국적 문제다. 공천 신청 이후인 7월 11일 아들이 미국 국적을 포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연히 일치인가 아니면 재선거와 관련이 있는가.
"우리아이가 18세가 된 시기와 내가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생각한 시기와 우연히 일치한 거다. 맞춘 것은 아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의 자녀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중국적 상황에 들어간다. 나는 이것이 '이중국적 문제'가 아니고 '이중국적 상황'이라는 표현을 쓴다. 문제는 18세가 되어서 본인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이다.

왜 하필 7월에 포기했느냐, 그것은 우리 아이가 고등학교를 외국인학교에 다녀서 6월에야 졸업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전에는 학생으로서 미국국적을 포기해야겠다는 필요성이 없었다. 이번에 카이스트 1학년에 들어갔다. 그래서 6월에 졸업을 하고 7월에 포기를 한거다. 마침 내가 공천을 신청한 때가 그때다."

-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도 자녀가 외국인 학교를 다닌 것은 문제일 수 있지 않은가.
"아이를 키워보면 (외국에서) 국민학교 2학년 때 데려온 아이와 4학년 때 데려온 아이가 상당히 다르다. 둘째는 2학년 때 데려왔는데 그 아이는 한국 교과과정을 잘 따라갔다. 하지만 4학년 때 데려온 큰 아이는 매우 힘들어했다. 그래서 첫째는 중학교 때 다시 영국에 보냈다. 3년 더 외국에서 공부를 하니 그 이후에는 우리 교과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 그래서 외국인학교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됐고 이번에 졸업했다."

- 이회창 후보의 원정출산 논란, 장상 총리지명자 자녀의 이중국적 논란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상황인데 부담스럽지 않은가.
"아버지가 정치를 한다고 아들이 미국국적을 포기해라, 그렇게 강요한 적은 없다. 본인 자신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한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부담이 없는데, 다만 정치인 입문 과정에서 나름대로 이런 문제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된다."

박진 한나라당 후보 약력

1956년 9월 16일 생
경기고 / 서울대 법대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행정학 석사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학 박사
미국 뉴욕대 법과대학 법학박사
YS 청와대 공보·정무 비서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특별보좌역
- 처음 정치권에 발을 들인 것은 YS에 의해서였고 지금은 이회창 후보의 특보를 하고 있다. 왜 모시는 사람을 바꿨는가.
"YS는 내가 영국에서 오면서 청와대에서 처음 만났다. 그전에 만난 적은 없다. 5년 동안 모셨다. 전문직 영입 케이스였다. DJ정부가 들어서면서 청와대 비서관을 유임을 해달라는 제의를 받고 정중히 사양했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갔고 법률사무소에 있었다. 작년 5월 이회창 총재로부터 총재 특보로 와달라고 제의를 받았다. 4년만에 정치권에 복귀했다. 1년간 국제관계, 공보 일을 맡아서 했다. 특보를 해보니 전문가 영입케이스는 한계가 많더라."

- DJ의 유임 제의는 거부했는데, 이회창 후보의 제의는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인가.
"이 후보를 대선 때 찍었기 때문이다."

- 그 말은 이 후보가 추구하는 바가 박 후보와 상당부분 일치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법과 원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변호사로서."

- 국제관계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너무 일방적으로 무리하게 했죠. 햇볕정책 자체가 가지고 있는 취지는 상당히 수긍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역시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으면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나는 햇볕정책 본래가 가지고 있는 취지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상당히 훼손됐다고 본다. 북한은 아무 것도 안해주는데, 아무 태도변화가 없는데, 우리가 일방적으로 북한에…. 북한의 합리적인 태도 변화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남북관계가 경색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나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한다. 햇볕정책 때문에 우리가 일방적으로 북한에 의존했다. 북한의 주도권에 우리 정부가 말려든 느낌이다. 그러나 원칙을 지켜서 북한의 태도변화를 요구하면 북한이 오히려 우리와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 유인태 후보와는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 유 후보를 평가한다면?
"유 후보는 민주화 투쟁 시대에 한 역할을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민주화 투사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뭐라고 평하기 어렵지만, 이제 우리나라도 민주화 자체가 화두가 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21세기 국가경쟁력이 중요한 시대로 접어들었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반 위에서 한국을 보다 열린 나라, 보다 세계로 뻗어가는 나라, 보다 다양한 사회적 욕구가 분출되고 통합되는 나라로 만들어야한다. 그러기 위해 나의 전문성과 국정운영의 경험, 국제적인 식견이 좋은 바탕이 된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 정권 잡으면 20년 퇴보한다
나의 공천 자체가 민주당이 바뀐 것"

- 유인태 민주당 후보


 민주당 유인태 후보
민주당 유인태 후보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이번이 네 번째 선거도전인데 지금까지와 다른 의미는 무엇인가.
"사실 그동안 나는 3김식 정당에는 참여할 의사가 없었다. 앞으로 정치를 더 한다면 어쨌든 개혁적인 신당을 만드는 일에 내 역할이 남아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작년에 '화해와 전진 포럼'을 만든 것도 그런 의도였다. 그런데 노풍이 불고 노무현이 대선 후보가 되면서 민주당에 상당한 가능성이 생겼고, '화해와 전진 포럼'은 활동이 정지됐다. 민주당 측으로부터 나에게 선거에 나가달라는 영입제의가 왔다. 그만큼 현재 민주당이 변한 거다. 바뀐 거다. 사실 지금 한나라당의 행태는 과거 회귀적이다. 과거 3김을 청산하겠다던 이회창 후보는 지금 3김 정치의 후계자가 돼있다. '3김식 정치의 연장이냐, 청산이냐' - 나는 그런 의미가 있다고 본다."

- 지난 6·13 지방선거의 표심은 현 정권의 부정과 비리에 대한 실망과 분노인데, 이번 8·8 재보선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 대책이 있는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참패로 국민들의 분노는 조금 식힌 것 아닌가. 어쨌든 아들 둘이 구속돼있고, 검찰의 수사가 조금 미진하다고 하면 민주당은 특검제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니까. 덮으려는 것도 아니고, 정부도 모든 의혹을 남김없이 다 파헤치자는 입장이니까. 국민들도 이제 지난 지방선거 때보다는 나아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 민주당 상황이 매우 복잡하다. 당내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데 유 후보는 어느 쪽인가. 만약 원내에 진출하면 어떤 입장에 설 것인가.
"그동안 나는 민주당 내에서는 몸으로 정당민주화를 위해 실천했던 사람들과 가깝게 지냈다. 과거 '국경추'라는 것이 있었다. 국민경선추진위원회. DJ를 대선후보와 총재로 추대하자는 것이 당내 대부분의 생각이었는데, 그때 (국경추의) 정대철 최고위원이 후보 경선에 나서고 김상현 최고위원이 총재경선에 나섰다. 우리 상식으로는 당연히 민주정당에서 경선 하자고 하면 해야하고, 또 결과도 사실 뻔했지만, 과정으로서 중요하다고 했는데도 이것을 당에서는 굉장히 사시의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이후 DJ가 대통령이 된 후에 대부분 엄청난 불이익을 당했다. 김상현, 박정훈 전 의원 공천 못 받았죠, 김학민·박우섭 공천 안됐죠, 이호웅 의원도 안주려고 하다가 마지막에 사람이 없어서 간신히 공천됐다. 지금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민주당 내에서 쇄신과 개혁을 많이 부르짖지만, 그 쇄신과 개혁을 말로만이 아니라 자기 희생까지 감수하면서 할 용기있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 후보 수락할 때 유 후보가 뭐라고 했냐면,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20년 이상 퇴보한다'고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우선 한나라당을 움직이는 주세력이 과거 민정당 출신이다. 최고위원들을 봐라. 전부 민정계고, 대선을 위해 이회창 후보 세력이 밀어서 민주계 대표 하나를 억지로 세웠다. 온통 민정계라는 소리를 피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지난 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내걸었던 것이 '3김 청산'이었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듯이 지금 이 후보가 보이는 모습은 완전히 '3김식 정치'란 말이지. 거기(한나라당)는 지금 5·6공 군부정권과 3김식 정치의 나쁜 대목만 전부 따온 정치틀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나는 후퇴하는 것으로 본다."

- 그래도 2000년 4·13 총선때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는가.
"예… 그랬죠."

- 한나라당이 2년 전에는 안그랬는데 요즘 갑자기 그렇게 됐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때… 그렇죠. 우선 민주당이 나에게 여러가지 약속을 위반했고, 또 DJ 집권 후에 보이는 행태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뭐, 거의 좌절에 가까울 정도로 실망을 한 대목이 작용을 했다. 또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도봉을에 영입하겠다는 의사를 표해오면서, '이번에 사실 대대적으로 물갈이를 한다, 그래서 한나라당을 개혁적인 정당으로 만들겠다, 그러니까 좀 참여해서 좀 개혁적으로 만드는데 동참을 해달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제의했다. 그때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 비판적으로 본다면 공천을 위해서 왔다갔다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있는데… 나는 그때 DJ 집권 후에 보여주는 여러가지 대목에 대해서, 당시 국민회의에 속해 있었지만, 상당히 비판적인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먹히지 않았다. 역할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기본적으로 이렇다. 아직 우리 정치가 과도적인 구조이기 때문에, 개혁적인 세력이 한나라당에 속해 있더라도 그 자체를 가지고 비난하고 싶지 않다. 한나라당 안에서 외로운 투쟁을 하는 사람들의 역할을 높이 평가해야한다. 향후 엉크러져 있는 정치가 좀더 정돈될 때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인태 민주당 후보 약력

1948년 9월 5일 생
경기고 /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3선 개헌 반대 운동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 후 무기징역 감형, 4년 반 복역
14대 국회의원
민주당 노무현 후보 특별보좌역
- 과거에도 민주당에 대해 'DJ당'이라고 비판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다시 돌아온 현재 민주당은 과거 'DJ당'과 다르다고 보는가.
"국민회의 이전의 민주당, 즉 DJ가 정계에서 은퇴했을 때는, 상당히 DJ당을 벗어났다. 그러니까 93년·94년·95년, 제가 3년간 원내생활을 할 때 민주당은 그렇지 않았는데, 그 후 국민회의 창당하고 나서는 철저하게 'DJ 1인 정당'이었다. 그것은 누가 뭐라 해도 부인할 수 없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 DJ가 탈당하고 쇄신정국과 국민경선을 거친 민주당은, DJ당이 아니라고 본다."

- 그래도 아직까지 DJ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
"과거 지역주의에 매여서 그렇게 보이지만, 우선 이번 재보선 공천과정이 DJ당이 아니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DJ를 그렇게 비판해오던 장기표가 영등포 을에 공천됐고, 나도 비판적인 것은 자타가 인정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종로에 공천됐다."

- 종로 이야기를 좀 하겠다. 한나라당 박진 후보와 여러가지로 많이 대비된다. 가장 차별되는 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사실 그 사람은 정말 온실에서 커온 사람이다. 남의 속까지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이 도대체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고뇌를 해봤을까 의아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정치는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인데, 그 문제를 거의 고뇌해본 흔적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과연 정치활동에 적합하겠는가. 나는 그 대목에서 한나라당 후보와는 많은 차별점이 있다고 본다."

- 만약 국회 입성에 성공한다면, 6년만에 들어가는 데다가 대선국면이다.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글쎄… 우선 정치개혁의 과제들 -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부패를 없애고, 정당의 민주화가 더 진척되도록 당내에서 역할을 찾고 싶다. 거기에 보탠다면 나는 우리 정치가 3김 이후 제자리를 잡으려면 적어도 한나라당 내에 있는 개혁세력들과 민주당 내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어쨌든 당을 함께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한 일을 도모하는데 역할을 하려고 한다."

- 당락 여부를 떠나서 그런 일을 할 것인가.
"내가 원내에 진출하게되면 그런 일에 좀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떨어져도 물론 그동안 살아온 인간관계로 일을 도모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탄력을 받기는 좀 어렵지 않겠는가."

- 사실 현재 한나라당 내 개혁파의 입지가 답답한 상황 아닌가.
"그렇죠. 예를 들어 이번에 박계동 전의원 공천 탈락이라든지… 우리 상식에도 이회창 후보가 대선 전략상 수구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박계동을 공천할 법한데. 서청원 대표를 만들 듯 말이다. 6·13 지방선거에서 좀 압승을 하고 나니까 다시 좀 오만해진거다. '뭐 박계동이 (공천) 안 줘도, 골치 아픈 애들 끌어들일 필요 없다' 뭐 이런 발상 아닌가. 지금 한나라당 내 개혁세력도 이런 대선 구도에서 거기에 계속 복무하기는 굉장히 곤란을 겪을 것이고, 함께 할 수 있는 판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더 열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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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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