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들의 결과를 보면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의원 간에 치열한 2위 다툼이 전개되고 있다. <한겨레>가 지난 7월 12∼13일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3자대결 때 이회창 37.5%, 노무현 24.7%, 정몽준 26.0%로 나타나, 정 의원이 오차한계 이내에서 노 후보를 앞섰다. <내일신문>의 7월 7∼8일 조사에서도 이회창 34.2%, 정몽준 28.1%, 노무현 27.8%를 기록해, 정 의원이 오차범위 안에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7월 27일 실시된 MBC 여론조사에서는 이회창 34.6%, 노무현 23.2, 정몽준 21.8%로 노 후보가 정 의원을 오차범위 안에서 앞선 것으로 나타났고, <중앙일보>가 7월 13일에 실시한 조사결과에서는 이회창 39.9%, 노무현 30.3%, 정몽준 23.8%로, 노 후보가 정 의원을 앞서고 있다. <조선일보>의 7월 6일 조사에서도 이회창 37.4%, 노무현 24.2%, 정몽준 21.9%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현재 이회창 후보가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2위 자리를 놓고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두 사람 사이의 2위 경쟁은 올해의 대선 판도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두 사람 가운데 3위로 처지는 사람은 사실상 당선권에서 멀어지게 된다. 당장에는 3자 대결구도가 형성된다해도 결국에는 양자대결 구도로 귀착되는 것이 역대 대선에서의 경험이었다.
따라서 노 후보와 정 의원 가운데 2위를 굳히는 사람은 '가을 대공세'를 통해 이회창 후보와 진검승부를 가리게 될 기회를 갖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전개되고 있는 노(盧)-정(鄭)간의 2위 다툼은 사실상 결승 후보를 가리는 경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민주당내에서는 비주류를 중심으로, 노 후보의 대안으로 정 의원을 내세우자는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어 두 사람 사이의 경쟁은 한층 미묘한 성격을 띠고 있다.
노 후보는 정 의원 등이 입당할 경우,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완전 개방형 경선(open primary) 방식의 재경선을 통해 대통령후보를 선출할 수 있다는 방안을 이미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정 의원은 민주당 입당을 통한 재경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어, 그같은 방식이 현실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백지신당인가, 3자구도인가
그렇다면 이제 현실적으로 노 후보와 정 의원이 승부를 내는 방식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 한화갑 대표, 비주류측이 신당 창당에 합의하고 정몽준-박근혜-이한동 등 '제3후보' 세력이 이에 합류하여 신당의 대통령후보를 새로 선출하는, 이른바 '백지 신당'의 경우다.
백지신당이 성사될 경우 물론 다른 후보들의 도전 가능성도 있지만, 대중적 지지도를 놓고 보았을 때 결국 승부는 노무현-정몽준 구도로 압축될 것이다. 이는 이른바 '반창反昌)연합' 신당이 등장하는 경우이지만, 반창세력의 이질성을 고려할 때 성사가능성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노무현 낙마'를 염두에 둔 백지신당 움직임에 과연 노 후보가 동의할 것인지도 불투명하다.
두 번째 길은, 노 후보와 정 의원이 각기 다른 곳에서 지지율 경쟁을 하는 경우이다. 민주당 안에서 신당의 성격과 내용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민주당은 친노(親盧)와 반노(反盧)세력 간의 분당을 맞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반노 세력은 자민련, 미래연합, 민국당, 이한동 전총리 등과 연합해 정 의원을 대통령후보로 추대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 경우 정 의원이 과거회귀적인 이미지를 가진 불완전한 신당 세력과 손잡을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이미지 형성을 위해 무소속 출마를 고수할 것이냐 사이에서 고심하게 되겠지만, 어떤 형태가 되든 노 후보와 정 후보는 대선전 마지막까지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 될 것이다. 정 의원이 반(反)이회창-비(非)노무현 신당을 택할 것인가 여부는, 이 신당이 원내 제2당이 될 가능성이 있을 것인가 여부에 크게 영향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두 사람이 같은 당내에서 대통령후보 자리를 다투게 될 지, 아니면 각기 다른 곳에서 경쟁을 하게 될 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다만 '백지신당'의 창당과 새로운 대통령후보의 선출에 대한 각 세력간의 합의를 이루어낸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임을 생각할 때, 일단 올해 대선 초반 판세가 3자 구도로 시작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그 시점에서 노 후보와 정 의원 가운데 누가 2위 자리를 선점할 것인가가 가을 이후 판세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노(盧)-정(鄭) 경쟁의 관전포인트
두 사람의 경쟁은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로운 관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두 사람의 캐릭터를 살펴보면 묘한 특징이 발견된다. 두 사람은 외견상 정치기반 면에서 대조적인 성격을 보이고 있다.
노 후보는 '서민후보'를 표방했을 정도로 기득권층에 대한 불신이 강하고 서민지향적인 노선을 추구해 온 정치인이다. 반면 정 의원은 내로라하는 재벌 출신의 정치인이다. 극과 극의 출신기반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일반 국민들에게는 이러한 대조적 차이보다는,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이미지가 더 크게 각인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풍(盧風)을 등장시켰던 주된 기반도, 정 의원의 지지율을 높여놓은 주된 기반도 모두 '새로운 대안'을 갈구하는 젊은 부동층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대조적인 기반을 갖고 있는 두 정치인이 공히 기존 정치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상황은 매우 특징적이다.
이는 현재까지 두 사람간에 있어 사회경제적 배경의 차이보다는 정치변화 의지가 더 평가의 기준이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결국 두 사람 사이의 향후 지지율 추이는, 결국 누가 '새로운 대안'을 찾는 국민들의 검증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보여주고 있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공히 '조직'보다는 '바람'에 의존하는 경우라는 점이다. 노 후보는 국민들의 정치변화 욕구에 힘입어 '노풍'을 만들어냈으며, 정 의원은 월드컵 인기를 바탕으로 '정풍'을 만들어냈다. 바람에 의존한다는 것은 잠재력도 크다는 것이지만, 그만큼 기복도 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의 지지율은 등락의 가능성이 높은 성격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이제까지의 추세를 보면 기존 후보에 식상하여 새로운 대안을 찾는 부동층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두 사람 가운데 일단 2위를 굳히며 '대안'으로 인식되는 사람에게 부동층의 지지가 몰려 현재와 같은 지지율의 일시적인 균형 현상이 파괴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는 나름대로의 부담이 있다. 우선 노 후보의 경우는 한 번 꺾인 지지율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 가능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바람'이라는 것의 성격이 워낙 유행과도 같은 것이어서, 일단 사라진 '노풍'이 어떤 정치적 노력에 의해 복원될 수 있을 것인가는 더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정 의원의 경우는 무엇보다 아직 국민적 검증을 거치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다. 사실 정 의원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월드컵을 거치면서 형성된 '이미지'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정작 정 의원이 출마를 공식화하는 순간부터 그에 대한 검증은 시작될 것이고, 그 과정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특히 정경유착에 대한 국민 일반의 부정적 정서가 정 의원에게 어떻게 투영될 지는 아직 완전히 판명이 난 문제는 아니다. 대중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이 시험대에 오르게 되고, 그의 구석구석이 정치적 공방거리로 등장할 때 정 의원의 지지율이 어떤 추이를 보일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면 한나라당은 두 사람 가운데 누구를 더 경계하고 있을까. 한나라당은 현재의 상태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양자 구도이든, 3자 구도이든 모두 상관없다는 분위기이다. 그러니까 현재의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상대로 하는 승부, 아니면 정몽준 의원이 무소속이나 군소신당후보로 출마하여 3자 구도가 되는 승부, 모두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들이 합해져서 이른바 반창(反昌)연합의 단일 후보가 이루어지는 경우에 대해서는 상당한 경계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누가 최종 후보가 되든 간에 그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바람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모습이다. 12월의 최종 승부를 앞두고 노무현-정몽준 간의 승부가 8∼9월 정국을 뜨겁게 달굴 것으로 보인다.
| | "김근태, 너 마저…" 속 타는 노무현 | | | | 민주당 안 친노(親盧)와 반노(反盧) 세력의 형성이 각기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후보에 대한 김근태 고문의 유보적 태도가 눈길을 끌고 있다.
김 고문은 최근 있은 일련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친노와 반노로 양분될 경우 어디에 설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김근태의 길을 가겠다"거나 "정치는 타협과 조정을 이루어내야 한다"면서 친노와 반노사이에서 제3의 길을 갈 것임을 시사했다.
김 고문은 노 후보의 사퇴문제에 대해서도 "국민경선으로 뽑은 후보의 명예는 존중되어야 한다"면서도, "노 후보도 기득권 포기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며 노 후보 자신의 결단에 따른 후보 사퇴의 필요성을 내비쳤다.
이같은 기조가 현실화될 경우 김 고문은 8·8 재보선 이후 민주당 안의 대결구도에서 노 후보의 편에 서는 대신, 자신의 독자적인 길을 가며 조정 역할을 하려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이는 곧 노 후보에 대한 유보적 태도를 의미한다.
사실 민주당의 현재 상황에서 김 고문이 노 후보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보이느냐는 여러 면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문제이다. 재야출신으로 개혁파 리더 역할을 해왔던 김 고문마저도 노 후보의 편에 서지않을 경우, 노 후보로서는 8·8 재보선 이후 그만큼 더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고문의 이같은 태도는 근래 들어 노 후보에 대해 관망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범쇄신파 일각의 분위기와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최근 있은 민주개혁연대 참여서명 과정에서 몇몇 소장파 의원들이 "노무현 후보에 대한 줄세우기"라며 반발, 서명을 거부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노 후보에 대한 김 고문의 태도에 대해, 일부에서는 지난 국민경선 과정에서 쌓인 감정적 앙금이 남은 탓일거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지나친 사퇴 압박으로 인해 김 고문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거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노 후보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형성되지 못한 현실의 결과라는 해석이 더 맞을 듯하다. 노 후보를 쇄신파가 내세우는 지도자로 받들고 총대를 메기에는 주저하게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 원인이 쇄신파 안의 보신주의에 있든, 아니면 신뢰를 얻지 못한 노 후보의 책임에 있든간에, 김 고문과 쇄신파 일각의 이같은 유보적 분위기가 친노세력의 결집속도를 늦추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재보선 이후 정식 창립하기로 했던 민주개혁연대는 창립 시기를 다시 8월말로 늦추는 등, 세력화에 여의치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 후보에 대한 쇄신파 내부의 태도는, 재보선 이후 민주당 안 세력 판도에 영향을 줄 또 하나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유창선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