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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라! 조선일보야 " 안티조선 해변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은 세상의 상식과 이성을 희롱하는 조선일보의 위선과 기만을 발가벗긴다는 의미로 누드시위를 벌였다.
"봐라! 조선일보야 "안티조선 해변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은 세상의 상식과 이성을 희롱하는 조선일보의 위선과 기만을 발가벗긴다는 의미로 누드시위를 벌였다. ⓒ
안티조선 해변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이번 행사를 총괄 기획한 김갑수씨가 마지막 날 전격적으로 제안하면서 시도된 퍼포먼스였다. 모든 행사가 마무리되고 단체사진 촬영까지 끝내자 그가 갑자기 앞으로 나섰다.

"자, 우리 모두 해변을 배경으로 엉덩이를 깝시다."

유럽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예술가인 김씨가 제안한 것은 '누드 시위'. "이 '누드 시위'는 세상의 상식과 이성을 희롱하는 조선일보의 위선과 기만을 발가벗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설명으로 사람들을 설득한 그가 이 퍼포먼스에 붙인 작품명(?)은 '봐라! 조선일보야'였다.

처음에는 난색을 표명하던 참석자들이 그의 진지한 설명을 들은 뒤에 흔쾌히 '행위예술가'를 자처하고 나섰다. 잠시 후 칠포2리 해수욕장은 '누드 시위장'으로 돌변했다.

농구공처럼 큰 엉덩이, 핸드볼 공처럼 작은 엉덩이, 허연 엉덩이, 누런 엉덩이, 거무튀튀한 엉덩이, 우유빛 엉덩이, 못생긴 엉덩이, 그런 대로 생긴 엉덩이, 잘 생긴 엉덩이, 살짝 벗은 엉덩이, 발목까지 왕창 내린 엉덩이…. 주인의 얼굴을 알 수 없는, 사람의 육체 중 가장 풍요한 일부인 엉덩이들이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봐라! 조선일보야."

해변을 바라보고 일렬로 늘어선 '행위예술가'들 사이엔 30대의 아빠와 어린 꼬마 아들도 끼여 있었다. 네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그 꼬마가 가랑이 사이로 얼굴을 내민 채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7월 28일 오전 11시경. 참석자들은 아쉬운 이별의 악수를 나누었다. 안티조선을 주제로 만든 2만개의 부채, 전단지, 스티커 등을 나누어 가진 채.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안티조선도 마라톤처럼

첫번째 의문.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평소 잘 알지도 못하고 지내던 이들로 하여금 멀리 포항까지 달려오게 만든 것일까. 이들 중에서는 서로 잘 아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초면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하루도 지나기 전에 한 식구처럼 어울렸다.

앞에서 확인했듯이, 언론개혁과 안티조선의 대의에 동의하는 마음이 같다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이들을 이곳으로 모이게 만들었음은 물론이다.

두번째 의문. 그렇다면 과연 그들에게 안티조선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행사 기간 동안 필자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네 사람의 사연을 통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안티조선 해변축제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중에서 특별히 필자의 기억에 남는 인물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인물은 '포청천'(이것은 그의 아이디인데 실명을 잊었다).

그는 하루도 쉬지 않고 100여개의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일반신문과 조폭찌라시들의 만평비교'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다. 거의 모든 일간지의 만평을 모은 뒤 거기에 촌철살인의 논평까지 덧붙이는 데는 꼬박 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고생 덕분에 사람들은 매일 아침 각 일간지의 만평을 한꺼번에 비교해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명명한 '조폭찌라시'가 만평을 통해 어떻게 여론을 왜곡하는지 금방 눈치채게 된다.

'포청천'은 틈틈이 언론개혁과 안티조선 시위가 벌어지는 현장을 찾아가 카메라로 담아낸 모습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는 일도 수행한다. 물론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자기가 좋아서, 그리고 보람을 느끼며 이 일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고 있다.

안티조선 해변축제 참가자들의 기념사진.
안티조선 해변축제 참가자들의 기념사진.
두 번째 인물은 이상금 부산대 교수.

그는 이날 행사 중 마지막 날인 7월 28일 아침 7시에 진행된 '이상금 교수와 함께 하는 해변 마라톤 대회'를 주관했다. 이상금 교수(사범대 독어교육과)가 안티조선 행사의 마라톤 강사가 된 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부산대 신문사 주간을 맡고 있던 2001년 11월 그는 안티조선 1인시위에 참여했다. 학생들의 제안을 받고 이 시대의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무런 고민 없이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민환 교수 등 동료 교수 3명도 1인시위에 참가했다(더욱이 이민환 교수는 작고한 전 조선일보 주필 선우휘씨의 사위라고 한다).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가장 그 날이 보람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교문 앞에서 1시간 동안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학생 한 명이 커피를 사다주었어요. 그러더니 금방 학생들이 가져다준 캔 음료가 잔뜩 쌓였지요. 잠시 후에는 한 학생이 꽃 한 송이를 내 몸에다 꽂아주었어요. 잠시 후 다른 학생들까지 참여하면서 내 몸은 훈장처럼 꽃 송이로 뒤덮였지요. 지나가던 일부 교수들도 윙크를 하거나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리는 등 말없는 격려를 해주었고요."

그런데 이 교수는 그해 3월부터 마라톤을 시작한 상태였다. 공교롭게도 1인 시위가 끝난 직후 열린 한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42.195km 전 구간을 처음으로 완주하는 데 성공했다. 그 뒤로 그는 마라톤 전도사가 되었고, 이곳 포항까지 오게 된 것이다.

"사실 그때 교수 신분으로 1인시위를 하면서 교수들의 1인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길 기대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선 조선일보 문제가 매우 중요하고, 아울러 지식인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쉽게도 그게 다른 학교로 이어지질 않았지요. 그러나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습니다."

마라톤을 하면서 터득한 지혜였다. 그는 "언론개혁이나 안티조선은 이제 출발선상에 서 있다고 본다"면서 "42.195km 중 이제 2km 정도를 달렸을 뿐인데, 벌써 실망할 순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마라톤은 '천천히 오래 달리는 운동'입니다. 언론개혁과 안티조선도 그렇게 하다 보면 마침내 완주하는 날이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선생님, 왜 조선일보를 보십니까?"

세 번째 인물은 안철택 고려대 강사.

참여연대 열성회원이기도 한 그는 이번 본 행사의 사회를 맡았다. 그가 안티조선맨이 된 사연은 매우 우연한 일에서 비롯됐다.

그는 3년 전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언론사 기자로 일하고 있던 한 대학 친구를 동창회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다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술자리가 끝날 무렵 그 친구가 "조선일보가 건재하는 한 한국에는 미래가 없다"면서 "얼마 후 가족들과 함께 이민을 가기로 했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순진했던' 그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조선일보의 해악을 절감하게 된 것은 2000년 총선연대 시민참관인단에 참가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조선일보는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지능적으로 총선연대의 활동에 '고추가루 뿌리기'를 시도했다.

오랜 유학 생활로 국내 사정에 어두웠던 안씨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힘겹고 의로운 활동을 결단하고 나선 시민단체를 격려해주지는 못할 망정 왜 조선일보는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것일까?' 정치개혁이 시대적 과제라는 일념 하나로 바쁜 시간을 쪼개 시민참관인단에 참여했던 그에게 조선일보의 적대적 보도에서 드러난 편견과 오만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총선연대가 낙천자 명단을 발표하던 날,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경제지를 포함한 모든 신문이 1면 톱으로 이 '역사적 사건'을 비중있게 다루고 TV가 생중계까지 하던 날 조선일보는 '각종 이익단체 사전선거운동 판친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우회적으로 총선연대 활동의 순수성에 상처를 주기 위한 지능적인 수법을 동원한 것이죠. 바로 그 순간에 조선일보 꼴 보기 싫어 이민을 가겠다던 친구의 말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그날 이후 그의 생각과 생활은 전면적으로 바뀌었다. 다음날부터 당장 개인적으로 <조선일보> 절독운동에 나선 것이다. 우선 가족, 친지, 지인 중에 <조선일보>를 보는 사람들을 찾아 절독을 권유했다. 그 일을 마무리 한 뒤에는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의 반대편에서 서서 갖은 왜곡보도와 악행을 행하는 조선일보를 사지도 보지도 맙시다"라는 내용의 전단을 손수 만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 A4 용지 크기의 전단을 건넸다.

최근 그의 무기(?)는 더욱 강력해졌다. 전단 대신 충북 옥천 주민들이 제작한 소책자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구입해서 하루에 10권씩 가지고 다니며 소화하고 있다.

그의 '조선일보와의 전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조선일보를 보는 승객에게 다가가 대화를 시도하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선생님, 왜 조선일보를 보십니까?"

그는 일단 이렇게 상냥한(?) 질문으로 대화의 물꼬를 튼다. 그리고 어느 정도 대화가 진행되면 "조선일보가 일제시대에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꽃다운 우리 청년들에게 침략전쟁의 총알받이가 되도록 강요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조선일보가 서민보다 재벌 등 가진 자들의 입장을 더 많이 대변하고 있다고 보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등의 심각한 화두를 던진다.

"사실 익명의 도시에서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저도 괜히 말을 걸었다가 미친놈 취급을 당하거나 욕설이나 듣지 않을까 걱정했으니까요. 조선일보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조선일보와 생각이 같을 거라고 판단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부딪쳐보니 예상과 달리 대다수 사람들이 감정적 대응을 하지 않고 성실하게 대화에 나서더군요. 물론 일부 사람들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말이죠."

안씨는 '조선일보와의 전쟁'을 수행하던 중 더욱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충격적인 것은 조선일보를 보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냥' 조선일보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조금만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해서 조선일보의 문제점을 알리면 설득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어떤 사람은 '나도 조선일보를 보고 있긴 하지만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해 자사의 입장만 도배질한 것은 정말이지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하더군요."

안씨는 "언론개혁이든 안티조선이든 결국 중요한 것은 개인의 결단과 실천"이라고 말한다. <조선일보>의 150만부가 한 부에서 시작한 것처럼, 절독운동도 개인의 한 부 끊기과 주변의 한 사람을 설득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물론 그 짧은 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할 것이며, 한번쯤은 깊은 고민을 해볼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하철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조직하자

네 번째 인물은 영화감독 황철민씨.

최근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직을 때려치운 그도 안철택씨처럼 지하철과 거리에서 국민 대중과 직접 만나야 한다는 것에 생각을 같이 한다.

<퍽 햄릿>이라는 장편 영화로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던 황 감독은 2001년 상반기 7개월 동안 수시로 충북 옥천에 내려가 그곳에서 전개되고 있던 '조선일보 바로보기 운동'의 현장을 다큐영화 <옥천전투>에 담아낸 바 있다.

이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인 그해 8월 14일 영화의 배경이 된 옥천에서 시사회를 열었으며, 그해 말 광주영화제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시사회에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인 옥천 주민들과 전국에서 몰려든 2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황 감독은 안철택 씨가 실천하고 있는 방식을 '지하철 프로젝트'라고 명명했다.

"안 교수가 실천을 통해 만들어낸 모범사례인 '지하철 프로젝트'를 이제 대대적으로 조직해야 합니다. '우리모두'를 비롯해 인터넷 공간에서 활약하는 수많은 안티조선 논객과 인사모(<인물과 사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노사모 등에서 활동하는 시민과 학생들이 이제 현실 공간에서 대중과 직접 부딪치며 조선일보 절독운동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지금은 '논리'보다 '실천'이 화급한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언론개혁 8·15 대토론회 및
<조선일보>로부터의 옥천해방구 선포식

● 언론개혁 8·15 대토론회

일시: 8월 14일 오후 7시∼11시
장소: 충북 옥천 '명가' 강당
주제: 언론개혁―한국사회의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발제1: 정운현(오마이뉴스 편집국장)--친일문제와 언론개혁--패널:고명섭(한겨레 기자)
발제2: 진중권(아웃사이더 편집위원)--안티조선과 언론개혁--패널:홍기돈(문학평론가)
발제3: 김두관(전 남해군수)--지역운동과 언론개혁--패널:이안재(옥천신문 편집국장)
발제4: 유시민(시사평론가)--대통령선거와 언론개혁--패널:이철우(한탄강네트워크 사무처장)

주최: 조선일보 바로보기 옥천시민모임
주관: <옥천신문>
후원: KNCC언론위원회

● 언론개혁을 위한 단합과 친선의 밤

일시: 8월 14일 밤
장소: 충북 옥천 '명가' 앞 잔디광장

● 조선일보로부터의 옥천해방구 선포식

일시: 8월 15일 오전 12시
장소: 옥천읍 정지용 시비 앞

문의: 오한흥(011-461-5322) 임순혜(018-248-5112)
사이버 공간이나 정치개혁 공간에서 갈고 닦은 논리를 현실 공간에서 실천을 통해 검증한다면 사이버 공간에서 전개되는 안티조선 운동이나 정치개혁 운동도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확신이다.

"소크라테스도 시장에서 행인에게 질문을 던지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논리를 검증하고 이론의 뿌리를 튼튼히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장에서 대중과 함께 고락을 함께 했기에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겁니다. 언론개혁과 안티조선을 지향하는 사람들도 이제 지하철로, 거리로, 직장으로, 학교로 가서 맨몸으로 대중과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 네 사람을 포함하여 '안티조선 해변축제' 참석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 있다. 그들은 충북 옥천을 '안티조선의 성지'라고 불렀다. 왜 옥천은 그렇게 불리는 것일까.

그 까닭을 알아보기 위해 이제 발길을 포항에서 옥천으로 돌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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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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