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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습의 '습이를 살려내라'
조습의 '습이를 살려내라' ⓒ 조습
젊은 세대들에게 6월은 월드컵이다. 한창 시끄럽게 잘 놀았고, 완벽하게 뭉쳤고, 붉기도 참 붉었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승리의 기쁨에 흥분한 네티즌들은 축구와 관련된 사진으로 웹사이트를 꾸몄고, 과거에 들어보지 못했던 축구 속담이나 축구 농담을 따라가지 못하면 왕따가 되었다. 월드컵 신화가 막을 내리자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국민들은 월드컵영웅들에게 약속했다. CU@K-LEAGUE 라고. 어라, 그런데 벌써 8월이다.

시간이 지나고 열정이 가라앉으면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월드컵의 막막한 느낌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일본과의 공동개최임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의 열기는 한국에서 더욱 높았다. 아니 뜨거웠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집단 광기', '국가주의가 부른 애국심', '스포츠마케팅', '레드 콤플렉스 완화' 등의 갖가지 이름으로 불러댔다. 무엇이 됐든, 무엇이라 부르든, 지금의 시점은 자랑스럽고 배가 불렀던 만큼 조금은 게워내고 거울에 비쳐봐야할 때라는 것이다. 여기에 예술가들이 앞장섰다.

서교동에 위치한 쌈지스페이스에서는 8월 20일까지 <현장 2002 : LOCAL CUP>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 전시회는 우리 안에 자리했던 6월의 월드컵을 자화상을 보듯 바라보게 한다.

월드컵(Worldcup)이라는 세계적인 이미지를 로컬컵(Localcup)이라는 지역적인 이미지의 은유와 상징으로 재해석해 한국의 현재를 아우르는 문화적 시선을 정확한 위치에 못박고 대안을 제시하자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가들의 월드컵 딴지걸기다.

박불똥의 '반공천사'
박불똥의 '반공천사' ⓒ 박불똥
김창겸, 이중재, Eric Maillet, 권자연, 박영균, 김태헌, 소윤경, 이부록, 조습, 윤주경, 박불똥, 임흥순 등의 예술가들이 참여한 이 전시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젊은 작가 조습의 '습이를 살려내라'는 사진 연작이다.

이 작품은 '한열이를 살려내라'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작가의 이름처럼 '습한' 명랑함과 비장함을 선보인다.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피를 흘리는 작품 속 인물은 6월 월드컵 경기의 12번째 선수가 아니다.

"시청 앞 공간이 가지고 있던 과거 6월의 이미지와 현재 해방구의 이미지라는 상징적 의미를 이동시키고, 월드컵이 가져다준 국가, 민족적 승리와 환호, 격정과 축제의 붉은 이미지를 과거 피색깔인 붉은색으로 반전시키는 것"이 작가 조습의 말이다.

축구공을 반으로 자르면 무엇이 될까? 작가 박불똥은 '반공(反共)'이라고 답한다. 월드컵 히트 상품인 'Be the Reds'라는 붉은 티셔츠의 의미를 '빨갱이가 되자'로 받아들이며 반공사상을 운운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작가 박불똥은 '반공천사'에서 축구공을 반으로 쪼개어 '반공'을 만들고, 줄리메컵을 쓴 천사를 만들었으며, 바람개비와 축구선수를 합성해 정교한 스포츠마케팅에 의해 움직이는 자본의 논리를 형상화한다.

또한 박씨는 작품 '만가'에서 6월 시청앞을 가득 메운 붉은 대중들 위로 자신의 초상화를 걸어둠으로써 붉은 물결을 통해 만가를 부르며 장례를 치르는 한 시대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 임흥순씨 작품
작가 임흥순씨 작품 ⓒ 임흥순
작가 김태헌은 '무대뽀'라는 작품으로 역시 축구공을 반으로 자른 반공모자를 왕관처럼 쓴 붉은 악마를 그려 보인다. 이부록이 전시하는 수십컷의 만화 이미지 중에서는 월드컵 이후 드세어진 '세종로에 광장을 허하라'는 목소리를 전달하는 작품이 흥미롭다.

선수들의 경기 장면과 붉은악마들의 응원장면들을 섞어 편집한 작가 이중재의 동영상 <이런>은 일체의 축구 사운드를 배제하고 포르노 영화의 사운드를 들려줌으로써 스포츠, 섹스, 스크린으로 대표되는 3S정책의 불변지속 효과를 이야기한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 작가의 말.

임흥순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담은 기념사진을 비무장지대의 이미지와 CG처리하여 월드컵의 클로벌한 상황과 한국에 머무르는 외국인 노동자들, 붉은 승리에 환호하는 한반도와 서해교전의 상황을 교차시킨다.

"80년 오월과 87년 유월, 그리고 2002년 유월이라는 20여년의 세대를 넘나드는 문화적 세대통합의 관점으로 오뉴월세대의 문화적 반란을 위한 신호탄을 쏘아올리고 싶었다"는 것이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준기 씨의 변. 그는 "억압과 열광, 저항과 순응이라고 하는 엇갈린 문화코드를 가진 대-한민국 국민들의 세대간 단절을 극복하려는 노력이야말로 문화예술인들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덧붙였다.

전시된 작품들 중에는 '와!'하는 탄성과 함께 뜨거웠던 6월을 상기시키는 작품들도 있고, 너무 현학적이거나 반대로 일상적인 작품들도 있다. 그러나 이 전시회는 월드컵을 개최했던 국가의 국민들에게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도록 유도한다. 우리가 6월 한 달 동안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벗어나 있었던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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