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방선거에서 옥천군의원(선거구 옥천읍)에 당선된 금효길(62)씨도 이미 독립군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던 인물이다.
옥천읍에 있는 자택에서 부인과 함께 정원을 가꾸던 옷차림 그대로 기자를 맞은 금씨는 지방정부 정통 관료 출신이다. 옥천군청에서 새마을과장, 초대 의회 사무과장, 옥천읍장, 기획감사실장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한 뒤 정년 퇴임했다. 그는 퇴임한 뒤 민족중흥회 옥천지회장으로 2년째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등 수목이 우거진 정원에서 그와 나눈 대화이다.
- 독립군에 가입하면서 조선일보를 끊었다고 들었는데, 절독을 한 것은 언제인가.
"조선일보를 10년 동안 구독했는데, 독립군이 출범한 직후인 2000년 9월에 끊었다."
-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을 정확히 알고나서부터였다. 2년 전엔가 옥천읍에 있는 죽향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황국신민서사탑'이 발굴되면서 관내에 친일잔재 청산 여론이 크게 일었던 적이 있었다. 나도 그날 발굴 현장에 있었는데 친일잔재가 얼마나 끈질긴 것인지 절감할 수 있었다. 그러던 차에 '조선바보 옥천모임'이 출범했다. 독립군들의 권유를 받고 (조선일보를) 끊었다."
- 민족중흥회를 이끌고 있다고 들었는데, 회원 중에 조선일보를 보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
"매월 한 번 정기적으로 회의를 하는데, 조선일보 구독자가 있는지 확인해보고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옥천에선 조선일보가 반민족신문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일부러 구독하려는 사람이 없다. 워낙 지역이 좁기 때문에 (조선일보를 보는지 안 보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금효길 의원과의 대화에서 '조선일보 바로보기 운동'이 얼마나 깊게 옥천 주민들에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더욱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다. 해병대전우회 회장까지 독립군에 가입했다는 것이 아닌가. 곧바로 그를 찾아 나섰다.
지난 8월 9일 오후 4시경 옥천군 안내면 장계리.
대청호 상류인 이곳에는 장계교라는 큰 다리가 있다. 이곳에서 옥천해병대전우회 인명구조대원들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보슬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는 가운데 장계교 밑에는 약 20여명의 사람들이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대청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호수 위에서 두 척의 구명보트가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 모습이 보였다. 독립군에 가입했다는 해병대전우회 권영건(45) 회장부터 찾았다. 잠시 후 해병대 군복 바지에 붉은 티셔츠를 입은 권씨가 기자 앞에 나타났다. 그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해병대전우회 회원들과 유가족들이라고 했다.
- 현재 무슨 작업을 하고 있나.
"어제 오후 한 30대 여성이 장계교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다는 제보를 받고 우리 인명구조대가 출동했다. 현재 119 구조대와 함께 시신을 찾고 있는 중인데, 워낙 비가 많이 내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평소 같으면 하루만 지나면 시신이 물 위로 떠오른다. 그러나 수온이 너무 낮은 데다 수심도 깊어 시신이 떠오르지 않고 있다. 그래서 구조대원들이 애를 먹고 있다."
- 이런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가.
"재난 사건이 1년에 한 30건 가까이 된다. 우리는 주로 화재, 수해, 산사태를 당한 주민들을 구조하고 있다. 그런데 여름 휴가철에 주로 행락객이 희생되는 경우가 많다. 사흘 전에도 새벽 5시30분에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가 물에 빠진 행랑객의 시신을 건져주었다."
- 해병대전우회에서 이런 일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119 구조대나 해병대전우회가 아닌 일반인들의 경우엔 시신을 찾아주는 대가로 유가족에게 수백만원의 돈을 요구한다. 질이 나쁜 사람들은 돈을 더 받아내려고 시신을 찾고도 숨겨놓은 채 흥정을 벌이며 유가족의 애를 먹이는 경우도 있다. 우리 고향에 와서 그런 나쁜 경험을 하고 가게 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1995년부터 무료구조작업을 시작했다."
-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이 일을 한단 말인가.
"그렇다. 군대에서 배운 기술을 썩히기보다 고향을 위해 활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 가장 큰 애로사항은 무엇인가.
"구조대원이 18명인데 모두 생업을 가지고 있다. 사고가 나면 가게 문을 닫고 작업을 하다 보니 생업에 지장을 받는 것이 회장으로서 가장 미안하다."
권 회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사이 차만덕(45) 구조대장과 해병대전우회 고문인 조명운(65), 한상동(54)씨가 몸을 녹이기 위해 모닥불로 모여들었다.
- 권 회장이 '조선일보 바로보기 옥천시민모임'에 가입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3개월 전에 친구의 권유로 가입했다. 우리는 지용제 등 지역 행사가 열리면 교통정리도 하고 이런 구조작업도 벌인다. 가입 권유를 받은 것도 이유이긴 하지만 우리가 하는 봉사활동과 '조선일보 바로보기 운동' 같은 사회운동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가입했다."
-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생각인가.
"아직은 나 혼자만 가입한 상태다. 앞으로 회원들에게 이 운동의 의미를 알리고 가입을 권유할 생각이다. 그리고 전열이 정비되면 '귀신 잡는 해병대'의 기개를 살려 옥천에 남아 있는 조선일보 잔당을 토벌하는 데 앞장설 생각이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해병대전우회 고문인 조명운씨가 한 마디 거들었다. 그는 해병대 116기이고 권 회장은 350기라고 한다.
"오케이. 나부터 먼저 독립군에 가입하기로 하지. 옥천신문에 나온 '아직도 조선일보를 보십니까'라는 광고를 자주 봤다. 나도 조선일보를 보다 그 운동이 시작된 뒤 끊은 사람이다."
즉석에서 독립군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차만덕 구조대장도 동네에서 조선일보를 보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뒤 독립군 본부로 연락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옥천에서 조선일보 구독부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일까.
지금까지 외부에 알려지기로는 기존의 1200부에서 절반이 줄어든 600부 정도가 남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신문업계에 종사하는 한 주민은 매일 새벽 조선일보 본사 트럭이 옥천지국에 떨어뜨리고 가는 신문은 100부짜리 여섯 덩어리, 즉 600부라고 증언한 바 있다.
그런데 기자는 현지에서 만난 한나라당 영동·보은·옥천지구당 부위원장인 유정현(51)씨로부터 이와 관련된 보다 구체적인 수치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증언을 듣기 전에 우선 옥천의 분위기부터 살펴보자.
다음은 옥천읍에 소재한 입시학원 '집현전' 원장 박두용(43)씨와 나눈 대화이다.
- 실제로 옥천에서 조선일보 부수가 줄었다고 보는가.
"조선일보가 많이 줄기는 준 것 같다. 전에는 한 집 건너 조선일보를 봤는데, 요즘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며칠 전에 아디다스 옥천지점 사장을 만났는데, 거기도 조선일보를 끊었다고 하더라. 그는 같이 보던 스포츠조선까지 끊었다고 했다. 조선일보 지국에서 한국경제도 같이 돌리고 있는데, 한국경제에까지 그 여파가 미치는 모양이더라."
- 조선일보 부수가 줄었다는 것을 어디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나.
"광고 삽지 사업에서 당장 확인할 수 있다. 이전에는 업자들이 조선일보를 통해 광고 삽지를 돌리면 지국에서 돈을 딱딱 받아갔는데, 요즘에는 그냥 공짜로 해주는 형편이다. 부수가 줄어서 광고 효과도 없거니와 조선일보를 통해 광고 삽지를 돌리면 도리어 이미지가 나빠지기 때문에 업자들이 광고 삽지 신청을 안 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무튼 요즘 조선일보 지국장이 많이 기죽은 것 같더라."
옆에 있던 여교사 ○○○씨도 자신의 체험을 털어놓았다.
"조선일보가 가장 코너에 몰렸던 작년 이맘 때의 일이다. 판촉요원이 우리 집까지 고가의 CD를 들고 와서 조선일보를 봐달라고 간청했지만 거절했다."
기자는 조선일보 옥천지국을 직접 방문해서 사실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지난 8월 10일 오전 11시30분경 옥천지국 사무실을 찾았다. 최영범 지국장은 마침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여직원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이다.
- '조선일보 바로보기 운동'의 영향으로 부수가 줄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한때 줄긴 줄었던 적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판촉활동을 통해 현재는 완전히 보충한 상태다."
- 조선일보만으로는 운영이 어렵게 돼 다른 지방지까지 돌린다고 들었는데….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서 위탁을 받아 배달을 하고 있을 뿐이다."
- 그렇다면 조선일보가 몇 부나 배달되는지 밝혀줄 수 있나?
"그건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선일보 옥천지국 옆에서 '육일상사'를 운영하는 육점수씨를 만나 사실을 확인해 봤다.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의 친척이라는 육점수씨는 조선일보 옥천지국이 임대해 있는 상가건물의 주인이기도 하다.
- 조선일보 부수가 줄었지만 이전으로 다시 회복됐다고 하던데….
"글쎄. 요즘 보니 지방지 두 개까지 함께 돌리던데, 조선일보가 잘 되면 얼마 되지도 않는 지방지까지 돌릴 틈이 있겠나?"(실제로 조선일보 옥천지국 입구에는 거무튀튀한 중부매일신문 현판이 세워져 있었다.)
- 전에는 지방지를 돌린 적이 없었다는 말인가.
"조선일보가 잘 나갈 때야 그럴 이유가 없지 않았겠나."
- 그렇다면 아침에 신문은 몇 명이 배달하고 있나.
"지국장, 총무 두 사람이 직접 배달하는 것을 봤다. 이전에는 배달하던 아이들도 제법 있었는데 요즘엔 안 보이더라."
이제 앞에서 잠시 소개한 한나라당 지구당 부위원장 유정현씨를 만날 차례이다. 부동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기자에게 자신도 '옥천독립군'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그는 '조선일보 바로보기 운동'에 참여한 뒤 사무실과 집에서 보던 조선일보 2부를 끊었다고 했다.
- 현재 옥천에서 조선일보 부수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그것은 내가 정확히 안다. 370부에서 430부가 배포되고 있다. 1200부에서 1500부가 배포되던 이전에 비해서 약 3분의 1에서 4분의 1 규모로 준 것으로 알고 있다."
-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아는가.
"지구당 위원장인 심규철 의원께서 주민들을 상대로 무료법률상담을 하고 있다. 작년엔가 재작년엔가 조선일보 옥천지국에서 전정표씨와 오한흥씨를 검찰에 고발하기 위해 우리 지구당에 법률상담을 했었는데, 그때 그 사람들이 밝힌 것이다. 당시 부수가 그 정도였으니 아마 현재는 부수가 더 줄었을 것이다. 조선일보 부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얘기는 다른 곳을 통해서도 많이 들었다."
- 심규철 의원이 작년 언론개혁 정국 당시 '처첩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는데,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나?
"상당히 안 좋았다. 그래서 내가 심 의원에게 왜 지역정서와 상반된 발언을 하느냐고 직언을 드렸다. 심 의원은 상임위가 문광위라서 어쩔 수 없이 총대를 멨다고 해명하더라. 그래서 앞으로는 표나 떨어뜨릴 그런 말은 절대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심 의원이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래서였는지 이후 <옥천신문>과의 인터뷰에선 '조선일보 바로보기 운동을 지지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면서 '조선일보는 친일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 왜 조선일보가 문제라고 보는가.
"물론 조선일보는 현재 가장 열심히 북한에 맞서고 있으며 현 정권을 가장 치열하게 비판하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은 한나라당 지구당 부위원장 입장에서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조선일보는 과거의 친일반민족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민족 앞에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 왜냐하면 조선일보의 친일반민족 행위는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가 사과할 것이라고 보는가.
"국회에서 친일파 명단까지 발표하지 않았나. 그렇게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앞으로 친일잔재 청산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당연히 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수천 년이 흘러도 친일문제는 결코 잊혀질 수도 없고, 우리 국민들이 잊어서도 안 되는 문제이다. 이번 기회에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제 힘만 믿고 대충 엉덩이로 깔아뭉개고 넘어가려는 사람들의 못된 버릇을 고쳐야 한다."
- 그것을 누가 해야 한다고 보나.
"우선 언론인이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언론인의 소양 문제라고 본다. 누가 하라고 하기 전에 벌써 했었어야 할 일이 아닌가. 잠시는 아프더라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만 했다. 그래도 정 안 한다면 마지막으로 국민들이 나서야 할 것이다."
기자는 옥천 주민들의 '희망가'를 듣기 위해 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들이 지난 2년 동안 '조선일보 바로보기 운동'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희망과 대안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 기사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