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족문제연구소 등 민족단체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문인 42인을 발표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등 민족단체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문인 42인을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이성규
"역사는 지난 시대의 진실을 유보하거나 우회해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광복 57주년을 맞아 우리 문학인들은 제 아비를 고발하는 심정으로 일제 식민지 시대의 친일문학작품 목록을 공개하고 민족과 모국어 앞에 머리 숙여 사죄코자 한다." -문학인선언, 친일문인 명단 및 친일문학작품 목록을 발표하며-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문제연구소, <실천문학>,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하 민족정기의원모임), 나라와 문화를 생각하는 국회의원모임 등 민족단체는 14일 광복절 제57주년을 맞아 친일문학인 42인을 발표하고 그들의 친일작품을 공개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사의 친일문학인 기념상 제정문제,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문화예술 사업의 문제점 등도 도마 위에 올랐다.(박스기사 참조)

서정주의 전두환 56회 생일 축시
14일 회견장에서 전시된 서정주의 '찬미 독재'

처음으로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 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우리 좋은 문화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
이 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
이 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

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이 힘으로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가지고
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믿게 되었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홍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쥐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서정주(1987. 1)
이들은 14일 오전 11시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친일문학에 대한 자성-문학인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문인 명단 및 친일문학작품 목록을 발표하는 문학인 선언을 했다. 또한 친일문인 명단을 발표하고 이들의 선정 경위를 설명했다.

이날 발표된 친일문학인은 김동환, 노천명, 서정주 등 시 분야 12명, 김동인, 유치진, 정인택 등 소설·수필·희곡 분야 19명, 곽종원, 김기진 등 평론 분야 11명등 총 42명이다. 이는 지난 3월 28일에 있었던 김성수 전 동아일보사 사장, 방응모 전 조선일보사 사장 등 일제 강점기에 친일활동을 벌인 주요인사 708명 발표에 이은 2차 공개다.

친일문인 2차 선정은 민족문학작가회의를 중심으로 민족문제연구소, 실천문학이 공동 추진했으며 실무적인 심의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함께 했다.

이들이 발표한 '선정기준'에 따르면 친일문인과 그 작품은 ▲중일전쟁(1937) 이후에 발표된 글을 대상으로 ▲식민주의와 파시즘 옹호 여부를 친일의 기준으로 삼아 ▲작품 수가 한두 편에 그친 작가는 제외하고 ▲근거자료가 명백한 경우에 한해 선정했다. 또한 납·월북 작품도 검증 대상에 포함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현기영 이사장은 문학인 선언문을 통해 "친일을 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기득권과 힘을 바탕으로 현실 위에 군림해 지금 이 시간까지 우리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며 "이 작업이 문화예술계 일반으로 심화, 확대되어 진정한 새 역사로 나아가는 전기를 맞이하게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 조문기 이사장(독립운동가)은 "선대 작가들의 과오를 대신 사죄하는 일은 8·15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오늘의 이 발표가 새로운 독립운동의 반환점이 되리라 생각하며 민족 정기를 새우기 위한 어려운 결단을 해준 문학인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한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날 발표된 친일문학인과 그들의 친일작품은 의원회관 1층 로비에 전시됐으며, 이들은 이후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 www.historyfund.com)를 통해서도 공개된다.

다음은 이날 공개된 친일문학인 42명 명단

시 분야 (12명)
김동환, 김상용, 김안서, 김종한, 김해강,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이찬, 임학수, 주요한, 최남선

소설·수필·희곡 분야 (19명)
김동인, 김소운, 박영호, 박태원, 송영, 유진오, 유치진, 이광수, 이무영, 이서구, 이석훈, 장혁주, 정비석, 정인택, 조용만, 채만식, 최정희, 함대훈, 함세덕

평론 분야 (11명)
곽종원, 김기진, 김문집, 김용제, 박영희, 백철, 이헌구, 정인섭, 조연현, 최재서, 홍효민


"'솔직한 역사'를 배우고 싶다"
기자회견장 찾은 고등학생 정희진·강철 군

▲ 정희진군(왼쪽)과 강철군
ⓒ오마이뉴스 김지은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앳된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바로 친일문인과 그들의 행적이 가려진 교과서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이들 정희진(경동고·2), 강철(청량고·2) 군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이다. 이들은 "교과서에는 없는 역사에 대해 알고 싶어 찾았다"며 "말로만 '친일청산'을 말할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교과서 외의 살아있는 역사에 대해 가르쳐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정희진군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최남선이 기미독립선언서를 썼으면서도 왜 나중에 친일을 하게 됐는지 등 새로운 역사를 알았다"며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나 국어를 통해서는 몰랐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친일파에 대해서 알게 돼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정군의 친구인 강철군도 "교과서에는 친일파들의 시를 실으면서 그들의 친일행위에 대해서는 기록해놓고 있지 않다"면서 "수능중심의 암기역사가 아닌 '솔직한 역사'를 배우고 싶다"고 전했다. / 김지은 기자

민족정기를세우는국회의원모임, "친일세력 청산위해 총력 다하겠다"
친일문학작품 교과서 삭제, 의원 대상 친일세력 청산 서명운동 등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광복회의 비민족성, 친일문학인의 작품 교과서 수록 논란, <조선일보>·<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사의 친일문학인 기념상 제정문제,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문화예술 사업의 문제점 등도 도마 위에 올랐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하 민족정기의원모임)의 김원웅(한나라당) 의원, 김희선(민주당) 의원 등은 "정파를 떠나 친일세력 청산에 뜻을 함께 할 것"에 동의하며 "친일문학작품 교과서 삭제, 친일세력 청산과 관련된 특별법 제정 등을 위해 노력하겠으며 친일·반민족적 세력 처벌 여부를 묻는 국회의원 설문조사를 벌여 그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민족정기 의원모임의 김원웅 의원은 "나는 광복회 회원이기도 하지만, 광복회 마저 친일세력 청산을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니 우리사회에서 반민족적 세력에 기반을 둔 기득권 세력을 교체하지 않고서는 이 사회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수 없다"면서 "우리 의원들은 민족문제에 있어서는 당파를 떠나 뜻을 같이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김 의원은 또한 친일문학인을 기념하는 언론·문화·예술상도 비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친일세력들을 치켜세우는 동상이 대학 등 교육 현장 곳곳에 세워져 있을 뿐 아니라 <조선일보>·<중앙일보> 등은 동인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만들었다"며 "박정희 기념관을 세우는 데 7억원을 들이면서도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2억원의 연구비 책정하는 데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앞으로 일제 잔재를 없애는 데는 정부가 기꺼이 나서야한다"고 주장했다.

역시 민족정기의원모임의 회원인 김희선 의원은 "지난 대정부 질문에서도 '친일인사·작가들이 교과서에 오른 문제에 대해 질문했었는데 이에 대해 긍정적 답변을 얻었다"며 "앞으로 이를 근거로 회기 내에 특위를 설치해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국회차원에서 △친일인명 사전 편찬사업 적극지원 △16대 국회 중 친일청산과 관련된 법제정 △국회의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친일·반민족적 행위 처벌에 대한 동의여부 서명 결과 공개 등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 김지은 기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